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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9 18:55:05

오와인 로고크

성명 오와인 로고크
(Owain Lawgoch)
생몰년도 1330년경 ~ 1378년 7월
출생지 잉글랜드 왕국 서리
사망지 프랑스 왕국 모르타뉴쉬르지롱드
아버지 토머스 압 로드리
직위 용병대장, 귀네드 왕위 주장자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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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웨일스 공국의 왕위 주장자. 프랑스 왕국의 지원을 받으며 잉글랜드로부터 웨일스의 독립을 꾀한 인물이다.

2. 생애

허웰린 압 요르웨르스(Llywelyn ab Iorwerth, 1173 ~ 1240)의 후손이다. 허웰린은 허웰린 대왕으로도 일컬어지는 귀네드 왕국의 명군으로, 1195년부터 1240년까지 45년간 웨일스 전역을 통합하고 현명하게 통치했다. 그러나 그가 사망한 뒤 내분이 끊이지 않아 귀네드 왕국의 위세는 갈수록 약화되었고, 결국 1277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의 침공에 귀네드의 마지막 국왕 르웰린 압 그루퍼드가 복종한 뒤 1282년 잉글랜드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해 목숨을 잃으면서, 귀네드 왕국은 멸망하고 웨일스 전역이 잉글랜드에 복속되었다.

조부 로드리 압 그루퍼드는 귀네드 왕국의 마지막 국왕 르웰린의 형제로, 귀네드 왕국의 계승권을 포기하고 잉글랜드 왕실이 내려주는 연금을 수급하며 조용히 지냈다. 아버지 토머스 압 로드리는 서리, 체셔, 글로스터셔 등지에 토지를 사들이고 인장에 귀네드 가문의 네 마리 사자 문장을 사용했지만, 귀네드 왕국을 부활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토머스의 외아들인 오와인 로고크[1]는 일찍이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의 군대에 입대해 생애 대부분을 유럽 본토에서 보냈다. 1363년 아버지 토머스가 사망했을 때 해외에서 돌아와 유산을 물려받고 영지를 수년간 경영하다가 1366년 3월에 다시 프랑스로 떠났다. 연대기 작가 장 프루아사르는 그가 푸아티에 전투에 참여해 잉글랜드군과 대적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다른 증거는 없다. 1369년, 그는 웨일스인으로 구성된 용병대 지도자로서 프랑스군의 편에 서서 잉글랜드군과 대적했다.

오와인은 프랑스에서 봉사하는 동안 베르트랑 뒤 게클랭 및 여러 프랑스 장성과 우호 관계를 가졌고, 프랑스 국왕 샤를 5세의 지원을 받았다. 1369년 12월, 오와인은 웨일스에 가서 반란을 선동하는 임무를 가지고 아르플뢰르에서 출항했다. 그러나 겨울 폭풍에 휩쓸려 곧 프랑스로 돌아왔다. 곧 이 사실을 알게 된 잉글랜드 정부는 오와인의 토지를 반역죄로 몰수하고 웨일즈에 있는 협력자들을 체포했다.

1372년, 프랑스 왕실은 그를 내세워 웨일스인들을 선동해 잉글랜드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게 할 계획을 세웠다. 오와인은 그해 5월 파리에서 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선언문에서 자신이 귀네드 왕국의 명군 허웰린의 후손임을 강조했고, 잉글랜드 왕들이 조상들에게 부당한 행동을 벌였다고 비난했다. 샤를 5세는 그의 주장을 지지하며 30만 프랑을 지원했다. 그 후 오와인은 아르플뢰르에서 잉글랜드를 향한 항해를 떠났다. 그는 건지 섬을 습격해 수비대를 격파했지만 코넷 성을 함락하지는 못했다. 그러던 중 샤를 5세로부터 원정을 중단하고 카스티야로 가서 라 로셸 해전을 수행한 카스티야 함대와 합세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에 따랐다. 1372년 말 수비즈에서 잉글랜드-가스코뉴 연합군을 격파하여 토머스 퍼시장 3세 드 그레일리를 사로잡는 데 기여했다.

1373년 웨일스를 향한 원정을 다시 계획했지만, 곤트의 존의 슈보시 때문에 프랑스 왕국의 관심이 곤트의 존을 막는 데 집중되었기 때문에 실행되지 않았다. 1374년 미레바우와 생통주에서 잉글랜드군에 대적했으며, 1375년 앙게랑 7세 드 쿠시에게 고용되어 전임 오스트리아 공작의 조카였던 앙게랑이 스위스를 정복하는 걸 도왔다. 그러나 앙게랑 7세와 오와인은 베른 수비대에게 패배해 원정을 포기해야 했다.

1377년, 오와인은 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지원을 받아 웨일스를 향한 원정을 계획했다. 잉글랜드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푸아투에서 모르타뉴쉬르지롱드를 포위 공격하고 있던 오와인을 암살하기 위해 스코틀랜드 요원 존 램을 파견했다. 존 램은 그의 신임을 얻고 시종이 된 뒤 1378년 7월에 오와인을 암살했다. 1378년 12월 4일자 잉글랜드 재무부 발행 목록에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종자 존 램이 프랑스에서 반역자이자 왕의 적인 오윈 드 게일스(Owynn de Gales)를 암살한 공으로 20파운드를 지급했다는 내용이 기술되었다. 오와인은 프랑스 코냑 인근의 생레제 교회에 안장되었다.


[1] 정식 이름은 오와인 압 토머스(Owain ap Thomas)로, 로고크(Lawgoch)는 '붉은 손'을 의미하는 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