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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8-17 03:48:07

웅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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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8000> 웅광
熊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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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熊)
광(狂)
아버지 웅려(熊麗)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년

1. 개요

1. 개요

초나라(楚)의 군주의 선조. 웅려(熊麗)의 아들. 웅역(熊繹)의 아버지.

웅광의 할아버지는 육웅(鬻熊)이었다. 죽간본 《초거(楚居)》에 따르면, 육웅과 동일인 또는 매우 가까운 선조로 여겨지는 혈웅(穴熊)의 아내 비려(妣厲)는 아들 여계(麗季), 즉 웅려를 낳다가 난산으로 죽었다.[1] 비려가 죽자 무함(巫咸)이라는 무당이 그녀의 옆구리를 초(楚)라는 가시나무·관목 가지로 감싸 장사지냈다. 이때부터 자신들의 집단을 '초'라고 부르게 되었다. 《의림(意林)》 등에 보존된 문헌이자 육웅에게 귀속된 《육자(鬻子)》에 따르면, 육웅은 중국사에서 (道)를 최초로 논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때의 도는 노자의 것보다도 정치철학으로서의 면모가 강했다.

청대 엄가균(嚴可均, 1762–1843)이 편찬한 《전상고삼대문(全上古三代文)》 권9의 〈육웅(鬻熊)〉 인물소개에 따르면, 웅려는 아들 웅광을 낳았지만, 육웅이 너무 오래 살아있었기 때문에 웅려도 웅광도 모두 세상을 떠나고 웅광의 아들 웅역이 초 국군 지위를 물려받았다고 한다. 정작 《사기》에서는 육웅에 대해 蚤卒(일찍 죽었다)라고 명시하지만, 《육자》에서는 주나라 문왕을 만났을 당시 이미 90세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에는 무왕과 성왕의 질문에 답하는 내용까지 나온다. 엄가균은 이를 받아들여 육웅이 120세 이상까지 살았다고 추론하여 저렇게 기록한 것이다. 반면 청대 《사고전서총목》 편찬자들은 이를 무왕·성왕 시대의 이야기가 후대에 덧붙었기 때문이라고 보았으며, 현대의 문헌학자들도 이 설을 지지한다.


[1] 아이가 정상적으로 나오지 못해 옆구리를 터뜨리고 나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