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8b0000> 동로마 제국 세바스토크라토르 Ιωάννης Δούκας | 요안니스 두카스 | |
칭호 | 세바스토크라토르 |
출생 | 1125년/1127년 |
사망 | 1200년 (향년 72~75세) |
배우자 | 조이 두케나 |
자녀 | 알렉시오스 콤니노스 두카스 미하일 1세 콤니노스 두카스 테오도로스 콤니노스 두카스 마누일 콤니노스 두카스 콘스탄티노스 콤니노스 두카스 |
종교 | 정교회 |
참전 | 1185년 시칠리아 왕국의 발칸 침공 아센과 페터르의 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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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콘스탄티노스 앙겔로스와 알렉시오스 1세의 4녀 테오도라 콤니니의 장남으로, 알렉시오스 1세가 실시한 콤니노스 족벌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2. 생애
요안니스는 신흥 귀족에 불과했던 앙겔로스나 콤니노스보다 명망이 높았던 두카스 가문의 성을 따랐으며, 미리오케팔론 전투 등 마누일 1세의 군사 원정에 종군하며 콤니노스 왕조에 충성했다.그러나 사촌 형제인 안드로니코스 1세가 마누일 1세의 아들 알렉시오스 2세를 죽이고 제위를 찬탈하자 안드로니코스를 축출하는 반란에 가담하였고, 황제로 즉위한 조카 이사키오스 2세로부터 세바스토크라토르 칭호를 수여받았다.
당시 동로마 제국은 안드로니코스의 폭정과 앙겔로스 왕조로 이어지는 정권 교체의 혼란을 틈타 발칸 반도를 침공한 시칠리아 왕국과 전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이사키오스 2세는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불가리아인들에게 무거운 세금을 부과했는데, 이때 요안니스가 이사키오스를 찾아온 아센의 뺨을 때리며 아센과 페터르의 난이 촉발된다.
이에 요안니스 두카스는 이사키오스에 의해 불가리아 전선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어 반란 진압을 맡았다. 그는 불가리아군과의 소규모 교전에서 승리를 거듭했으나, 군대에 의해 황제로 추대된 알렉시오스 브라나스가 반란을 일으키자 브라나스와 같은 콤니노스 족벌인 요안니스 또한 이사키오스 2세의 의심을 받아 해임되었다.
그후 이사키오스 2세가 폐위되었을 때 또다른 조카인 알렉시오스 3세의 대관식에 참석한 요안니스는 1199년에 일어난 마누일 카미치스의 난을 진압하는 등 군사 활동을 벌이다가 1200년에 사망했다.
3. 여담
콤니노스의 중흥과 몰락을 모두 지켜보았고, 앙겔로스 왕조가 들어선 이후에도 동로마 제국을 위해 고령의 몸으로 전장에 나선 충신이다.군사적으로도 매우 유능했던 듯한데, 그와 같은 콤니노스 족벌인 알렉시오스 브라나스나 마누일 카미치스가 반란을 일으키는 와중에도 마지막까지 앙겔로스 왕조에 충성했다.
하지만 동로마 제국은 요안니스가 죽은 지 몇 년 만에 4차 십자군으로 멸망했으며, 미하일 1세 콤니노스 두카스를 비롯한 그의 사생아들이 건국한 이피로스 전제군주국도 짧은 전성기 끝에 몰락하게 된다.
조국의 몰락을 보지 못하고 떠난 게 그의 입장에서 위안이라면 위안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