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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3-11 17:27:58

왕 노인

1. 개요2. 작중 행적3. 기타

1. 개요

전생하니 시어머니가 29명의 등장인물.

2. 작중 행적

왕창근의 상단에 머무르고 있는 왕씨 성의 노인. 연우는 처음에 창근의 친족으로 알았으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비범한 모습을 보여준다. 고려 왕실과의 거래를 독점하던 상단의 거물로 계산 문제에 매우 까다로워서 임연우가 거래 과정에서 돈 문제로 고생 좀 하게 만들었다.

이후 연우의 공이 높아지면서 한림학사에서 물러나 잠시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자 이를 잠재울 일을 터뜨려보라는 왕건의 지시에 연우는 다시금 왕 노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난데없는 부탁에 의아해하던 왕 노인이었으나 이내 하인으로 분장한 최언위가 그를 알아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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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노인의 정체는 실종되었다 알려진 신라삼최 중 1명, 최치원이었다. 이전부터 왕노인의 비범함을 의심하던 연우는 팔관회에서 왕노인이 자신이 읊은 이규보의 시를 정확히 평가하자 해인사 얘기를 꺼내 왕노인을 떠보면서 그가 최치원임을 얼추 확신하고 필요한 때 써먹기 위해 계속해서 이규보의 시를 종종 거론하며 붙들다가 때가 되자 그의 정체를 폭로해 고려에 귀의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연우의 계책에 넘어갔음을 깨달은 최치원은 정체를 들킨 시점에서 빨리 떠났어야 했다며 가볍게 탄식하면서도 고려에 남기로 결심한다. 다만 본인은 조국인 신라의 붕괴를 막지 못했다며 출사를 거부했으며 이후에는 상산저에서 손님으로 머무르게 된다.

신라 말 명성을 떨친 신라삼최 중 으뜸으로 받들어지고 있는 데다 정체를 가장 먼저 간파한 것도 연우다 보니 연우에게 학문과 식견을 가르친 스승으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최치원 본인 입장에서는 생뚱맞은 소리인지라 이를 부정하지만 워낙 세상일과 손을 뗀 인물이라 그런지 주위에서는 세상일에 관여한 게 들키기 싫어서 둘러댄 거라고 받아들이고 있고 연우 역시 사실이 아닌 걸 알면서도 역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기에 침묵을 유지하며 학벌사기를 치는 중이다. 이후 임연우에게 종종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면서 조언자 노릇을 하고 있는데, 왕건은 최치원의 명성을 알기에 출사시키고 싶어했지만 최치원은 그것만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임연우의 글씨 트릭을 보고 임연우의 정체를 어렴풋이 간파해 "이게 별로 좋은 현상 같지 않다"며 세월이 지나고 나서도 똑같은 트릭이 가능한지 시험해 보라 조언하고, 임연우도 7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뒤 이전과 달리 김선우의 정체성이 아니라 임연우의 정체성이 우선시되었음을 글씨 트릭으로 깨닫고 왕무와 합방하게 된다.

신라왕 김부(경순왕)가 왕건에게 항복하고 며칠 뒤 사망한다. 임연우와 대화하면서 임연우의 정체를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고, 최언위와 잠깐 대화하고 얼마 뒤, 최치원이 곧 죽는다는 말을 듣고 개경에서 많은 사람들이 문병을 왔으며 김부도 최치원을 문병했다고 한다. 최치원이 개경에 머물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한 번쯤은 만나고 싶었다고 한다.[1] 신라의 멸망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신라에 대한 애착이 남아있던 최치원에게 있어 6두품을 만나러 신라왕이 직접 들른다는 건 보기 힘든 일이기 때문에 본인도 나름 기쁘기는 했을 거라고 한다.

유긍달의 수국 스파이 수법을 일찍 간파했지만 직접 말하지는 않고 수국에 대해 적은 책을 통해 임연우에게 간접적으로 암시하였다. 이 때문에 최치원 사후에 임연우가 알고 이를 이용해 충주파를 와해시킬 수 있었다.

3. 기타

경순왕이 왕건에게 항복한 날은 936년 1월 13일이며, 본작에서도 삼국통일까지 주요 사건의 타임라인은 동일하기 때문에 여기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최치원은 857년생이므로 78~79세까지 산 것이 되는데, 시대를 고려하면 굉장히 장수했다.

임연우에게는 상당한 호감을 갖고 있어 신라 멸망을 안타까워한 것과 별개로 임연우가 대업을 이루는 광경을 보고 싶었다고 한다. 최치원도 신라의 명이 다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김부가 고려에 항복했을 때 왕건이 보인 관대한 조치를 보고 안도했다고 한다. 본작의 최치원은 김씨 왕조 친위대 출신 반역자수도를 불태우고 왕을 죽였으며 왕비를 겁탈한 사건까지 다 들은 사람이라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죽기 직전 임연우와 대화하면서 임연우가 "내가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것을 믿냐"고 묻자 "신라인들은 김유신이 33천(이세계)에서 온 사람이라 믿으며 내가 볼 때 임연우도 그런 사람 같다"고 긍정한다. 신라의 멸망을 바라지 않았으면서 임연우의 대업을 보고 싶어 한 것도 이 때문일지도.

여러모로 머리가 굉장히 비상한 인물인데, 이런 사람이 신라의 진골 꼰대 때문에 허망하게 실패했음을 고려하면 안타까울 정도다. 실종 이후 뭣 때문에 고려에서 신분을 숨기고 상인으로 살고 있었는지는 불명이나, 고려 조정에 대한 출사만은 죽을 때까지 거부하는 등 마지막까지 고려인보다는 신라인에 가까운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던 인물이다.

유학자치고는 그렇게 고리타분하지는 않은지 임연우를 여자라고 무시하지도 않고 임연우의 글씨 트릭을 보고 전생자라는 것을 어렴풋이 직감하거나 임연우가 삼십삼천에서 온 사람이라는 말을 믿기도 했다. 한때 여자인 진성여왕에게 충성했음을 고려하면 임연우를 보고 옛날 진성여왕 밑에 있던 시절이 떠올랐을지도 모른다.[2]


[1] 최치원이 김부의 외조부 헌강왕의 여동생 진성여왕 때 주로 활동한 인물이며, 후삼국시대의 혼란을 막고자 최치원이 내놓은 개혁정책을 진골들이 끝내 거부한 대가로 최치원 생전에 신라가 멸망했으니 경순왕 입장에서도 복잡한 감정이 들었을 것이다.[2] 진성여왕은 현대 학계에서 나름대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서 후삼국시대 때 반세기 가까이라도 버틸 수 있었다는 재평가를 받는데, 그런 진성여왕의 조치인 지주제군사(知州諸軍事)는 최치원이 당나라의 지주군주사(知州軍州事)를 모방해서 만든 것이다. 이 때문에 최치원은 진성여왕을 나름 긍정적으로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