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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1 14:36:41

유신영(독립운동가)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유경천(柳敬天)
경부(敬夫)
석간(石竿)·하은(霞隱)
본관 풍산 류씨[1]
출생 1853년 6월 17일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풍남면 하회동
(현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2리)[2]
사망 1919년 3월 3일[3]
경상북도 안동군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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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선조영의정을 지낸 유성룡의 11대손이며, 정3품 돈녕부 도정(敦寧府都正)을 지낸 유규(柳氵+奎)의 5대손이다. 아버지 유도발 또한 경술국치 때 단식하여 순절하였기에 독립유공자에 서훈되었다.

2. 생애

유신영은 1853년 6월 17일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풍남면 하회동(현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독립유공자인 아버지 유도발과 어머니 안동 권씨 권장(權璋)의 딸 사이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듬해 봄 안동에서 발발한 의병에 참가했다고 한다. 이후 한일병합이 선포된 뒤 부친이 단식 끝에 사망했고, 그는 세상과 인연을 끊고 자택에 은거했다. 그러던 1919년 2월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소문을 접한 그는 눈물을 흘리며 탄식했다.
"500년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이 이로부터 무너지려하는가?"

그리고는 고종 인산에 장남 유종묵(柳宗默)을 참여하게 한 뒤, 3월 3일 독약을 마시고 자결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유신영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1] 24세 영(榮) 식(植) 동(東) 항렬.[2] 인근의 광덕리와 함께 풍산 류씨 집성촌이다.[3] 음력 2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