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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22:11:38

윗대태껸협회

대한민국의 주요 택견 단체
4대 분파
대한택견회
구 대한택견협회
결련택견협회
구 택견계승회
한국택견협회
구 충주택견보존회
윗대태껸협회
구 위대태껸회
4대 분파 외 조직
노들택견
파일:위대태껸회_로고.jpg
명칭 윗대태껸협회
회장 고용우
위치 서울 종로구 통일로12길 6(행촌동) 3층
링크 홈페이지
1. 개요2. 역사3. 특징4. 여담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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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택견 협회 중 하나. 송덕기를 직접 사사한 택견계 주요 인물 중 가장 택견 경력이 오래 된 고용우[1]이준서[2]가 이끄는 택견단체이다.

2. 역사

1983년 송덕기의 요청에 의해 고용우와 이준서가 웃대태껸의 기술을 정리하기 시작하였으며, 같은 해 송덕기와 이준서가 문화재청에 '위대태껸 보존회'로 등록을 하였다.

다만 실질적으로 전수관을 낸 것은 미국으로 이민 간 고용우가 1990년대 후반 미국 LA에 전수관을 설립한 것이 시작이며, 한국에 본격적인 전수가 된 것은 2008년 동호회가 시작이다. 이후 2010년대 들어 인지도를 점점 쌓기 시작해 2022년 기준으론 서울 종로구 행촌동과 강남구 개포동, 양천구 신정동, 안양시 동안구 평촌동, 고양시 일산 풍동, 경북 성주군 성주읍에 전수관이 있다.

상술했듯 택견계 주요 인물 중 송덕기를 가장 오래 사사한 인물과 송덕기에게 직접 지명받은 전 택견 국가 전수생이 속해 있기에 송덕기의 계보를 표명하는 택견 단체들 중에선 가장 정통성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그에 걸맞은 상당히 많은 자료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종래만 해도 택견에 대한 고용우의 엄격한 기준[3]과 타 택견단체들과의 알력[4] 때문에 협회 내부의 자료를 극히 일부분만 공개하거나 아예 공개하지 않는 행보를 보였으나[5], 협회가 어느 정도 성숙기를 거친 근래에 들어선 유튜브트위터 등지에 꾸준히 컨텐츠를 공개하는 등 개방적인 면보를 보이는 중이다.

이름의 유래는 역사적으로 택견이 청계천을 중심으로 하여 경복궁 인왕산 방향의 웃대(上村)와 남산에서 광희문 방향의 아랫대(下村)로 나뉘었으며, 송덕기의 택견이 이들 중 웃대에 속한 것이었다는 점으로부터 착안되었다고 한다.[6] 그래서 아랫대 택견을 계승하는 신한승 계열의 현 무형문화재 택견과는 상당한 기술적, 풍격의 차이를 지니고 있다.[7]

3. 특징

윗대태껸협회가 독특한 것은 다른 세 택견 단체가 택견을 전통 놀이 또는 스포츠 경기적 측면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세였던 반면, 윗대태껸협회는 택견을 순수한 무술로써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무술이라는 큰 개념 아래 유희(놀이)적 측면이 존재한다는 것이지 놀이라는 개념 안에 무술적 요소가 존재할 수는 없다는 것이 윗대태껸협회의 입장이다. 칼럼. 태껸(택견)을 바라보는 관점과 원형론.

이를 뒷받침하듯 옛법과 경기 기술을 분리하여 가르치는 여타 택견 단체들과는 달리 윗대태껸협회에서는 둘 간의 구분을 하지 않고 수련하며, 특히 경기화에 의해 사장되어가는 추세인 손기술(활갯짓)을 한 축으로 해 다양한 기법들을 보전하고 있다.

또한 한때 택견계를 시끌시끌하게 만든 자세의 유무와 그 쓰임새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단체이기도 하다. 링크 참조.


수련은 위의 영상과 같이 2인 1조의 공방전으로 이루어지는 권투의 메서드 같은 마주대기 위주로 돌아간다. 기본은 약속대련 형식이나 상호 합의 하에 풀컨택트로도 대련이 가능하다. 이러한 구성을 하고 있는 까닭은 본래 택견의 전통 수련체계가 철저하게 2인 1조를 기준으로 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며, 이를 통해 수련자는 간합의 개념과 힘을 조절하는 법을 익히게 된다.

윗대태껸협회도 품밟기에서 여타 단체들과 어느정도 차이점을 보인다. 그나마 가장 비슷한 곳이라면 같은 웃대택견을 계승하고 있는 결련택견협회일테지만, 한 세대가 지나감에 따라 결련택견협회의 품밟기가 을 활용하는 모션과 힘을 쓰기 위해 발이 중심에서 모여나가는 면이 점점 옅어지고 있어 개념적인 부분만이 아닌 형태조차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추세인지라 이런 측면에는 꽤 보수적인 윗대태껸협회의 품밟기와 근래의 결련택견협회의 품밟기는 상당히 다른 모양새를 띄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차이가 벌어지게 된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샅의 상하운동을 골자로 한 굼슬르기라는 개념의 유무가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윗대태껸협회에서는 이 개념을 통해 타격, 걸기, 던지기와 같은 모든 상황에서 품밟기에 담긴 원리를 이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다른 두 단체와 꾸준히 교류하며 신한승이 창안한 현대 택견 경기 룰에 최적화된 결련택견과 그렇지 않은 윗대태껸의 환경적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라는 의견 또한 존재하므로 결과에 따른 가치판단은 각자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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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담

5. 관련 문서



[1] 1969년부터 15년간 사사했다.[2] 송덕기가 유일하게 직접 지명한 (전)택견 국가 전수생.[3] 기술을 완벽하게 숙달하지 않은 채 시범을 보이는 것을 매우 질색하는 모양.[4] 정통성 문제, 택견에 대한 해석 문제 등.[5] 윗대태껸협회 측의 주장에 따르면, 윗대태껸의 수련체계, 기술, 기법, 동작들이 노출되면 다른 택견 협회 관계자들이 이를 가져가 본래 자신들도 하던 것인 양 재포장(사실상 도둑질)을 하는 일이 몇 번이고 있었다고 하는데 당장 2024년에도 이런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걸 보면 윗대태껸협회의 주장이 근거 없는 허풍은 아니었던 셈이다.[6] 기존 협회명은 위대태껸회였으나 사실 표준 한국어 어법상으론 대태껸회가 올바른 표현이고, 이에 맞춰 2024년 초 협회명을 '윗대태껸협회'로 변경했다. 협회 공식 계정에 따르면 과거 '윗대태껸' 상표권이 이미 등록되어 있어서 처음엔 위대태껸회로 지을 수밖에 없었다고..[7] 물론 엄밀히 말하면 현 신한승 계열의 한국택견협회 택견은 아랫대 택견이 아니다. 단지 문화재 등록 과정에서 송덕기와 신한승 둘이 등재되어야 했기에, 서류상으로만 송덕기의 윗대태껸과 대조되는 아랫대 태껸으로 등록한 것일 뿐 신한승도 송덕기의 제자였다.[8] 심지어 지금은 도장도 문을 닫았다.[9] 당장 고용우의 한풀 경력을 들어 윗대태껸협회를 사이비로 매도한 결련택견협회도기현 회장만 해도 본인부터가 쿵후와 태권도 수련 경력이 있는 사람이다.[10] 요컨대 고용우의 택견은 한풀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므로 순수한 택견이 아니라는 것.[11] 당시 올라왔던 원본 영상은 삭제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