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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15:47:44

예수(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1. 개요2. 특징3. 관련 문서

1. 개요

뽀 강가의 작은 마을, 바싸 읍의 성당 본당 십자고상에 매달려 계신 예수님. 작가의 말을 보면, 작가의 양심의 소리를 나타낸 캐릭터라고 한다. 캐릭터가 확실히 잡히기 전에는 비슷한 역할을 하는 성모 마리아가 나오기도 한다.

2. 특징

작중 과격하고 전투적인 돈 까밀로에게 조언을 하고, 사고를 치고 돌아온 돈 까밀로를 나무라는 역할이다.

하지만 대개 유쾌하고 다정한 성격으로 묘사되며, 은근슬쩍 알 거 다 알면서도 언급 한 줄 하고 다 넘기시는 대인배. 과연 하느님의 아들답게 누구나 포용한다. 하지만 사건의 경중에 따라서는 얄짤 없이 호되고 따끔한 불호령이 떨어지거나 완전히 침묵하실 때도 있는데, 이럴 때면 속죄성으로 금식을 하거나[1], 한번은 성모 마리아님에게라도 애걸한 적이 있었다.[2]

이처럼 돈 까밀로의 불같은 언행과 성급한 언행을 나무라고 달래고 붙들지만, 가끔 때때로 마지못해서 조건을 두고 허락하거나[3], 주먹질을 응원하거나[4], 위기에 처했을 때 무력을 쓰는 걸 허락하기도 한다.[5] 또한 진지한 에피소드에서는 의미 깊은 말을 남기기도 하고, 가끔 예수님다운 설교를 하시기도 한다. 이 때문에 돈 까밀로는 힘 닿는 한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디든 이 십자가를 들고 다닌다.

이 예수상은 마을 사람들에게 신앙뿐만 아니라 다른 의미로도 매우 중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마을 사람들이 연합군의 폭격을 피하기 위해 성당에 피신해 있었는데, 성당 근처에서 터진 폭탄의 파편을 예수상이 막아 준 것. 이 때문에 마을 사람들에게 단순한 예수상이 아닌 '우리 예수님'이라고 불리우며 바싸 마을 사람들의 정서적인 상징이 되었다. 훗날 도시에서 온 감정사가 이렇게 훌륭한 예수상인데 왜 손목이 조잡한 쇳덩이로 보수되어 있냐고 묻자 돈 까밀로는 그 손목을 자른 파편을 그대로 손목을 붙이는데 썼다고 대답하고, 이에 감정사는 '더할 나위 없는 예술품'이라 찬탄하며 돌아간다. 대단히 역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이기도 해서 박물관에 보관하려 했지만, 위의 일화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격렬하게 반대해서 유야무야 끝났다.

또한 돈 까밀로가 유배가게 되었을 때 텅 빈 산골 마을 성당의 초라한 예수상을 보고 숨이 막힐듯한 답답함을 느끼자 '나는 나일뿐이다'라고 예수상의 겉모습을 따지지 말라고 하지만 결국 돈 까밀로는 바싸 마을로 와서 빼뽀네를 들볶아 거대한 예수상을 직접 어깨에 지고 산길을 올라 산골 마을로 오고, 빼뽀네는 그 고행길을 따라와서 운송료로 받은 돈을 성당에 기부한다. 이후 마을에 우환이 생기자 마을 사람들은 돈 까밀로가 마을을 지켜주던 예수상을 가져가 버린 것 때문이라며 돈 까밀로와 예수상이 돌아오도록 주교에게 탄원하고 결국 마을 사람들과 빼뽀네의 등쌀을 못이긴 주교는 '전에는 쫓아내 달라고 하더니 이제는 돌려달라고 난리'라고 하며 돈 까밀로를 귀환 시켜주기도 한다.

한번은 돈 까밀로가 예수상을 몽둥이로 쓸 뻔한 적이 있다. 매해 농번기가 시작될 때 마다 뽀 강 수원지가 범람하거나 가무는 일 없도록 돈 까밀로와 마을 기독교도들이 예수상을 짊어지고 뽀 강 까지 행진하는 행사가 있는데, 빼뽀네가 행진에 참가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소수의 독실한 신도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불참한 적이 있다. 그나마 참석한 신도들도 안전상의 문제로 돌려보낸 채 돈 까밀로 혼자 무거운 예수상을 메고 뽀 강까지 끙끙대며 가던 차에 빼뽀네가 인근 지역 공산당원 수백명을 모조리 대동하고 나타나자 안 그래도 심기가 불편하던 돈 까밀로는 무력으로라도 돌파하겠노라 결심하고 예수상을 양 손에 쥔 채 공산당 무리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다행히도 충돌 직전 빼뽀네가 길을 내줄 것을 명령한 덕분에 수백년 된 국보급 예수상이 골통 부수개로 전락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빼뽀네가 나타난 이유는 공산당원으로서 적대 정당의 집회를 방해하긴 했지만, 오랜 친구인 돈 까밀로가 민망하게 혼자 무더운 날씨에 강까지 행군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서 위력과시하는 척 본인도 참가한 것.

돈 까밀로가 마을 발전 기금을 내길 거부하는 지주의 포도밭을 망친 자들을 잡아다 죽여야 한다고 화를 냈을 때[6] 명대사를 날려주었다.
"사람은 어떠한 경우라도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뭣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혔겠느냐."
이 가르침에 돈 까밀로는 주동자를 색출해 죽이는 대신 빼뽀네를 설득해 사건의 범인들을 납치해서 서른 대 씩 구타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다만 문제는 모든 범인들을 잡아 족치고 나니 사건의 진짜 주동자였던 빼뽀네가 자수하며 스스로 매질을 청한 것. 충격받은 돈 까밀로는 차마 빼뽀네를 때리지 못했으나 예수님이 '빼뽀네가 네게 용서를 청했는데 넌 왜 빼뽀네를 용서하지 않느냐?'는 말씀에 정비소에서 일하던 빼뽀네를 때려준다.

3. 관련 문서



[1] 정확히 말하자면 육류, 담배, 포도주 등을 모두 끊고 빵과 물만 먹는 금식. 이게 뭐가 금식이냐 할 수도 있지만, 의외로 타격이 큰지 제대로 각 잡고 빵과 물만 먹고 며칠 지내다 보니 살이 쭉 빠졌다는 언급이 종종 나온다. 가끔씩 예수님이 직접적으로 금식을 명하실 때도 있다. 사탄은 배가 고프면 달아난다거나(…). 금식하는 게 몸에 좋다거나(...)[2] 이 쪽은 석고로 만든 조각상인데, 중세 시대부터 내려온 유서 깊은 성상임에도 너무도 조잡한데다 도색과 마감마저 끔찍한 수준이라고 묘사된다. 오죽하면 "못난이 마리아"라는 별명이 동네에서 대놓고 통용되며, 신부인 돈 카밀로마져 어떻게든 "처분"하고자 애를 쓸 정도. 이 시도에 대한 역사도 참으로 기구하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돈 카밀로는 마을을 점령한 영국군 사령부에 찾아가 중세 시대부터 내려온 진귀한 골동품임을 강조하며 은근슬쩍 약탈해가라고 권했지만 단칼에 거부당했다(...) 이후에도 여러 번 돈 카밀로는 성상을 치워버리려 하지만 신도들의 아우성에 빈번히 실패하였으나 정작 그 신도들도 성모상이 못생겼다고 키득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참다못한 돈 까밀로는 성모대축일 행진을 기획하며 성모상을 적재할 차량으로 일부러 결함 차량을 선택하고 코스도 멀쩡한 포장 도로를 냅두고 산길을 택하여 결국 사고로 산산조각이 나지만 추한 석고 성모상이 부서지며 그 안에 감춰져 있던 너무나 아름다운 은제 성모상이 드러나자 돈 까밀로를 포함한 모두가 큰 충격을 받는다. 실상은 혼란스러웠던 중근세 이탈리아의 어느 예술가가 약탈자와 외국군으로부터 성모상을 지키기 위해 신앙심과 예술적 재능을 쏟아 자신이 만들 수 있는 최악의 성모상을 만들어 은제 성모를 포장한 것이 지금까지 전래되었던 것. 깨달은 돈 까밀로가 참회의 기도를 올리며 못난이 마리아의 파편을 하나하나 수습해 복원하기로 결심한다.[3] 돈 까밀로가 농가에서 부활절 달걀로 쓸 달걀을 받아서 자전거를 타고 오는데, 복면을 쓴 빼뽀네가 나타나 그의 등짝을 몽둥이로 후려갈겼다. 나중에 빼뽀네가 찾아와서 정치 선동을 하는 신부가 미워서 그랬다고 고해성사를 하자 돈 까밀로는 일단 보속(고해성사를 한 사람에게 내려주는 일종의 벌)을 내려준 뒤, 예수님과 이런 대화를 나눈다 "너의 손은 축복을 내리기 위해 주어진 것이지 때리기 위한 것이 아니란다." / "손은 축복을 내리기 위해 주어진 것이지만 발은 아닐 겁니다." / "그건 그렇구나. 하지만 부탁이다, 돈 까밀로야. 딱 1대만 차거라." 이후 돈 까밀로는 한 대 치고, 빼뽀네는 이걸 기다렸다며 웃으면서 돌아간다.[4] 빼뽀네는 아들의 세례명에 레닌을 넣어서 지으려고 했고 돈 까밀로는 당연히 거부했다, 이 때문에 한바탕 주먹다짐을 하는데, 싸우던 중 "턱이 비었다! 쳐라 돈 까밀로!"라며 코칭을 하셨고 이에 돈 까밀로도 턱에 제대로 주먹을 날려 제대로 맞은 빼뽀네는 한동안 뻗어버린다.[5] 돈 까밀로가 그의 조카딸인 엘리자베따와 그녀의 일당들에게 둘러싸였을 때.[6] 해당 지주는 단지 공산당이 보복과 협박으로 반 강제로 기금을 삥뜯는 작태에 화가 나서 기부를 거부한 것이지 악인은 결코 아니었고 포도 농사가 망한 탓에 수많은 소작농들이 한 해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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