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국시대의 유명한 일본도
요시모토 사몬지(義元左文字)[1] | |||
도공 | 사에몬노죠 야스요시(左衛門尉安吉) | 도파 | 사몬지 |
제작 시기 | 남북조시대 | 종류 | |
길이 | | 현존 여부 | 타케이사오 신사(建勲神社) 소장 교토국립박물관에 기탁중 |
명문 | 본문 참고 | 문화재 등록 | 중요문화재 공예품 제 1365호 |
天下取りの刀
천하를 얻은 자의 칼
남북조 시대에 만들어진 일본도. 알려진 최초의 소유자는 미요시 마사나가(三好政長)로, 소우자(宗三)는 마사나가의 법명인 한인노키소우자(半隠軒宗三)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때문에 미요시 사몬지라는 이명도 있다. 그런데 미요시 마사나가는 이것을 카이의 다이묘 다케다 노부토라[2]에게 선물로 보냈고, 다케다 노부토라의 딸이 이마가와 요시모토와 혼인하면서 다시 혼인선물로 이마가와 요시모토에게 넘어간다. 이 때문에 붙은 이름이 요시모토 사몬지. 천하를 얻은 자의 칼
좌측면 '永禄三年五月十九日 義元討捕刻彼所持刀 (에이로쿠 3년 5월 19일, 요시모토를 공격해서 빼앗고, 칼을 가지게 된 바를 새긴다)' 우측면,'織田尾張守信長 (오다 오와리노카미 노부나가) |
이후 혼노지의 변으로 죽을 때까지 오다 노부나가의 애도가 되었으며, 오다 노부나가의 세력을 얻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칼이 되었고, 오사카 전투로 도요토미 가문이 무너지던 상황에서는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거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넘어간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후 도쿠가와 막부 쇼군 가의 상징 중 하나가 되었고, 메이지 유신이 있은 뒤에는 메이지 덴노가 이 칼을 얻었다. 메이지 덴노는 메이지 3년 오다 노부나가를 신으로 받드는 다케이사오 신사를 건립하고 칼을 신사에 봉헌했다. 오다 노부나가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봉헌할 때 이름은 요시모토 사몬지.
마지막 주인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제외하면 검의 소유자들의 최후가 안좋아서 일본에서는 마검 아니냐는 농담이 나온다.[3]
2. 도검난무의 등장 캐릭터
자세한 내용은 소우자 사몬지(도검난무) 문서 참고하십시오.3. 천화백검의 등장 캐릭터
자세한 내용은 요시모토 사몬지(천화백검) 문서 참고하십시오.[1] 여러 이름이 있으나 문화재로 등록된 이름을 따름.[2] 다케다 신겐의 아버지[3] 첫 소유자인 미요시 마사나가는 에구치 전투에서 사망, 2번째 소유자인 다케다 노부토라는 아들인 다케다 신겐에게 쿠데타를 당해 유패, 3번째 소유자인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전사, 4번째 소유자인 오다 노부나가는 혼노지의 변, 5번째 소유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경우 생애에는 문제가 없지만 이에야스에 의해 가문이 멸문, 6번째 소유자인 도요토미 히데요리는 오사카 성 전투에서 패배해 할복. 7번째 소유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덴뿌라 먹다 급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