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5대 성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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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변산성지 Won-Buddhism Byeonsan Holy Ground | 圓佛敎 邊山聖地 | |
주소 | <colbgcolor=#fff,#121212>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산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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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변산면 중계리 내변산에 있는 원불교 성지. 변산반도 국립공원 내에 있으며,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5년 간 머무르며 교법을 반포한 곳이다.
2. 역사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는 원기 4년(1919년), 방언공사가 마무리 될 즈음에 영광경찰서에서 1주일 정도 조사를 받고 나와 변산 월명암을 찾게 된 것이 변산과 첫 인연이 됐다. 같은 해 3월에 오창건을 데리고 변산 월명암에서 10일 정도 머문 후 돌아와 7월 말에는 정산 송규 종사를 보냈고, 10월에는 몇 년 동안 수양할 계획에 따라 월명암으로 간다. 이후 소태산 대종사가 월명암에 있다는 소문이 인근에 퍼지자 전주, 김제 등지에서 교도들이 찾아와 모시기를 원했고, 12월 변산 중앙지인 실상사 옆 몇 간 초당에 거처를 정하고 몇몇 제자와 더불어 최소한의 살림을 하면서 수양을 시작했다.원기 5년(1920년) 4월, 소태산 대종사는 지금의 원불교의 기초 교리인 사은사요와 삼학팔조를 발표했으며, 원불교 초기교서인 <조선불교혁신론>과 <수양연구요론> 초안을 발표한다.
원기 6년(1921년) 7월, 제자 김남천, 송적벽 등의 제안으로 초당의 건축을 착공하여 그 해 9월에 준공하고 이름을 석두암이라 정했다. 참고로 이 당시 소태산 대종사는 밖으로 승려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불교 사찰의 법도를 일일이 조사하고, 안으로는 제자들과 더불어 새 회상의 첫 교서 초안 작성에 힘을 썼다.
원기 8년(1923년) 6월, 제자 서중안, 동풍 형제가 와서 "교통과 장소가 편리한 곳을 택하여 모든 사람의 앞길을 널리 열어 주심이 시대의 급무일까 하나이다"하며 소태산 대종사의 하산을 원했다.
원기 9년(1924년) 4월 29일, 소태산 대종사는 이리 보광사에서 불법연구회 창립총회를 열어 '불법연구회'라는 임시 교명을 공개했다. 원불교의 교화기지를 이리로 정하고 봉래정사에서 이리로 기거를 옮기자 대종사가 떠난 봉래정사를 제자 김남천 일가가 남아 1년 간 지켰다. 이후 원기 10년(1925년)부터 이춘풍 일가, 이보국 내외, 전종환 등이 차례로 지킨 뒤, 실상동 주민 고진관 일가에게 위탁했다.
원기 33년(1948년) 9월, 석두암을 고쳐서 지었으나 원기 35년(1950년) 10월에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소실됐다. 이후 교단이 손을 쓰지 못 하다가 원기 63년(1978년) 10월에는 월명암 주지 개인사찰 '원광선원' 및 토지를 인수하면서 원기 64년(1979년) 4월 원광선원을 하섬수양원 변산 분원으로 출범, 12월에는 변산 제법성지 사업회를 발족했다.
원기 65년(1980년) 7월, 봉래정사 석두암 터에 교강 반포 60주년을 기념하여 ‘일원대도(一圓大道)’비를 건립했다.
원기 66년(1981년) 1월, 봉래수양원으로 기관이 승격되어 같은 해 5월 21일, 대산 김대거 종법사가 참석한 가운데 일원대도비 봉고식을 거행했다.
3. 시설
4. 여담
- 변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국립공원 한가운데에 있는 곳이기 때문에 입장료를 내고 출입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