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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3 00:09:11

위법성조각사유(국제법)


1. 개요2. 국제 의무의 위반과 국가 책임, 위법성 조각사유3. 위법성 조각사유의 종류
3.1. 유효한 동의(valid consent)3.2. 자위권(self-defense)3.3. 대응조치(countermeasures)3.4. 불가항력(force majeure)3.5. 조난(distress)3.6. 긴급피난/필요성(necessity)

1. 개요

해당 문서에서는 국제법에서 다루는 위법성 조각사유, 특히 국제 의무의 위반에서 파생되는 국가 책임에 대한 위법성 조각사유를 다룬다.

아래 내용은 ILC(국제법위원회)의 국가책임법 규정 초안의 2001년 최종판(이하 'ILC 초안')에 기반하고 있다. ILC 초안은 엄밀히 따지자면 조약이 아니라 조약을 위한 초안이지만 국제 사회 및 국제법 학계에서 충분한 권위를 확보하고 있으며 오늘날 국가책임법에 관한 설명의 출발점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1][2]

2. 국제 의무의 위반과 국가 책임, 위법성 조각사유

국제법상 국가 책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국제의무에 의해 요구되는 바와 합치되지 않는 국가의 행위 즉 국가의 국제의무 위반이 있어야 하며[3] 이는 해당 국가에 귀속되어야 한다. ILC 초안은 1차 규범이 아닌 2차 규범에 해당하므로[4] 국제의무 위반에 해당한다면 해당 행위의 기원이나 성격은 문제되지 않는다. 소급입법을 통한 국가책임 추궁은 인정되지 않으며, 일단 국제 의무의 위반이 성립되면 위반 의무가 소멸되더라도[5] 그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일단 완료된 국가행위는 효과가 계속되고 있을지라도 행위가 수행된 시점에서 발생하였다고 취급되며, 그 자체가 지속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일정 위법 행위[6]는 행위가 계속되는 전 기간 동안 지속된다고 취급한다. 제노사이드, 아파르트헤이트, 인도에 반하는 죄 등 일련의 작위/부작위가 섞여 총체적으로 국제의무 위반을 구성하는 경우 위법행위를 구성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작위/부작위가 발생했을 때 국제의무 위반이 성립한다고 본다.

그러나 국제 의무의 위반에도 불구하고 일정 사유가 있을 시 국가 책임이 수반되지 않을 수 있으며 이를 위법성 조각사유라고 정의한다. ILC 초안에서는 여섯 가지의 위법성 조각사유를 제시하고 있다. 단 위법성 조각사유는 말 그대로 의무 불이행의 정당화/면책에 불과하므로, 해당 사유로 인해 원래의 의무가 무효화되거나 종료되지는 않으며, 해당 사유가 더 이상 존속하지 않게 되면 본래의 의무 이행은 재개되어야 한다.[7] 동시에 위법성 조각사유는 당해국의 손해보상 의무를 면책시켜 주지는 않으며, 위법성 조각 사유는 상위 개념인 국제법상 강행 규범(jus cogens)의 위반까지 정당화 시켜주지는 못한다. 예를 들어 제노사이드를 방지하기 위해 선빵 선행적으로 제노사이드를 실행하는 것은 정당화 될 수 없다.

3. 위법성 조각사유의 종류

3.1. 유효한 동의(valid consent)

타국 행위에 대한 국가의 유효한 동의는 그 동의의 범위 내에서 행위의 위법성을 조각한다. (ILC 초안 제20조)[8]

동의는 이를 부여할 권한이 있는 자에 의해 자유롭고 또 유효하게 부여되어야 한다. 동의의 자발성 여부와 동의의 범위는 항상 신중하고 또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 사전 동의 및 행위 시 동의 모두 가능하며, 명시적 및 묵시적 동의 모두 가능하다. 여러 국가의 동의가 필요한 상황에서 일부 국가만의 동의가 있다고 해서 타국과의 관계에 있어 위법성을 조각시키지 않는다.

행위의 사후라도 동의가 있게 된다면 동의국은 상대국에게 국가책임을 청구할 권리를 상실하게 된다. (제45조)

유효한 동의의 대표적 사례로는 외국군의 타국 주둔이 있다. 이 경우 일반적으로 파견국과 접수국 간 SOFA 협정을 맺어 관리하게 된다.

3.2. 자위권(self-defense)

UN 헌장에 합치되는 합법적인 자위 조치에 대해서는 위법성이 조각된다.[9] (제21조)

물론 자위권 행사 시에는 일명 웹스터 공식으로 알려진 비례성 및 필요성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별도의 국가 책임이 발생한다. 또한 국제법상 모든 관련 의무의 위법성이 조각되지도 않는다. 특히 국제인권법이나 국제인도법은 국제법의 유서 깊은 원칙인 상호주의가 적용되지 않는 부문으로[10], 이 두 법의 기본 원칙은 어떠한 경우라도 지켜져야 한다.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일명 B규약, 1966) 제4조1항에서는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공공비상사태의 경우 그리고 그러한 비상사태의 존재가 공식으로 선포된 때에는 이 규약의 당사국은 해당 사태의 긴급성에 의하여 엄격히 요구되는 한도 내에서 이 규약상 의무로부터 이탈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다만, 그러한 조치는 해당 국가의 그 밖의 국제법상 의무와 불합치하지 않아야 하고,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또는 사회적 출신만을 이유로 하는 차별을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라고 규졍하고 있으나, 동시에 同條2항에서 "이 규정에 따르더라도 제6조, 제7조, 제8조(제1항 및 제2항), 제11조, 제15조, 제16조 및 제18조로부터의 이탈은 허용되지 않는다."라고도 규정하고 있다.[11]

3.3. 대응조치(countermeasures)

타국의 위법 행위에 대응해 취한 조치에 대해서는 불법적이라 할지라도 위법성이 조각된다.[12] (제22조 및 제49조)

대응조치는 해당 행위 그 자체만 보면 위법이지만, 유책국의 선행된 위법행위를 중단시키키고 피해배상을 받기 위한 범위 내에서의 비무력적 대응조치는 위법성 조각사유로 정당화된다.

물론 남용을 막기 위해 대응조치의 경우 여러 조건이 뒤따른다. 우선 대응조치의 내용은 유책국에 대한 의무를 당분간 이행하지 않는 방식으로 제한되며, 가능한 문제된 의무 이행을 재개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13] 또한 상대국에게 회복 불가능한 손해를 입힐 수 없으며 비례성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14] 대응조치는 피해국과 유책국 사이에서만 위법성이 조각되며, 제3국에 대해서는 취해질 수 없다. 마지막으로 유책국이 의무를 이행하게 될 경우, 당사국은 즉각 대응조치를 종료해야 한다.

특히 무력 위협 및 사용을 자제할 의무, 기본적 인권을 보호할 의무, 복구(reprisals)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인도주의적 성격의 의무, 기타 국제법상 강행 규범에 따른 의무,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 따른 외교사절/공관/문서 등에 대한 불가침 존중 의무, 상호간 분쟁해결절차에 따를 의무 등은 항시 존중되어야 하므로 대응조치를 이유로 무시될 수 없다.

대응조치의 사례로는 상대국의 위법한 자국 수출 상품의 통관 거부에 맞선 상대국 수입 상품의 통관 보류 행위, 타국의 자국민 출국 금지에 맞선 자국의 타국민 출국 금지 명령[15][16]가 있다.

3.4. 불가항력(force majeure)

국가의 의무 이행을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저항 불가의 힘 또는 예상하지 못한 사건의 발생으로 인한 행위에 대해서는 위법성이 조각된다. (제23조)

구체적으로 불가항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국가 입장에서 해당 행위가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인해, 혹은 예상하지 못한 사건에 의해 발생하게 된 경우"이며, "해당국의 통제를 벗어난 행위"이며, "그 결과 국제 의무의 이행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결과가 초래된 경우"여야 한다. 불가항력의 적용은 상당히 엄격한 편으로, 적용 난이도는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VCLT)에서 규정하는 조약 종료를 정당화시키는 후발적 이행불능(VCLT 제61조)보다는 낮은 수준이긴 하나 단순히 정치/경제적 위기 등으로 인해 이행의 어려움이 크게 증가한 경우 정도만 가지고는 불가항력이 적용될 수 없다.[17]

또한 불가항력적 상황 발생의 원인을 제공하게 된 국가는 불가항력을 위법성 조각사유로서 원용할 수 없다. 이는 불가항력적 상황이 해당국의 행동에서만 기인하는 경우는 물론 기타 요소와 결합하여 발생한 경우도 마찬가지이다.[18] 또한 불가항력적 상황 발생의 위험을 수락한 국가 또한 불가항력으로 인한 위법성 조각사유를 주장할 수는 없다.[19]

불가항력의 예로는 악천후로 인한 군항기의 타국 영공 침범, 자국 내 반란으로 인한 자국 영토 일부에 대한 통제권 상실[20] 등이 있다.

3.5. 조난(distress)

자신이나 자신의 보호 하에 있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다른 합리적인 방법이 없을 경우, 국가 기관이 선택한 행위에 대해서는 위법성이 조각된다. (제24조)

조난은 이름 그대로 오직 인간을 생명을 구하기 위한 상황에서만 원용할 수 있으며, 행위자가 완전히 비자발적으로 행동하는 상황은 아니다. 이 두 요소가 상술된 불가항력과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이다. 또한 조난 사태를 유발한 국가는 조난을 위법성 조각사유로 원용할 수 없으며, 보호하려는 이익이 침해가 불가피한 타 이익보다 명백히 우월한 경우에만 위법성이 조각된다.[21]

조난의 사례로는 악천후 및 천재지변으로 인해 선박/항공기가 허가 없이 타국의 영해/영공으로 진입하는 경우[22]가 있다.

3.6. 긴급피난/필요성(necessity)

중대하고 급박한 위험에 처한 국가의 본질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취한 유일한 행위에 대해서는 위법성이 조각된다. (제25조)

긴급피난/필요성[23]은 중대하고 급박한 위험(grave and imminent peril)에 맞서[24] 국가의 본질적 이익(essential interest)을 보호하기 위해서만 인용될 수 있다. 문제의 행위는 다른 대안이 없는 유일한 방법이어야 하며, 단순히 비용적 문제 혹은 편의상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대안이 있다면 원용할 수 없다. 또한 문제의 행위는 관련국 혹은 국제 사회의 본질적 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없다. 긴급피난은 그 특성상 원용에 있어 정치적 요소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고, 남용의 위험도 크다. 따라서 긴급피난/필요성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 엄격한 심사 아래서만 인정될 수 있다.[25]

긴급피난/필요성은 앞서 언급된 상대국의 유효한 동의나 자위권과 달리 선행되는 위법행위에 근거하지 않는다. 또한 불가항력과 달리 비자발적 혹은 강제된 행위에서 기인하지도 않으며, 조난과 달리 개인의 생명이 아닌 국가의 본질적 이익을 중대하고 급박한 위험에서 보호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앞서 언급된 조각사유들과 마찬가지로 긴급피난/필요성 또한 해당 상황의 발생에 책임이 있는 국가는 이를 원용할 수 없다. 또한 문제가 된 국제의무가 긴급피난/필요성의 원용 가능성을 명시적으로 혹은 묵시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경우에도 원용할 수 없다.

한 가지 주의할 점으로, 이 단락에서 언급되는 국제법 위법성 조각 사유의 'necessity'는 Caroline호 사건 이후 국제관습법에서 확립된 자위권(self-defense)의 행사 요건 중 하나인 'necessity'와 서로 다른 개념이다. 즉 두 necessity는 동음이의어 관계이다.

긴급피난/필요성의 사례로는 좌초된 유조선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선적국 동의 없는 유조선 폭파 등이 있다.[26][27]
[1] 사실 ILC 초안이 국가책임법이 아닌 초안에 머무르게 된 것은 일종의 정치적 타협 때문이다. 국가책임법의 조약화 시도는 결과적으로 국가의 구속을 야기하므로 대다수의 국가들은 자신을 구속하는 국가책임법의 존재를 탐탁지 않아 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과정은 지난한 논의와 합의를 위한 적지 않은 내용의 변화를 수반할 수 밖에 없었으며 이러한 과정이 계속될 경우 비준 가능성 또한 높지 않았다.[2] 특히 1996년 초안에서 국제위법행위를 '국제범죄'와 '국제불법행위'로 구분한 것을 두고 국가는 (국제)범죄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많은 국가들(특히 강대국)의 반발이 거셌다. 결과적으로 2001년 초안에서 국제범죄의 개념은 삭제되었고 조약의 채택이 아닌 총회의 보고라는 방식을 통한 최종 초안이 완성되었다. 그럼에도 오늘날 해당 초안은 조약화 못지 않은 성과라고 판단된다.[3] 위반은 작위와 부작위를 가리지 않으며, 양자의 결합을 통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4] 이 또한 일종의 정치적 타협에 가깝다. 초안 작업 당시 제3세계 국가들은 전통적 서구 국가들의 기준에 근거한 외국인 보호(특히 재산권 보호와 관련된 국가의 의무)에 반발했었고, 결과적으로 국제법 학자 로버트 아고(Robert Ago)의 제안에 따라 1차 규범이 아닌 2차 규범에 기반하여 초안을 제정하였다. 거칠게 설명해, 1차 규범은 "무엇을 위반했는가"이며 2차 규범은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로 요약할 수 있다.[5] 예: 조약의 종료 및 소멸 등[6] 예: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에 명시된 외교 사절 불가침 의무를 위반한 외교관 불법 구금, UN 헌장에 명시된 갈등의 평화적 해결 의무에 위반되는 외국 영토의 불법 점령, UN해양법협약에 명시된 공해 방지 의무를 위반한 예방의무 위반 등[7] 갑치코보-너지머로시 프로젝트 사건(1997 ICJ)에서 재판부는 "위법성 조각사유의 사유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보상 의무까지 면제되거나 사유의 인정 만으로는 조약 종료의 근거가 될 수 없으며, 해당 사유가 해소될 경우 조약 이행의 의무는 다시 적용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8] 이하 별다른 언급이 없을 시 조항의 언급은 모두 상술한 ILC 초안의 조항이다.[9] UN 헌장 제7장 51조에서 명시된 자위권은 어떠한 형태의 무력 사용도 금지하는(제2조 제4항) 현 UN 체제에서 안보리의 무력 사용 행사와 함께 몇 안 되는 합법적 무력 사용의 경우이다. 이는 국제법 이전 각 국가의 고유 권리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10] 쉽게 말해 A국이 B국 국민에 대한 인권 침해를 저지른다 하더라도 이에 맞서 B국은 A국 국민에게 똑같은 인권 침해를 저지를 수 없다.[11] 인간의 고유한 생명권과 사형에 관한 조항(제6조), 고문과 비인도적인 대우 특히 생체 실험 금지에 대한 조항(제7조), 노예제도 및 예속상태 금지에 대한 조항(제8조), 계약상 의무의 이행불능만을 이유로 한 구금의 금지에 대한 조항(제11조), 국제법 및 국내법에 대한 법률 불소급 원칙에 대한 조항(제16조), 법 앞에서 인간으로 인정받을 권리에 대한 조항(제16조), 사상과 양심 및 종교의 자유(제18조)[12] 과거에는 대응조치 대신 복구(reprisal)라는 용어가 더 보편적이었으나 해당 용어는 무력 사용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현대 들어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13] 대응조치는 징벌이 아닌 국제의무 준수를 유도하는 수단이다.[14] 갑치코보-너지머로시 프로젝트 사건(1997 ICJ)에서 재판부는 유책국에 대한 상대국의 조치가 비례성을 위반하는 과도한 결과를 초래할 경우 합법적인 대응조치로 볼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15] 2017년 김정남 피살 사건 당시 북한은 자국 내 말레이시아인 11명의 출국을 금지하였고, 이에 맞서 말레이시아 또한 북한 내 자국민의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자국 내 북한인의 출국을 금지하였다.[16] 이는 국제법 위반이다. 자국민의 자유 의사에 따른 입국을 막는 것과 외국인의 자유 의사에 따른 출국을 막는 것은 원칙적으로 국제인도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반대의 경우 즉 자국민의 출국과 외국인의 입국을 막는 것은 국가의 재량 사항이며 국제법에서 관할하지 않는다.[17] ICJ 재판에서 후발적 이행불능이 인정받는 사례는 극히 드문데, 불가항력으로 인정받은 사유는 적게나마 보인다.[18] 정확히 말하자면 해당국이 불가항력적 상황에 기여하는 정도를 넘어, 해당국의 행위로 인해 불가항력적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만 말한다.[19] 예: 국가가 특정 상황의 위험에 따른 책임을 부담하기로 사전에 약속한 경우.[20] 이 경우는 ILC 초안 제10조에서 별도로 언급된다. 반란 단체가 신정부/국가를 창설하게 될 경우 국가 책임은 해당 신정부/국가로 넘어간다. 실패할 경우 외국인 보호 등에 대한 국가 책임은 기존 정부/국가로 넘어가지만, 불가항력을 사유로 위법성 조각사유를 주장할 수 있다.[21] 예를 들어 심각한 방사능 유출이 진행 중인 핵잠수함이 승무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인접국 항구로 대피하려는 상황을 가정해 보면 해당 핵잠수함의 행위는 역으로 항구의 대규모 인명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 경우 허가 없는 항구 진입에 대해서는 조난의 위법성 조각사유를 적용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22] 악천후 및 천재지변은 사실상 조난 상황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와 관련해 UN해양법협약에서는 악천후 및 천재지변으로 인한 예외 상황이 상당히 많이 언급된다. 예를 들어 무해통항권과 관련하여 타국 선박의 영해 통항을 인정하는 대신 정선이나 투묘 등을 금지하고 있으나, 악천후 및 천재지변의 상황에서는 이를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또한 항만국은 자신의 재량으로 타국 선박의 입항을 거부할 수 있으나 마찬가지로 악천후 및 천재지변의 상황에서는 입항을 허용해야 한다. 이 외 자발적으로 내수로 입항한 외국 선박 및 승무원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연안국이 형사관할권을 행사하나, 악천후 및 천재지변의 상황으로 인해 입항한 경우는 기국주의(기국의 형사관할권 행사)가 적용된다.[23] 한국 국제법 학계에서는 크게 '긴급피난' 혹은 '필요성'이라는 번역어가 통용된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국제법 교과서는 크게 정인섭 저 "신국제법강의"와 김대순 저 "국제법론"이 있는데 두 교과서는 각자 "긴급피난", "필요성"으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여담으로 두 사람은 해당 용어의 사용에 대해 상당히 첨예하게 날을 세우고 있다. 김대순 교수의 경우 왜 "필요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야 하는지 논문을 저술했을 정도.[24] 지금 당장 닥친 위험이든, 당장 발생하지 않은 위험이든 급박한 상황이어야 한다.[25] 갑치코보-너지머로시 프로젝트 사건(1997 ICJ)에서 재판부는 긴급피난/필요성을 관습국제법상 제도로 인정하면서 동시에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서만 인정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 또한 재판부는 당시 한창 작업 중이던 ILC 초안에 제시된 긴급피난/필요성의 요건을 지지하는 태도를 보였다.[26] 1967년 토리 캐니언 호 좌초 사고를 말한다. 당시 영국의 영해 외곽 공해에서 라이베리아 소속의 유조선 토리 캐니언 호(Torrey Canyon)가 악천후로 좌초된 사건이 터졌는데, 그 과정에서 선박이 손상되어 다량의 원유가 근처 수역과 영국 연안에 유출될 위기에 놓였다. 여러 구난 조치가 모두 실패하게 되자 영국 정부는 최종적으로 선적국인 라이베리아의 동의 없이 배를 폭파시켜 원유를 소각시키는 방식으로 되돌릴 수 없는 환경 오염을 방지하였다. 영국은 극도의 위기 상황에서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며 위법성 조각사유를 주장했고, 실제로 이에 대해 국제적인 비난이나 항의는 제기되지 않았다. 이후 해당 사고를 계기로 해난 사고로 인한 유류 오염(이후 추가의정서를 통해 조치 대상이 유류 이외 물질로도 확대됨)에 따른 위혐을 연안국이 방지/완화/제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공해에서도 취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게 된 "유류 오염 시 공해상 개입에 관한 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relating to Intervention on the High Seas in Cases of Oil Pollution Casualties)"이 1969년 채택되어 1975년 발효되었다.[27] 다만 앞서 언급되었듯 위법성의 조각과 손해배상은 별개의 의무인지라 이후 영국은 동의 없는 라이베리아의 선박 파괴 행위에 대해서, 라이베리아는 영국의 환경 오염이라는 피해를 끼친 행위에 대해서 서로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이 부과되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해당 선박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기업 소속이었고 편의치적 상 문제로 라이베리아 앞으로 등록되었지만, 그럼에도 서류상 기국은 라이베리아였던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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