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엄정섭(嚴正燮) |
생몰 | 1885년 11월 27일 ~ 1960년 6월 11일 |
출생지 | 충청남도 충주군 신니면 문숭리 |
사망지 | 서울특별시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엄정섭은 1885년 11월 27일 충청남도 충주군 신니면 문숭리에서 태어났고 십대 때 충청남도 청양군 적곡면 은곡리로 이주했다. 그는 1915년 음력 7월 15일 경상북도 대구에서 박상진 등 200명의 맹원과 함께 광복회(光復會)에 가담했다. 이후 장두환 등과 상의하여 충청남도를 3구역으로 나누고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위해 각 군의 부호들을 사전에 조사한 뒤 11월 초순경 예산군 광시면에 거주하는 김한종(金漢鍾)의 집에서 우이현(禹利見), 김재창(金在昶), 김경태(金敬泰)와 함께 회합한 자리에서 우이현으로부터 권총 2정을 넘겨받고 독립군자금을 모집할 것을 지시 받았다.1915년 11월 9일, 엄정섭은 재창, 김경태와 함께 아산군 도방면에 거주하는 장용급(張容汲)의 집에 가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여 금 13원을 모금하는 등 1917년 10월부터 11월에 걸쳐서 충청남도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활동에 주력했다. 1917년에는 친일파 부호 장승원을 처단하고 친일분자들에게는 각성의 뜻으로 경고문을 붙였으며, 1918년 자금을 마련한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방문해 독립운동자금을 기부했다. 이로 인해 1921년 공주지방법원에서 궐석재판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귀국 후 강원도에 은신하면서 김홍경이나 김세진 등의 가명을 써가며 활동했다.
8.15 광복 후에는 서울로 상경해 동지를 모아 광복단중앙총본부를 설치하고 참의원장에 취임해 활동하다 1960년 6월 1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엄정섭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