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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9-18 02:16:57

옹무

雍茂

?~221년

1. 개요2. 생애3. 창작물에서

1. 개요

삼국시대 촉한의 인물.

2. 생애

유비 아래서 주부를 지냈고 221년에 유비가 한을 계승하여 칭제하려 하자 옹무는 유파와 함께 유비에게 인재를 영입하고 민심을 얻는데 힘써야한다고 간언하며 칭제에 반대했지만, 유비가 별도의 죄목을 들어 옹무는 처형되었다. 이때 옹무를 죽인 일로 인해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이 다시는 오지 않았다고 한다.

옹무는 칭제에 반대하다가 죽었지만 함께 간언한 유파는 죽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삼국지집해에서 신빙성이 의심되는 학자들의 의견이 있는데, 이청식[1]은 유파가 유비의 즉위문과 조서를 작성한 점을 들어 유비의 황제 즉위를 유파도 반대하지 않았을거라 주장했으며, 영릉선현전의 내용 대다수가 유비를 괴롭히고자 적국에서 비방했던 말이기에 믿을 것이 못 된다고도 했다. 유가립[2] 또한 정사와 배치되는 점을 들어 유파가 유비의 즉위를 반대했다는 근거는 신뢰하기 어렵다면서 배송지가 교정할 때 우연히 올라온 것 뿐이라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3. 창작물에서

소설 삼국지 유비로 천하쟁패에서는 유파, 비시와 함께 부름을 받자 자신의 관등성명을 대는 것으로 나오며, 유비의 명에 따라 유파, 비시와 함께 정세를 논하고 형, 익, 량주의 힘을 모을 방법을 고안하라고 하면서 유파, 비시와 함께 촉한왕을 칭할 것을 제안한다.


[1] 李清植, 청나라 강희제때 학자.[2] 劉家立, 청 말의 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