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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10-19 22:30:40

유영홍

<colbgcolor=#0047a0><colcolor=#fff> 출생 1905년 11월 11일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용정리
사망 1943년 4월 28일
목포형무소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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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일본 유학 후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소학교의 훈도를 역임하였다.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유영홍은 1905년 11월 11일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면 용정리에서 태어났다. 일본에서 고등보통학교를 다녔고 1926년 9월부터 1936년까지 전라남도 각 지역에서 공립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였으나, 일제의 일본어 교육 강요에 줄곧 항거해 오다 결국은 교권을 박탈 당했다.

1942년 6월 17일 오전 11시, 그는 용무가 있어 해남군청을 방문하여 내무과장을 찾아갔다. 이때 그는 내무과장에게 조선어로 말을 걸었는데, 내무과장은 일본어를 사용하라고 주의를 줬다. 이에 분노한 유영홍은 내무과 직원 30여 명 앞에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
“최근 보통학교에서 조선어의 교수를 하고 있지 않으나 조선어의 폐지는 우리들 조선 민족의 멸망을 초래하는 것이고, 조선 독립의 실현을 저해하는 것이니 오히려 조선어를 장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선의 현재 교육제도는 개혁이 필요하다. 이대로 나아가면 조선인은 영구히 일본인에게 억압당하고 조선 독립의 시기를 잃을 우려가 있다. 현재의 전쟁은 조선 독립의 절호의 기회이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43년 2월 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언도받았다. 1943년 4월 28일 목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6년 유영홍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8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애국지사 제3묘역, 안장등록 제725호).

유족으로는 손자인 고고학자 유용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