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 톈진 조계 Austro-Hungarian concession of Tianjin | ||
국기 [1] | 휘장 | |
[2] | ||
1901년 ~ 1917년 | ||
성립 이전 | 해체 이후 | |
청나라 | 중화민국 북양정부 | |
이탈리아령 톈진 | ||
위치 | 톈진시 | |
수도 | 톈진 | |
정치체제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조차지 | |
국가원수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황제 | |
정부수반 | 총독 | |
언어 | 독일어, 헝가리어, 중국어 |
독일어: Österreichisch – Ungarische Konzession
헝가리어: Osztrák – Magyar Tiencsini koncesszi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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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톈진 조계. 14년간 유지되어 톈진에 위치한 열강들의 조계들 중에서는 최단기간 유지된 조계이다.2. 상세
▲ 1909년, 중국인 의무병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톈진 주둔 해군 육전대원들.
의화단 운동 진압 당시 참여한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참전의 대가로 톈진에 150에이커 면적의 조계를 얻게 된다.
톈진을 취득한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다른 열강들과 다르게 톈진 조계의 주민들 모두에게 오스트리아-헝가리 시민권을 부여하고 지역 귀족들, 오스트리아-헝가리군과 지역 경찰을 아우르는 의회를 통해 통치하였다. 다만 지역에서 오스트리아 헝가리의 기본법이 적용되었고 위의 의회에서도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은 다수를 점하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극동에 큰 영향력은 없었고 조계도 하이허 강을 따라 상당히 올라가야 있는 위치기에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조계의 무역은 발달하기에 애로사항이 많았다. 하지만 오헝의 톈진 조계는 톈진 중앙역과 톈진 도심 사이에 위치하였고 오헝제국 몰락후이지만 벨기에가 해당 조계 지역을 지나는 트램을 부설하여[3] 구 오헝조계지에는 주요 상가 거리가 들어서게 된다.
또한, 톈진을 통치한 짧은 기간 동안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병원, 성당, 학교, 선교사들의 집들 및 오스트리아 양식 건물들을 남겼고 이는 오늘날에도 지역에 남아 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조계는 독일령 조계와 같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중화민국의 참전 후 1917년에 탈환되었고, 1919년 생제르맹 조약에서 오스트리아는 공식적으로 조계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게 된다.
또한,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후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톈진 조계를 취득하고자 하였는데, 중화민국이 협상국 편으로 참전하면서 오스트리아 헝가리 조계의 일부 지역만 취득하게 된다.
여담으로, 위안스카이의 자택이 톈진 조계에 위치했었다.
[1]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아우르는 국기 자체가 없었기에 조차지 내에서는 위의 오스트리아 제국 국기를, 상선들에서는 흔히 국기로 잘못 알려진 상선기를, 그리고 경우에 따라 헝가리 왕국 국기를 함께 게양했다.[2] 분홍색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구역.[3] 벨기에는 톈진 지역의 트램 부설권과 전력과 수도 공급권의 독점을 공인받았다. 벨기에령 톈진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