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펄럼 야보로 William Pelham Yarborough | |
출생 | 1912년 5월 12일 |
워싱턴주 시애틀 | |
사망 | 2005년 12월 6일 (향년 93세) |
노스캐롤라이나주 서던파인스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
최종 계급 | 미국 육군 중장 |
복무 기간 | 1931~1971 |
학력 | 샌러펠 밀리터리 아카데미 미국육군사관학교 |
[clearfix]
1. 개요
전 미합중국 육군 소속 군인.2. 생애
1912년 시애틀에서 미 육군 정보장교의 아들로 태어났고 1936년 미국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하여 제57보병연대(필리핀 주둔), 제4사단 제29보병연대에서 복무했다. 이후 미 육군의 초기 공수부대 창설에 참여해서 제101공수사단의 제501공수연대에서 복무했다.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1942년 공수부대 태스크 포스의 일원으로 북아프리카 전선 알제리, 튀니지에서 작전을 수행했다. 1943년부터는 제82공수사단의 제504공수연대 제2대대장으로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침공작전에 참가. 이후 제509공수대대장을 맡아 1944년 1월에 이탈리아 안치오 상륙작전에 참가하였고, 이때 제75레인저연대와 함께 선봉으로 침투해서 상륙지역 정찰작전 수행했다. 같은 해 8월에 연합군 프랑스 남부 상륙작전(작전명 'Dragoon')에서 공수부대 병력들이 선봉으로 공수하여 남부 산악지역을 장악하는데 그의 부대도 참가했다. 1945년부터는 제92보병사단의 제473보병연대장으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잔존 독일군과 전투를 치렀다. 이 공으로 은성훈장을 포함한 여러 훈장을 수여받았다.
종전 이후에도 유럽에 남아 미 제15군단의 헌병대장, 그리고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군 합동 헌병대를 창설했다. 1947년부터 1949년까지는 미국 본토의 교육사령부에서 근무했고, 1950년에는 영국에 NATO 미 군사고문단으로 파견되었다.
1952년에는 미 육군 전쟁 대학에 다니다가 1956년에는 캄보디아에 군사고문단으로 파견되었고 1958년에는 서독에 위치한 제66방첩국 대장을 맡았다. 1961년부터 1965년까지 미 육군특수전학교의 교장을 맡아 이 시절에 특수전 교육을 정립하고 4개의 새로운 특전단을 신설하였으며, 케네디 대통령으로부터 초록색베레모(그린베레)를 특전단의 공식 상징으로 자리잡게 했다.
1965년 판문점에서 개최된 군사정전위원회에 유엔군 겸 한국군 측 대표로 참석하여 마오쩌둥 문선 및 주체사상까지 공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너희가 떠받드는 김일성이가 가짜인걸 모르느냐?" 등등의 어그로를 끌면서 북한 측 대표들의 멘탈을 탈탈 털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말빨을 선보였다. 당시 북한 대표이던 박중국이 빡쳐서 야보로를 향해 "야 이 미국의 소리 아나운서 같은 놈아!" 라고 소리치자 야보로는 "어라? 너희는 그 엄중하기 그지없는 공화국에서 그런 자본주의 방송을 듣고 있었단 말인가?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군" 이라며 여유로운 미소로 상대방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고 한다. 그가 유엔군 대표에서 물러난 이후로도 북측 수석 대표들이 두고두고 야보로를 씹었을 정도였다.
이후에는 펜타곤에서 특수전, 심리전 참모, 몇년 뒤에는 육군 정보 참모부장 역임했고, 1968년에는 한국 주둔 제1군단장을, 1969년에는 미 태평양 육군 사령부 참모장과 부사령관을 역임하고 1971년이 중장으로 퇴역했다.
2005년 고관절 부상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