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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42:40

예소야(주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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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인물

주몽
소서노 · 금와왕 · 대소 · 유화부인 · 예소야
<colbgcolor=#c6b182><colcolor=#fff,#ddd> 다물군 해모수, 오이, 마리, 협보, 재사, 무골, 묵거, 부위염, 부분노, 무송, 모팔모, 여미을, 소령, 벼리하, 천랑, 지랑, 인랑
부여궁 사람들 해부루왕, 원후, 영포, 부득불, 양설란, 적치, 흑치, 나로, 송주, 마우령, 하후천, 벌개, 마가, 진용, 해벌찬
계루부/졸본 연타발, 사용, 우태, 계필, 연채령, 연찬수, 양탁, 송양
한나라 양정, 왕소문, 동선, 진중문, 황자경, 태마진
고구려 건국 이후 유리, 비류, 온조
기타 인물 부영, 도치, 한당, 하백, 예천 족장, 설탁, 비금선, 서호철, 상천&두봉
그 외 인물은 주몽(드라마)/등장인물 참고 }}}}}}}}}}}}

파일:예소야.jpg

1. 개요2. 극중 행적3. 여담4. 캐스팅에 대한 논란

1. 개요

드라마 주몽의 등장인물. 한백족 예천족장의 딸. 주몽의 정실부인이자 이 드라마에서 해모수, 유화부인과 함께 최고로 불쌍한 인물. 배우는 송지효

2. 극중 행적

전쟁 중에 실종된 주몽을 구해주고 치료해주다 설탁의 반란으로 인해 하루만에 아버지인 족장과 부족이 몰살을 당하고 자신도 감금되어 있다가 주몽에게 구출되며 그대로 부여로 망명하여 지내게 된다.[1]

소서노가 대소의 집착을 피하기위해 우태와 혼인하면서 뜻하지않게 이별하게 된 주몽이 소서노와 다시 만나서 감정을 정리하는데 그 소식을 접한 대소가 여전히 둘이 좋아하고 있음을 깨닫고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둘이 다시는 인연이 이어지지 않게 하려고 금와에게 주청하여 예소야를 주몽의 아내로 들이자하여 그와 혼인한다.[2]

부부지간의 사이는 매우 좋아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했다. 또한 온유한 성품으로 주몽 모자의 힘이 되어주지만 주몽이 궁을 탈출하여 본격적으로 다물군에 합류하고 부여궁의 비밀지도를 손에 넣은 주몽이 다시 만나러 왔을때도 본인은 따라갈 수 있음에도 시어머니인 유화부인을 돌본다는 이유로 부여에 남았다.

하지만 주몽의 부인이라는 이유로 양설란에게 얻어 맞고 대소에게 죽을뻔 하면서[3] 부여궁에서 살며 임신한 중에도 자신의 아이를 낙태시키려는 설란의 심술로 온갖 고생하며 감옥에도 몇 번이나 하옥당하는 등 온갖 고초를 다 겪는다. 이후 궐에 몰래 들어온 주몽에 의해 탈출할 수 있었지만 아픈 유화를 돌보기 위해 끝까지 부여궁에 남았다. 이 때, 주몽은 자신의 아이의 증명을 위해 부러진 검조각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후 양설란에게 시달리며 하녀들이나 하는 중노동을 본인이 도맡아하고 임신까지 한 상태에서 온갖 고생을 다 하며 아들 유리를 낳는다. 나중에 유리, 유화와 함께 부여를 탈출하려고 변장해서 나가지만 나로에게 딱 걸려서 유리를 숨긴 짚단이 발각당해 도로 리셋.[4]

결국 부여궁에서 유화부인과 연금되듯이 살다가 주몽이 지난번에 오면서 남겼던 부여궁의 비밀통로가 적힌 지도를 통해 유화와 함께 탈출하고, 부여궁을 빠져나온다. 그러나 추격군에 같이 잡힐 것을 우려한 유화의 계획에 따라 유화와 이별했다. 그리고 이게 시어머니와의 마지막 모습이 되어버렸다.[5] 홀로 떠나다가 황자겸과 만났고 이 때 황자겸은 예소야의 정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게 '내가 너희 모자를 거둬줄테니 나에게 오너라'라는 제안을 해 현토성으로 끌려갔다.

어찌어찌 죽을 고생을 해가며 현토성을 탈출해, 유리와 함께 주몽이 나라를 세웠다고 한 졸본에 도달하지만 그녀의 눈 앞에 비춰진 것은 소서노 황후와 평생을 함께 하겠다며 소서노와 혼례식을 올리고 있는 주몽의 모습이었다.[6] 억장이 무너지겠지만 자신의 존재가 주몽의 앞날에 방해가 될 거라 생각해서인지 결국 말없이 스스로 물러나는 대인배적 결단을 내린다.

그 이후 북옥저에 정착해 술집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거기다가 희롱까지 당하면서까지 유리를 키웠다. 하지만 하층민으로 빈곤하게 살아가다 몹쓸 병까지 얻어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상황에 처한다. 결국 유리와 주몽의 운명적인 만남 덕에 생존이 알려지고 주몽이 그녀를 고구려로 데리고 돌아가겠다 하고 이후 소서노가 남하하며 차기 태자도 유리가 맡게 되었다.

드라마에서 가장 고생하고 핍박받은데다 행복한 순간도 적었던 비련의 여인이지만 그간의 보상이라도 받은 것인지 비록 시한부 인생이지만 자신의 아들이 태자가 되고 정실부인으로서의 지위를 사수했다. 거기다가 꿈에도 그리운 남편도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말년은 그나마 편하게 보낼 것으로 보인다.

3. 여담

4. 캐스팅에 대한 논란

본래 예씨부인 역할로 부영을 연기하던 신인 배우 임소영이 있었는데 23화에 하차한 후 36화부터 송지효가 예소야 역으로 합류되었다. 제작진은 교체 이유로 신인인 임소영이 감당하기엔 벅찰 수준으로 예씨부인의 비중이 커지게 됐고 드라마 속에 그려진 부영의 이미지와 맞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문제는 배우 교체과정에서 당시 송지효의 소속사였던 나무엑터스가 외주제작사에게 소위 빽없는 임소영을 하차하고 송지효를 편입시키라는 압력을 넣은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샀던 것.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데 임소영은 당시 JYP 소속이라 빽이 없지 않았고[8] 송지효는 이미 배우교체가 결정된 후 오디션을 보고 합격했다. 오디션에서 송지효와 마지막까지 경쟁했던 배우는 이연희였는데, 둘 다 2020년대 지금까지도 탑클래스 미녀 배우로 손꼽히지만 임소영은 소식을 듣기 힘들다. 당시 제작진은 주몽 첫째 부인에 어울리는 스타성과 비주얼을 갖춘 배우를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당시 송지효는 드라마 중간에 투입된 것도 있고, 첫 드라마 주연작이자 전작인 '궁'에서 보여준 발연기로 다소 논란이 있었다. 하필 발성 등 연기력이 가장 중요한 사극이라 투입 전부터 우려가 많았던 것.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연기력이 점차 나아지는 모습을 보여줬고, 최종화에 이르러선 발연기 논란이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결국 드라마 주몽은 송지효 본인에게도 연기자로서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셈.


[1] 유화와 해모수가 만나게 된 경위와 비슷하다.[2] 대소-설란 부부와는 달리 주몽과 예소야의 혼인은 정략혼은 아니다. 정략혼은 각 부족간에 이득이 있을때 이루어지는 것인데 주몽과 예소야의 혼인은 대소가 주몽과 소서노에게 상처를 주기위해 주도한 것으로 정략혼은 아니다. 또 예소야는 주몽을 사랑하고 있었으며 주몽도 연애감정을 느꼈다.[3] 대소가 칼을 빼들긴 했지만 예소야를 죽일 마음은 없었다. 양설란이 예소야를 죽이라고 종용해 칼을 빼들긴 했지만 부족이 멸족당하고 오갈데도 없는데다 주몽에 대한 억제력도 있는데 대소 입장에서는 굳이 예소야를 죽이지 않는게 낫다. 예소야를 괴롭히는 인물은 철저히 양설란이다.[4] 유화부인과 예소야는 발각되지는 않았지만 나로는 유리가 숨어있을까봐 칼을 빼들고 짚단들을 찌르면서 확인했고 참다 못한 예소야와 유화부인이 나서면서 잡히게 된다.[5] 이후 유화부인은 금와왕의 칼에 찔려 죽음을 맞이했다.[6] 이 때는 모두가 예소야와 유리가 죽은 줄만 알고 있었고 두 사람의 결혼은 왕위를 놓고 마찰을 빚는 두 세력의 화해라는 정치적인 목적에서 꼭 필요한 것이긴 했다.[7] 애초에 근대 이전에는 여성이 역사서에 이름을 남기는 것은, 그 기록이 잘되어있다는 조선 시대의 왕비들조차 정말 보기 드문 일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역사서에 최소 5번은 거론되는 소서노가 이례적인 사례다.[8] 오히려 JYP의 영향력과 언론플레이로 애초에 있지도 않았던 논란이 커졌다는 당시 분석이 존재한다.# 지금은 아니지만 홍승성 대표 시절 JYP는 언플로 유명한 회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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