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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5 22:49:22

오오쿠니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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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십칠세신 제6대
오오쿠니누시
大国主
파일:오오쿠니누시.jpg
농업, 의술, 주술의 신
<colbgcolor=#950017><colcolor=#fff> 신족 쿠니츠카미
이름 오오쿠니누시노 카미
(大国主神)
별명 오오아나무치노 카미(大穴牟遅神)
야치호코노 카미(八千矛神)
미모로노 카미(三諸神)
카쿠리요노 오오카미(幽世大神)
오오쿠니타마노 카미(大国魂神)
키즈키노 오오카미(杵築大神)
아메노시타츠쿠라시시 오오카미(所造天下大神)
별칭 오오쿠니누시노 오오카미(大国主大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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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50017><colcolor=#fff> 부모 부친 아메노후유키누(天之冬衣神)
모친 사시쿠니와카히메(刺国若比売)
형제 카구츠치의 시체에서 태어난 다른 신들
배우자 스세리비메(須勢理毘売命) 등
자녀 코토시로누시(事代主神)
타케미나카타(建御名方神) 등
신사 이즈모타이샤(出雲大社) 등
}}}}}}}}} ||

1. 개요2. 특징3. 별명

[clearfix]

1. 개요

일본 신화의 신. 쿠니츠카미에 속한다. 삼귀자 중 한명인 스사노오의 뜻을 잇고 스쿠나히코나와 협력해 천하를 다스리며 인간들에게 주술과 의학을 가르쳐 일본국을 만든 신이나 타카마가하라에서 내려온 사자로부터 일본을 내놓으라는 요구에 저승의 주인이 됨으로써 현계에서 모습을 감췄다고 전해진다.

2. 특징

이즈모 신화의 신으로서 일본 신화에서 하늘의 신 아마츠카미를 대표하는 아마테라스와 대조적으로 대지의 신 쿠니츠카미를 대표하는 신이다. 대표적인 신화로는 고사기일본서기에 기록된 아시하라노나카즈쿠니(葦原中国) 건국 및 국토 이양 신화가 잘 알려져 있으며 이외에도 이나바의 흰토끼 설화, 저승 방문 설화, 누나카와히메와의 결혼 설화가 고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쿠니츠카미에 속하지만 특이하게도 스사노오의 혈통을 잇고 있는 신인데[1] 일본서기 본문에서는 스사노오의 아들로 언급되고 있고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일서나 신선성씨록(新撰姓氏録)에서는 스사노오의 6대손으로 나오며 일본서기의 또 다른 부분에서는 7대손 등으로 되어 있기도 하는 등 상세한 부분에서 약간씩 차이가 있다. 형제들에게는 미움을 받아서 몇 번씩이나 죽임을 당하기도 했으나 모두 되살아났으며 이후 저승에 갔다가 아내로 삼은 여신이 역시 스사노오의 딸, 즉 자신의 여동생이었기 때문에 저승의 신이 되어 있던 스사노오와도 사이가 험악해지지만 결국 도피하는 데 성공해서 부부관계를 인정받았다고 전해진다. 참고로 스사노오의 딸 말고도 오오쿠니누시는 다양한 여신과의 사이에서 많은 아이를 낳았다고 하는데 자식의 수는 고사기에서 180명, 일본서기에서 181명이라고 나온다.

스사노오의 후대에 스쿠나히코나(少彦名神)와 협력해 지상을 통치하였다고 하며 마지나이(禁厭), 의약 등을 가르쳐 아시하라노나카즈쿠니(葦原中国) 건국[2]의 토대를 완성시켰다. 이후 아마테라스측 세력이 지상의 지배권을 요구함에 따라 처음 몇 번은 거부의 뜻을 보였지만 결국 타케미카즈치에게 사실상 굴복하여 저승의 지배권을 받는 대신 현세의 지배권을 아마테라스의 천손인 니니기노미코토(瓊瓊杵尊)에 양보하게 된다. 이를 국토 이양 신화라고 하는데 국토 이양의 조건 중 하나로 현세에 자신과 그 휘하 신들을 모실 궁전을 요구하였고 아마츠카미 세력이 그 요구를 받아들여 만들어준 곳이 이즈모 대사(出雲大社)[3]라고 하며 이러한 유래에서 오오쿠니누시는 키즈키노오오카미(杵築大神)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국토 이양 신화에 관련해서 출운국풍토기의 오우군(意宇郡) 지방[4]의 지명 기원 설화에서는 쿠시야쿠치(越八口)라는 괴물을 오오아나모치(大穴持命)[5]가 퇴치한 후 돌아오는 길에 국토 이양의 선언을 했다고 전하고 있다.

국토 이양 신화는 실질적으로 야마토 왕권의 정복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신화이므로 그 주인공인 오오쿠니누시는 고대사에서 큰 의미를 지니는 신이기도 하며 따라서 대부분 잊혀져 버린 쿠니츠카미 중에선 특이하게도 건국의 신, 농업의 신, 상업의 신, 의료의 신 등으로 현재까지 추앙받고 있다. 심지어 大国의 음독이 ‘다이코쿠’로 대흑천(大黒天)과 같은 발음이라는 이유로 신격이 결합되어 민간신앙에까지 침투하기도 했다.

한편 일본의 신들 중에서 특히 많은 별명을 가진 신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신으로서의 덕망이 높음을 의미한다고도 풀이되지만 원래 따로 있던 토착신앙들이 하나의 신으로 결합하면서 남은 흔적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러한 개별 토착신앙의 상당수는 시코쿠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오오쿠니누시를 받드는 신사 중 가장 역사 깊은 곳은 나라현의 오오미와 대사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이기도 하다. 나라를 만드는 신, 농업의 신, 상업의 신, 의료의 신등 다양한 신격을 지니고 있으나 그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바로 '남녀 간의 사랑과 인연을 맺는 것'이다.[6]

이창재의 <신화의 정신분석>에 따르면 일본 민족에게 농작물과 풍요와 생식, 생간 기능, 질병 치료 기능을 주관하는 신으로 경배되었다. '나라를 세우기 위해 여러 토지의 여신들과 결혼하고, 토지를 개척해 생산력을 높인다.'라는 구절에서 토지의 신은 왕성한 생명력과 생식력을 지닌 자연과 여성, 지방 영주를 상징하며 이는 각 지역 토지신들과의 결혼은 지역 영주의 딸들과 결혼해 분열된 세력들을 하나로 통합했음을 상징한다. 중상을 입어 두 번씩이나 죽었다가 조개 여신의 도움으로 살아났고 백성들에게 최초로 약과 온천에 의한 치유법을 전한 의술의 신이기도 했다.

'작은 좁쌀신과 함께 각지에 곡물 재배 문화를 퍼뜨리고 나아가 질병 치료법과 재해 방지법을 정하고 부모 자식과 부부의 도리를 가르쳤다'가 의미하는 바는 문화 제도를 확립한 백성의 아버지 위치에 올라 본능 욕동의 즉각적 충족을 갈망하는 백성들을 사회적 존재로 전환시키는 통과의례 요구의 주체가 되었음을 의미하고 백성들이 동일시하고픈 힘과 가치의 원천이며 곧 자아 이상의 모델이 되었음을 나타낸다.

'오오쿠니누시는 스세리비메와 결혼하고 이나바의 공주 및 여러 아내에게서 많은 자손을 얻었다'라는 구절의 의미는 아름다운 여성들을 아내로 얻음으로 음양(여성성과 남성성)이 하나로 통합된 성숙된 정신 상태에 도달했음을 뜻하고[7] 가부장제의 표상을 드러낸다. 왕이 아내들에게서 많은 자손을 얻었다 함은 집단의 생명력을 순환시켜 풍성하게 유지 및 번성시켜야 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음을 뜻한다.[8]

3. 별명


[1] 스사노오타카마가하라로부터 추방된 후 아마츠카미와 결별했기 때문에 쿠니츠카미 세력의 계보가 되었다.[2] 여기서 아시하라노나카즈쿠니는 단순한 일개 국가가 아니라 타카마가하라와 대비되는 지상의 현세를 의미한다.[3] 아마츠카미에게 굴복한 쿠니츠카미를 모시는 신사다.[4]시마네현 야스기시.[5] 오오쿠니누시의 별명 중 하나.[6] 이렇게 된 것에는 '오오쿠니누시가 스세리비메를 비롯한 여러 여신들과 이어졌다' 혹은 '오오쿠니누시가 명계 즉 저승에서도 신격을 얻었으므로 비단 현세의 인간관계 뿐만 아니라 이승과 저승을 아우르는 인연을 통솔할 수 있게 되었다'는 설이 존재한다. 이러한 점으로 남녀 간의 인연은 물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인연을 연결하는 신으로 여겼다.[7] 이 상태에 도달하면 더 이상 내면의 유아성욕과 외부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되며 또한 고대 사회에서 결혼은 두 집단이 대립 관계에서 우호 관계로 전환됨을 의미했다.[8] 다르게 보면 그만큼 고대로부터 오랜 세월 동안 넒은 지역에 걸쳐 많은 사람들에게 섬겨졌음을 드러내는 요소다.[9] 고대 이즈모 국의 동부지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