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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01 10:50:52

유숭인



柳崇仁
1565년(명종 20년) ~ 1592년(선조 25년)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

1. 개요

조선 중기의 무관이며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2. 생애

유숭인은 1565년 유빈(柳濱)의 아들로 태어났다. 1586년에 홍원현감(洪原縣監)에 임명되어 함경도 홍원현에 발령받은 것을 시작으로, 1587년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에 임명되었다. 1592년 함안군수로 재직 중인 4월 13일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성이 왜군에 포위당하자 관군 및 고을 백성을 규합하여 성을 지키고, 곽재우의 의병에게 진로를 차단당한 왜적을 추격하여 적 47급을 베어 획득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는 다시 휘하 장병을 거느리고 진해에 이르러 당항포 해전에서 이순신과 협공하여 배를 잃고 육지로 도주하는 왜적들을 무찔렀다. 이어서 금강을 따라 침입하는 적과 대항하여 직산현감 박의(朴誼)와 함께 격퇴하기도 했다.

이후 여러 차례의 전공으로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에 특진되었다. 그해 9월 24일 사천현감 정득열(鄭得說)·가배량권관(加背梁權管) 주대청(朱大淸)과 함께 창원에 주둔했으나 진주성으로 향하던 일본군에게 밀려서 창원성으로 퇴각하였다. 그리고 27일에는 창원성마저 넘어가자 김시민이 있는 진주성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가 진주성에 도착했을 때 김시민이 성문을 여는 것을 거절했는데, 이는 김시민보다 더 상관인 유숭인이 성 내로 들어오게되면 김시민이 짜놓은 계획이나 지휘 계통 등에 혼선이 생김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결국 유숭인은 돌아가던 중 진주 외곽에서 일본군과 만나 교전 중 천여 명의 경상우도 병력과 함께 전사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8세에 불과하였다.

본인은 이런 김시민의 뜻을 알았다고 하며 이 이야기를 들은 곽재우는 "저런 인사가 진주성의 지휘관이 되었다니, 백성들에게는 복이다!"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그가 진주성에 들어가면 지휘체계에 문제를 유발할 것은 자명했고, 중요 거점이었던 진주성의 함락은 반드시 막아야 했음을 알았던 유숭인이 대신 희생한 셈이다.[1] 조선왕조실록 선조 경남일보 특별기획 진주성대첩 참조 바람

3. 대중매체

김시민: (성문을 열지 못함을 용서하시오, 우병사 영감. 지금 성문을 열면 왜군은 밀물처럼 성문으로 몰려들 것이오. 허면 진주성은 싸워보지도 못하고 적의 수중에 떨어지고야 말 것이외다.)
유숭인: (앞으로의 싸움이 꽤나 고단할 겝니다, 김 목사.)
김시민: (우병사 영감...)
유숭인: (우리의 분전이 진주성 사수에 작으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오이다. 무운을 빕니다.)
드디어! 우리 경상 우도의 강군이 왜적을 섬멸할 기회가 왔느니라!
오늘만큼! 나는 내가 조선의 장수인 것과 그대들의 상관인 것이 자랑스러웠던 날은 없느니라!
우리 경상도군은! 최강의 강군임을 잊지 말지니, 최후의 1인까지, 최후의 1각까지! 적을 맞아 싸워 이겨라!
진주성 앞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왜군을 향해 돌격하기 앞서 병사들을 향한 유숭인의 연설

2004년작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배우 김영선[2]이 연기했다. 제1차 진주성 전투를 앞두고 왜군과 거의 비슷한 타이밍에 지원군을 끌고 도달했으나, 김시민이 지금 행군 중인 왜군들 때문에 성문을 열지 말라고 지시했고 이 때 유숭인과 김시민은 눈빛을 보고 서로의 의도를 알아차린다. 유숭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씨익 웃더니 부하들에게 결사를 각오한 연설을 하고 돌격하다가 전원이 전사한다.[3] 기록과는 차이가 있지만 진주성 전투가 엄청 치열했다는 것을 잘 알려주는 부분.

살짝 아쉬운 점이라면 유숭인의 나이대를 고려하지 않은듯한 연출이다. 유숭인은 진주성 전투 당시 28세로 김시민보다 거의 10살 가까이 어렸지만, 드라마에서는 담당 배우도 중년이었고(당시 만 48세) 암묵의 대화씬도 마치 베테랑 선배가 후배를 격려하는 듯한 분위기다.
[1] 종2품이었던 유숭인은 정3품이던 김시민보다 상관이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성문을 열라고 명령해 진주성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별 말 없이 돌아갔다는 것은 그가 김시민과 뜻이 통했다는 증거다.[2] 성우 김영선과는 동명이인. 1996년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는 공양왕 역.[3] 연설의 모습을 보면 지금껏 자신들을 따라와준 병사들에 대해 자랑스럽고 고마우면서도 그들이 겪을 운명에 대해 알기에 말 한마디 한마디에 서글픈 분위기가 서려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병사들은 그럼에도 충성스럽게 받아들이며 적들을 향해 돌격해 모두 장렬히 쓰러지고 유숭인 역시 총알을 맞고 수 차례 칼에 베인 끝에 앞으로 쓰러져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