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5-02-06 21:50:23

에릭 칸토나/클럽 경력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에릭 칸토나

[clearfix]

1. 개요

에릭 칸토나의 클럽 경력을 정리한 문서.

2. 클럽 경력

2.1. AJ 오세르

프랑스 마르세유 출신. 사르데냐, 이탈리아, 스페인 카탈루냐 혈통으로[1] 어렸을 때부터 축구에 특출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으며, 나이 17세에 AJ 오세르[2]의 주전 멤버로 선발되는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팬들은 17세의 소년이 필드에서 보여주는 뛰어난 플레이에 열광했고 또 엄청난 기대감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지금도 "칸토나"하면 떠오르는 다혈질 성격은 이 때 부터, 이미 파릇파릇했다. 당시 팀의 주장이 정말 사소한 부탁으로 라커룸에 놓고 온 자신의 가방을 좀 가져다 달라고 하자, 어린 칸토나는 "네가 뭔데 나한테 명령질이야?"라며 바로 주먹을 날렸다.

2.2. 올랭피크 마르세유

오세르와의 계약이 만료되자 이적 시장에 나온 탈유망주급 선수를 잡기 위해 프랑스 굴지의 클럽 올랭피크 마르세유가 나섰고 마침내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데 성공하지만 베르나르 타피 당시 마르세유 회장은 훗날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헤어진 후 나는 내가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라며 땅을 쳤다. 실력이야 말할 필요도 없으나 누구도 종잡을 수 없는 성깔머리가 시도 때도 없이 뛰쳐나왔기에 그야말로 골치덩어리 그 자체였다.

지랄맞은 성질머리로 인해 당시 자신을 호출하지 않은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게 서슴없이 육두문자를 날리는 바람에 1년 대표팀 경기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를 먹는다거나, 경기 중에 판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유니폼 벗어 던지고 뛰쳐나가 3일간 행방불명되는 등 마리오 발로텔리도 깝치지 못할 정도의 망나니짓을 일상다반사로 해댔으니 누구도 그를 걷잡을 수 없었기에 팀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임대나 다니는 신세로 전락하는 것은 필연이었다.

결국 쫓겨나듯이 팔려간 님 올림피크 에서도 판정에 빡친 나머지 심판에게 장렬한 축구공 어택을 날려버린 사건으로 프랑스 축협은 거의 그를 매장시킬 분위기까지 치달았고, 칸토나 역시 축구 더러워서 못해먹겠다며 은퇴를 결심한다.[3] 축구공 어택 영상

2.3. 리즈 유나이티드 FC

그 탁월한 재능이 같은 성격 때문에 피지도 못할 것이 안타까워 미셸 플라티니가 직접 나서서 에릭 칸토나에게 프랑스를 떠나 잉글랜드에 진출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조언을 해준다. 그래도 축구에 대한 열정은 남아있던 것인지 칸토나는 선뜻 잉글랜드 행 비행기에 올랐고, 축구 종가에서의 그의 첫 도착지는 리즈 유나이티드였다. 그래도 실력은 어디 가지 않았기에, 리즈 유나이티드에서도 칸토나는 나쁘지 않은 활약을 선보여서 팀의 1부 리그 우승에 도움을 주었고, 리버풀과의 채리티 실드에서는 해트트릭을 질러주는 등 그 재능을 잉글랜드에 알렸다. 그리고 리즈 유나이티드는 진짜로 리즈 시절을 맞이했다. 칸토나의 이적 후 첫 시즌이었던 1991-92 시즌 리즈 유나이티드는 1부 리그에서 우승을 했던 것이다.[4]

허나 또 그 놈의 성미가 문제가 되어 하워드 윌킨슨 당시 감독과 대판 싸우게 되었고, "이 놈을 어떻게 제거하나?" 하고 골치를 썩이던 하워드 윌킨슨 감독은 알렉스 퍼거슨과의 전화 통화로 칸토나를 "120만 파운드"라는 헐값에 팔아넘긴다. 이때 리즈 유나이티드의 팬들은 뛰어난 선수였던 칸토나를 파는 것에 반대하는 분위기였다.

2.4.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파일:eric-cantona.jpg
185경기 82골 62도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에릭 칸토나/클럽 경력/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609
, 2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609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1] 정확히는 부모님이 카탈루냐계 사르데냐인으로서 마르세유로 이민을 간 경우에 해당한다. 부모님은 카탈루냐 분리독립을 지지하는 편이었다고 한다.[2] 정조국이 뛰었었던 팀이다.[3] 이 과정을 보면 더 쩌는 게, 축협 측에서 먼저 "1개월 출장정지"를 먹이자 칸토나는 "X나 고맙습니다. 얼간이들아."라는 조소의 감사인사로 응수하며 맞불을 놓았고, 반성도 안하고 되레 조롱한 칸토나에게 축협은 다시 "3개월 출장정지"를 내렸다.[4] 플라티니는 최초 리버풀 FC에 칸토나를 받아달라 요청했으나 리버풀 측에서는 폭탄 끌어안기 싫다며 거절, 또다른 팀인 셰필드 웬즈데이는 "땡기면 오라"라는 입장이었으나 "입단테스트 후 결정"이라는 조건을 내밀었기에 겨우 웬즈데이 정도의 팀이 자신에게 그런 요구를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거부했다고 포포투와의 인터뷰에서 밝힌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