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프레드 베니테스 Wilfred Benitez | |
출생 | 1958년 9월 12일 ([age(1958-09-12)]세) |
미국 뉴욕 브롱스[1] | |
국적 | [[푸에르토리코| ]][[틀:국기| ]][[틀:국기| ]] |
권투 전적 | 62전 53승(31KO) 8패(4KO) 1무 |
신장/리치 | 178cm / 178cm |
체급 | 라이트 웰터, 웰터, 라이트 미들 |
스탠스 | 오소독스 |
링네임 | El Radar, Bible of Box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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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푸에르토리코의 전 권투 선수.2. 전적
- 주요 승: 안토니오 세르반테스, 카를로스 팔로미노, 해롤드 웨스턴, 모리스 호프, 로베르토 두란
- 무승부: 해롤드 웨스턴
3. 커리어
아버지 그레고리오 베니테스에게 복싱을 배웠으며, 15세에 프로로 전향했다.1976년 3월 6일, WBA 주니어 웰터급 챔피언십에서 안토니오 세르반테스를 상대로 15라운드 판정승을 거두었다. 이 경기에서 17세 5개월 23일의 나이로 승리한 베니테스는 복싱 역사상 최연소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 두 차례 타이틀을 방어한 후, 베니테스는 1976년 11월 28일 세르반테스와의 계약된 타이틀 방어 날짜를 맞추지 못해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이후 1976년 12월 4일에 세르반테스와 겨룰 예정이었지만, 교통사고로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WBA에서 경기의 연기를 허가하지 않았다.
1979년 1월 14일, 카를로스 팔로미노를 상대로 15라운드 판정승을 거두며 WBC 웰터급 타이틀을 획득했다. 첫 타이틀 방어전에서 15라운드 판정으로 해롤드 웨스턴을 물리치고 1977년 웨스턴과의 10라운드 무승부를 설욕했다.
1979년 11월 30일, 슈거 레이 레너드에게 15라운드 TKO패를 당하며 타이틀을 상실했다.
1981년 5월 23일, WBC 슈퍼 웰터급 챔피언십에서 모리스 호프를 12라운드에 KO시켰다. 이 경기에서 승리하며 베니테스는 43년 만에 3체급에서 세계 타이틀을 차지한 최초의 권투 선수가 되었다. 이후 카를로스 산토스와 로베르토 두란을 15라운드 판정으로 제치고 타이틀을 두 번 방어했지만, 1982년 12월 3일 토마스 헌즈에게 15라운드 판정패를 당하며 타이틀을 상실했다.
베니테스의 전성기는 20대 중반에 끝났지만, 그는 32세가 될 때까지 복싱을 계속했고 심각한 뇌 손상을 입었다. 그의 상태는 외상 후 뇌염이었다. 베니테스의 노모는 2008년에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아들을 돌보았고, 지금은 누나인 이본이 동생을 돌보고 있다.
베니테스는 선수 생활 동안 700만 달러 이상을 벌었지만, 그마저도 모두 탕진해버려 남아있는 돈이 없었고 현재 푸에르토리코 정부와 WBC로부터 연금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4. 파이팅 스타일
'복싱 천재' 소리를 듣던 선수로, 뛰어난 카운터 펀처였던 데다가 디펜스 역시 훌륭하였다.5. 여담
권투 역사가 허버트 골드먼은 1989년에 베니테스를 역대 웰터급 5위로 선정했다.링 매거진은 1994년과 1996년에 베니테스를 각각 역대 가장 위대한 주니어 미들급 복서 4위, 지난 50년간 가장 위대한 선수 30위로 선정했다.
1999년 AP통신은 베니테스를 20세기 가장 위대한 주니어 웰터급 복서 4위로 선정했다.
형인 그레고리오 주니어도 권투 선수로 활동했지만, 결혼 후에 아버지의 만류로 복싱을 그만두었다. 말년에 동생처럼 뇌손상을 입어 고생하였다.
또다른 형인 프랭키도 권투 선수로 활동했으며, 1976년 윌프레드의 세계 타이틀전을 위해서 그와 스파링을 하였다. 그러나 여자를 너무 밝히던 탓에 복싱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아버지인 그레고리오는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와의 인터뷰에서 삼형제 중 그레고리오 주니어의 실력이 가장 뛰어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프랭키는 손이 빠르긴 했지만, 윌프레드가 더 강력하고 재능이 출중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