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1] | 올리버 에기만 (Oliver Eggimann) |
생년월일 | 1919년 1월 28일 |
사망년월일 | 2002년 4월 6일 (향년 83세) |
국적 | 스위스 |
출신지 | 르낭 |
포지션 | 센터 하프 |
신체조건 | 174cm | 74kg |
소속팀 | FC 로잔 스포르 (1936-1939) BSC 영 보이즈 (1939-1945) FC 로잔 스포르 (1945-1948) 세르베트 FC (1948-1951) ES FC 말리 (1951-1952) FC 라쇼드퐁 (1952-1957) |
국가대표 | 44경기 (1941-1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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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위스의 전 축구 선수.2. 생애[2]
2.1. 선수 생활
2.1.1. 클럽
에기만은 고향 르낭을 연고로 하는 FC 르낭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배우다 1936년, 900프랑에 FC 로잔 스포르로 팀을 옮겼고 그곳에서 센터 포워드로 1군 무대에 데뷔했다.에기만은 1939년, BSC 영 보이즈에 합류했다가 1945년에 다시 로잔 스포르로 돌아왔지만 3년 후에 세르베트 FC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세르베트에서 에기만은 스위스 대표팀 감독을 겸임하던 카를 라판을 만났고 라판은 에기만의 포지션을 센터 하프로 변경시켰다. 이것은 1949-50 시즌의 나티오날리가 A 우승과 함께 에기만의 1950년 월드컵 대표팀 선발로도 이어진 좋은 선택이었다.
1952년에 에기만은 ES FC 말리에서의 1시즌을 거쳐 FC 라쇼드퐁으로 이적했다. 라쇼드퐁은 당시 이르지 소보트카 감독의 지휘 아래 나티오날리가 A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던 팀이었고 에기만은 여기서의 5년간 나티오날리가 A 우승 2회, 스위스컵 우승 3회의 커리어를 더 추가했다.
2.1.2. 국가대표
에기만은 스위스 대표팀에서 두 차례(1950, 1954)의 FIFA 월드컵에 참가했고 44경기에 출전했지만 득점은 없었다.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에기만은 범상치 않은 달리기 능력으로 인해 '마라톤 축구 선수'로 알려졌다. 그는 강한 몸싸움 능력, 기술적 재능을 갖췄으며 패스와 스피드도 좋았다. 또한 그는 경력동안 큰 부상으로 커리어에 영향을 받은 적이 없는 금강불괴였다.4. 수상
4.1. 클럽
- 나티오날리가 A 우승 3회: 1949-50(세르베트 FC), 1953-54, 1954-55(이상 FC 라쇼드퐁)
- 스위스컵 우승 6회: 1938-39(FC 로잔 스포르), 1944-45(BSC 영 보이즈), 1948-49(세르베트 FC), 1953-54, 1954-55, 1956-57(이상 FC 라쇼드퐁)
- 나티오날리가 A 준우승 3회: 1940-41(BSC 영 보이즈), 1946-47(FC 로잔 스포르), 1955-56(FC 라쇼드퐁)
- 스위스컵 준우승 2회: 1945-46, 1946-47(FC 로잔 스포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