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에젤 William Ezell | |
윌리엄 에젤로 알려진 유일한 사진 | |
이명 | 윌 에젤 Will Ezell |
출생 | 1892년 12월 23일 |
미국 텍사스 주 브랜햄 | |
사망 | 1963년 8월 2일 (향년 70세) |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 |
직업 | 싱어송라이터, 피아니스트 |
장르 | 블루스, 재즈, 래그타임, 부기-우기 |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음악가. 1920년대 말부터 1930년대 초까지 파라마운트 레코드사의 녹음에 기여했으며, 브루스 에더로부터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재즈와 블루스의 강한 영향을 보여준다."고 평받았다.2. 생애
6명의 자녀들 중 하나로 태어났다. 1900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여전히 브랜햄에 거주하고 있었다. 같은 자료에서 그의 어머니는 1901-10년 사이 사망했다고 한다. 1917년, 뉴올리언스로 이주했으며, 음악가로도 일하였다. 징집은 되지 않은 듯 하며, 떠돌이 일을 계속했다.1920년대 초, 엘자디 로빈슨과 작업했으며, 1925년경 시카고로 이주하여 찰리 스팬드, 블라인드 블레이크와 친구가 되었다. 그는 디트로이트의 부기-우기 피아니스트들 중 한 명이었다.
1926년, 파라마운트 레코드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첫 녹음은 그가 만든 'Sawmill Blues'로, 엘자디 로빈슨이 보컬을 맡았다. 이후 루실 보간과 곡을 녹음했는데, 서로 관계가 참 묘해서 남편이 이혼 소송을 고려했다고 한다.
1927년 당시, 그는 파라마운트 레코드사에서 지위가 커졌고, 이후로도 여러 곡들을 녹음했다. 그러다 레코드사가 대공황으로 급격히 쇠퇴하고, 그는 그 해 말, 루이지애나에서 다시 연주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 후반엔 행방이 묘연해졌으나, 기록에 의하면 계속 시카고에 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뉴딜 정책의 일부로 운영되던 크레인 기술학교에서 일했으나, 강사로 일한 것인지, 유지 노동자로 일한 것인지는 불명이다. 이후 사망했는데, 이는 보도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