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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09 00:05:21

의흥 박씨

파일:대구광역시 휘장_White.svg 대구광역시를 본관으로 한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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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달성군이 아닌 대구의 옛 이름인 달성을 지칭한다.[이칭] 달성 빈씨, 대구 빈씨라고도 불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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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분파

1. 개요

대한민국의 성씨. 박을규(朴乙規)를 시조로 하고 박수검(朴守儉)의 후손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북도 제천시의 세거 성씨.

2. 상세

의흥 박씨의 관향조인 박을규(朴乙規)의 본성은 왕(王)씨로 고려 왕족이었으며 고려말에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냈다. 조선이 개국을 하자 왕을규는 화(禍)를 피하기 위하여 춘성(春城)[1] 거의동(車衣洞)에 둔거하였다가 조선 태종(太宗) 때 외가(外家)의 성(姓)인 박씨를 따랐다. 그 후 후손들은 관향을 의흥(義興)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계승하였으나, 중간 계대(系代)가 실전(失傳)되어 손자인 3대 박득서(朴得瑞)로부터 대(代)를 이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세조(世祖) 때 좌익공신인 박근(朴瑾), 중종(中宗) 때 박승종(朴承宗) 등이 저명하다. 조선 후기에 제천 송학, 청풍, 구룡리로 퍼져 나갔다.

조선 중기 임호(林湖) 박수검(朴守儉)[1629~1698]의 후손들이 자리 잡은 제천시 송학면 무도리 일대가 의흥 박씨의 대표적인 집성촌이었다. 1964년 조사된 「제천군각읍면씨족별통계표」에 의하면 의흥 박씨가 금성면에 98세대 있었다. 1977년 도정보고서에 의하면 제천군에 있던 의흥 박씨는 2,713명이었다. 1998년 마을지에 따르면 제천시 금성면 구룡리 등지에서 거주하였다. 최근에는 본관 성씨별 자료를 수집하지 않아 자세한 세대수는 알 수 없으며, 2000년 자료에 따르면 제천시에는 의흥 박씨가 180가구 547명이 있었다.#

3. 분파




[1] 현재 단양군 영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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