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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월드 사커 창간 60주년 기념호[1]
축구를 주로 다루는 영국의 잡지다. 1960년에 창간하였다. 해마다 가장 잘했던 클럽 순위를 선정하고, 가장 잘한 선수 순위를 선정하는 등의 활동을 한다. 원로 축구전문가 에릭 베티가 주도하여 32년간 선정했던 베스트 팀, 그리고 2013년에 다국적 축구 전문가 73명이 투표 방식으로 선정한 역대 베스트 일레븐 등으로 유명하다. 특히 후자는 국내에서도 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편.
2.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자세한 내용은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문서 참고하십시오.3. 월드 사커 올해의 감독
자세한 내용은 월드 사커 올해의 감독 문서 참고하십시오.4. 월드 사커 올해의 팀
연도 | 국적 | 수상 팀 |
1982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 |
1983 | 함부르크 SV | |
1984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 |
1985 | 에버튼 FC | |
1986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 |
1987 | FC 포르투 | |
1988 |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 |
1989 | AC 밀란 | |
1990 | 서독 축구 국가대표팀 | |
1991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 |
1992 | 덴마크 축구 국가대표팀 | |
1993 | 파르마 AC | |
1994 | AC 밀란 | |
1995 | AFC 아약스 | |
1996 |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
1997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 |
1998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 |
1999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 |
2000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 |
2001 | 리버풀 FC | |
2002 |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 |
2003 | AC 밀란 | |
2004 | 그리스 축구 국가대표팀 | |
2005 | 리버풀 FC | |
2006 | FC 바르셀로나 | |
2007 |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 | |
2008 |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 |
2009 | FC 바르셀로나 | |
2010 |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 |
2011 | FC 바르셀로나 | |
2012 |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 |
2013 | FC 바이에른 뮌헨 | |
2014 |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 |
2015 | FC 바르셀로나 | |
2016 | 레스터 시티 FC | |
2017 | 레알 마드리드 CF | |
2018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 |
2019 | 리버풀 FC | |
2020 | FC 바이에른 뮌헨 | |
2021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
2022 |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 |
2023 | 맨체스터 시티 FC |
4.1. 기록
- 최다 수상팀: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5회)
- 최다 수상 국가: 스페인 (8회)
5. 월드 사커 역대 베스트 XI
2013년 월드 사커에서 선정한 역대 베스트 11[2] |
5.1. 선정 방식
축구 저널리스트, 축구 전문 기자, 전 축구선수 또는 감독들로 구성된 73명의 다국적 전문가가 각자의 베스트 11을 4-4-2 포메이션에 맞추어 선정했다. 골키퍼 한 명, 풀백 두 명, 센터백 두 명, 미드필더 네 명, 공격수 두 명을 선정하는 방식이다. 선정인단 구성원 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예지 두덱, 즈비그니에프 보니에크도 있었다.5.2. 투표 결과
월드 사커 공식 사이트- 베스트 11:
- 레프 야신
- 카푸
- 바비 무어
- 프란츠 베켄바워
- 파올로 말디니
- 요한 크루이프
- 지네딘 지단
- 디에고 마라도나
-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 리오넬 메시
- 펠레
- 교체 명단 7인[3]
- 고든 뱅크스[4]
-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 프랑코 바레시
- 미셸 플라티니
- 가린샤
- 페렌츠 푸스카스
- 호나우두
5.2.1. 골키퍼
순위 | 이름 | 득표수 |
1 | 레프 야신 | 31 |
2 | 고든 뱅크스 디노 조프 | 6 |
4 | 잔루이지 부폰 페테르 슈마이켈 | 5 |
6 | 이케르 카시야스 | 4 |
7 | 제프 마이어 | 3 |
8 | 팻 제닝스 올리버 칸 에드빈 판데르사르 | 2 |
11 | 아마데오 카리조 페트르 체흐 미셸 프뢰돔 발테르 쳉가 | 1 |
5.2.2. 풀백
순위 | 이름 | 득표수 |
1 | 파올로 말디니 | 48 |
2 | 카푸 | 24 |
3 | 카를루스 아우베르투 | 18 |
4 | 호베르투 카를루스 | 13 |
5 | 자우마 산투스 | 11 |
6 | 자친토 파케티 | 7 |
7 | 니우통 산투스 | 6 |
8 | 베르티 포크츠 | 4 |
9 | 릴리앙 튀랑 | 3 |
10 | 뤼트 크롤 빅토르 로드리게스 안드라데 칼하인츠 슈넬링어 | 2 |
13 | 안드레아스 브레메 다니 알베스 클라우디오 젠틸레 필립 람 비셴테 리자라쥐 대니 맥그레인 하비에르 사네티 | 1 |
5.2.3. 센터백
순위 | 이름 | 득표수 |
1 | 프란츠 베켄바워 | 68[5] |
2 | 바비 무어 | 23 |
3 | 프랑코 바레시 | 22 |
4 | 다니엘 파사레야 | 4 |
5 | 파비오 칸나바로 존 찰스 마르셀 드사이 폴 맥그라스 | 3 |
9 | 주세페 베르고미 | 2 |
10 | 잭 찰튼 리카르도 페리 엘리아스 피게로아 페르난도 이에로 알레산드로 네스타 로베르토 로사토 호세 산타마리아 가에타노 시레아 존 테리 옵둘리오 바렐라 빌리 라이트 | 1 |
5.2.4. 미드필더
순위 | 이름 | 득표수 |
1 | 디에고 마라도나 | 64 |
2 | 요한 크루이프 | 58 |
3 | 지네딘 지단 | 28 |
4 |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 24 |
5 | 미셸 플라티니 | 18 |
6 | 가린샤 | 15 |
7 | 조지 베스트 | 12 |
8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 7 |
9 | 바비 찰튼 로타어 마테우스 | 5 |
11 |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차비 에르난데스 | 4 |
13 | 지지 소크라치스 | 3 |
15 | 로베르토 바조 토니뉴 세레주 프란시스코 헨토 라이언 긱스 스탠리 매튜스 요한 네스켄스 히벨리누 지쿠 | 2 |
23 | 리엄 브래디 졸탄 치보르 로베르토 도나도니 루이스 피구 자이르지뉴 로이 킨 그제고슈 라토 클로드 마켈렐레 루이스 몬티 파벨 네드베드 귄터 네처 페르난도 레돈도 롭 렌센브링크 프랑크 레이카르트 브라이언 롭슨 호나우지뉴 후안 스키아피노 | 1 |
5.2.5. 공격수
순위 | 이름 | 득표수 |
1 | 펠레 | 58 |
2 | 리오넬 메시 | 46 |
3 | 페렌츠 푸스카스 | 11 |
4 | 호나우두 | 9 |
5 | 마르코 반 바스텐 | 5 |
6 | 게르트 뮐러 | 4 |
7 | 올레흐 블로힌 에우제비우 | 2 |
9 | 주세페 메아차 루이지 리바 호마리우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안드리 셰브첸코 | 1 |
5.3. 고려사항
골키퍼 한 명, 풀백 두 명, 센터백 두 명, 미드필더 네 명, 공격수 두 명을 선정하는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의 최고 선수라고 할 수 있는 프랑크 레이카르트 같은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았다. 중앙 미드필더인 로타어 마테우스도 마찬가지이다. 이들 역시 대단한 선수였지만, 공격형 미드필더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투표에서는 불리하다.또한 투표인단 구성을 보면 유럽인들이 대부분인데, 때문에 남미 선수들의 경우에는 펠레, 메시, 카푸처럼 본인의 포지션에서 절대적인 명성을 가진 선수들이 아닐 경우 투표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80년대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지쿠가 고작 두 표에 그쳤고 남미 올해의 축구 선수상을 역사상 최초로 3연속 수상한 엘리아스 피게로아도 센터백 부문에서 단 1표에 그쳤다.
6. 월드 사커 올해의 팀
자세한 내용은 월드 사커 올해의 팀 문서 참고하십시오.6.1. 관련 기록
[1] 시계 방향으로 리오넬 메시, 조지 베스트 / 요한 크루이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펠레, 호나우두, 디에고 마라도나[2] 본사에서 밝힌 내용과 위 사진의 득표수 차이가 조금 있다.[3] 베스트 11 제외 득표 순위 가장 높은 골키퍼 1명, 풀백 1명, 센터백 1명, 미드필더 2명, 공격수 2명.[4] 디노 조프와 동순위[5] 전체 선수 중 최다 득표자. 5명 빼고 모두 자신의 베스트 11에 베켄바워를 포함시켰다.[6] 1970년의 자료는 누락되어 확인이 불가하지만 월드컵 4강을 이끈 활약을 고려했을 때 당연히 선정되어야 했다. 1970년을 제외하면 11회 연속 수상이다. 이미 4년 연속으로 선정된 상태였고, 이후 1977년까지 7년 연속으로 더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