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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09 10:49:48

오구라 다케노스케

小倉武之助, 소창무지조
파일:ogura.jpg
1. 개요2. 생애3. 오구라 컬렉션

1. 개요

일제강점기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한 기업가로 당시 대구재계의 거물이었다. 대구전기를 설립하여 대구에 최초로 전기를 송전했다. 조선의 수많은 문화재를 수집하여 불법적으로 반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2. 생애

1870년 치바현 나리타시에서 태어난 오구라 타케노스케는 도쿄제국대학의 법과대학 영법과를 졸업한 후 1904년 경부철도 대구출장소에 발령받아 한반도에 건너왔다. 1905년에는 경부철도를 퇴사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대구에서 사 모은 토지 가격이 폭등한 덕에 큰 돈을 모았다. 경부선이 개통되고 일본인들이 대구로 몰려들자 1평당 3~4원에 산 대구의 토지 가격이 100배 이상 상승했다고 한다.

1906년 토지가옥증명규칙 발포 전이라 일본인들은 조선인의 명의를 빌려 토지를 구매했다. 당시 경상북도관찰사 이용익이 이런 행위를 강력히 단속하며 22명을 포박하고 옥에 가두었으며, 곤장 20대를 때렸다. 이에 오구라 다케노스케 등의 일본인들이 그에게 항의하고 압박하여 관찰사에서 쫓아낸 일도 있다. 1907년에는 대구제련(大邱製莚)합자회사를 설립해 운영했는데,, 이 회사는 주로 화문석(왕골돗자리)를 제작했다.

당시 지역마다 일본인의 자본에 의해 전기회사가 설립되고 있었다. 전기회사를 운영하면 해당 지역에 독점적으로 전기를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설립 인가를 받으려는 경쟁이 상당했다.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지역의 조선인 자산가 서상돈 등과 함께 대구지역 전기회사 설립을 신청해,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설립 인가를 따냈다. 그는 1911년에 대구전기주식회사(大邱電気株式会社)를 설립하고 사장으로 취임했다.

대구전기는 1913년 1월 1일부터 대구에서 최초로 323가구에 전기를 송전했다. 1918년 대흥전기(大興電氣)로 이름을 바꾸고 다른 지방의 전기회사를 합병하면서 전국규모의 회사로 규모를 키웠다. 같은해 함흥전기를 합병한 것을 시작으로 광주전기, 통영전기, 전남전기, 남원전기, 안동전기, 경주전기, 울산전기, 거제전기, 여수전기, 하동전기 등 중소회사를 연달아 합병해 조선 남부의 전력 공급 대부분을 담당하게 되었다. 설립 당시 자본금은 10만 엔이었으나 1926년에 이르면 200만 엔으로 불어났다.

1937년에는 조선총독부 정책에 따라 6개 전기 회사가 합병해 남선합동전기(南鮮合同電氣)[1]가 설립될 때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함흥회령에도 사업 기반을 가지고 있었는데, 결국 1939년 설립된 북선합동전기의 초대 사장이 되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조선의 전기왕. 상공업자들의 모임인 대구상공회의소에서 자기 파벌을 이끌면서 대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1918년에는 선남은행을 인수해 전기회사 경영에 활용할 자금을 모집했다. 1933년 선남은행은 경일은행을 인수해 대구상공은행이 되었다. 대구상공은행은 나중에 상업은행[2]에 합병되었다.

오구라는 거류민단 의장 도회 의원 부회 의원 대구상공회의소 초대회장을 역임하고 대구이사청, 복심법원, 달성공원 조성, 의학전문학교유치운동, 대봉동 80연대 병영 유치운동, 종연방적(鐘淵紡績)공장유치운동, 대구비행장 설치운동 세무감독국 유치 등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면서 도시개발과 지역개발에 힘썼다. 특히 대구상공회의소에서 소위 전기파 를 이끌며 1931년부터 1940년까지 10년간 회장을 역임하면서 지역사회에 주도적인 지위를 점했다.

한편, 사업성공으로 번 돈으로 1920년경부터 조선의 문화재를 모으는데 열중했다. 이른바 오구라 컬렉션이다. 오구라 타케노스케는 일본 제국의 패망 직후 귀국해서 지바현 나라시노시에 살다가 1964년 94세로 사망했다.

대구에 있던 그의 저택은 대구광역시 중구 경삼감영길 168, 구주소 대구시 중구 동문동 38-3번지로, 현재 대구광역시 중구 동문동 패션 주얼리 타운 인근이다.

3. 오구라 컬렉션

그가 일제 식민지 시기의 한반도에서 수집한 골동품들을 따로 일컫는 말로 오구라 컬렉션 문서 참조.


[1] 해방 후 다른 회사와 통합되어 한국전력공사가 되었다.[2] 한일은행과 합병, 한빛은행우리은행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