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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8 14:07:52

엄기타

1. 개요2. 엄상옥(1대)3. 엄태창(2대)
3.1. 연주자
4. 엄태흥(2대)
4.1. 연주자
5. 엄홍식(3대)
5.1. 연주자

1. 개요

엄 가문은 1932년부터 3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대한민국 최고 네임드 클래식 기타 제작가 가문이다. 다섯 명의 제작자가 클래식 기타 제작에 종사해왔다.

성씨 로마자 표기를 엄태창은 Om, 엄태흥, 엄홍식은 Uhm을 쓰는 중인데 표기가 서로 다른 이유는 불명이다.

2. 엄상옥(1대)



은파(殷坡) 엄상옥(嚴相玉, 1910년대 초반 ~ 1997년/향년 80대 중반)은 대한민국의 클래식 기타 제작가다. 대한민국 최초의 제작가로 꼽힌다. 1932년부터 클래식 기타를 제작했다. 처음에는 도저히 기타 제작을 배우기는커녕 기타 재료, 기타줄조차 얻기 불가능해 미군이 버린 망가진 기타를 분해해 제작하여 명주나 쇠로 된 줄을 걸었다. 1952년 다이아몬드 기타를 창업했으며 대한민국 최초의 기타 공방으로 여겨진다. 서울에서 대전으로 공방을 옮겼다.[1] 공방이 서울에 있을 때 클래식 기타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으나 벌이가 시원찮아 엄태흥, 엄태창이 어린 시절에 제작의 길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엄상옥이 숭례문 개보수 공사장에서 얻어온 550년 된 금강송 송판을 전판으로 사용해 제작한 세 대의 숭례문 기타로 유명하다. 측후판은 100년 된 고가구에서 난 단풍나무를 사용했다. 한 대는 지크프리트 베렌트(Siegfried Behrend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낙소스 아이콘.png 파일:디스코그스 아이콘.svg 파일:위키백과 아이콘.svg)에게, 한 대는 안드레스 세고비아에게 증정하려다 불발되어 세고비아의 친구인 소포클레스 파파스(Sophocles Papas 파일:디스코그스 아이콘.svg 파일:위키백과 아이콘.svg)에게 증정하였고, 남은 한 대를 엄태흥이 소장하고 있는데, 국내에서 콘서트장에서 사용될 만한 성능의 악기를 구하기 어려웠던 20세기에는 수많은 국내 연주자들에게 대여되어 무대에 올랐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수백 차례 대여되었다고 전해진다.

3. 엄태창(2대)



엄태창(Om Tae-Chang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은 대한민국의 클래식 기타, 어쿠스틱 기타 제작가다. 공방은 서울특별시 강남구에서 강원도 홍천군으로 이전했다. 엄상옥의 넷째 아들이자 막내 아들이다. 연습용 기타로 대학교 동아리와 학원에서 단체로 구입하여 쓰는 가장 대중적인 '수제 기타' 브랜드 중 하나였다. 공방 사이트에서 악기를 판매하며 중고 기타를 수리 후 판매를 중개한다. 클라우스기타 브랜드를 사용한다. 딸 엄지수는 클래식 기타 연주자다. 헤드 모양은 다니엘 프리드리히와 유사하다.

어린 시절에는 제작에 뜻이 없었고 표구 사업으로 성공했으나 늑막염 때문에 사업을 접고 기타 제작을 시작했다.[2] 33세에 부친에게 정식으로 기타 제작을 배웠으나 주입식 교육을 강조하는 부친과 이유를 설명해달라는 아들 사이에는 지속적인 갈등이 있었고, 결국 독일로 출국하여 카즈오 사토(Kazuo Sato), 프랑수아 코르벨라리(François Corbellari) 제작가를 사사했다. [3]

기타 제작 전문가과정|Guitar Academy을 운영하여 제자를 육성하고 있다. 공방에서 3년 정도 배운 이후 독일 유학을 권하며, 커리큘럼을 완료하는 데 10년 정도가 소요된다. 이용한, 최문석 제작자가 엄태창 공방에서 기타 제작에 입문했다.

환경에 따라 음색을 조절할 수 있는 사운드포스트를 발명하여 특허출원하였다. 기타 후판에 장착되며 레버를 돌리는 방식으로 조작한다.

엄상옥의 첫째 아들의 아들 엄용식은 엄태창의 수제자로 엄태창 공방에서 일하고 있었고 엄태창이 은퇴한 이후 공방을 이어나갈 예정이었지만 제작을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4]

3.1. 연주자

4. 엄태흥(2대)



엄태흥(Uhm Tae-Heung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은 대한민국의 클래식 기타 제작가다. 공방은 경기도 광주에 있다. 엄상옥의 둘째 아들이며 부친 엄상옥으로부터 다이아몬드(Diamond) 브랜드를 이어받았다. 현고를 높게 제작하는 편이다. 인터뷰((1/4) (2/4) (3/4) (4/4))

어린 시절에는 제작보다는 연주에 뜻이 있었으나 손이 작은 관계로 제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고, 1965년에 독립하여 엄태흥 기타 제작소를 차렸다. 연습용 기타 제작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연주용 기타를 제작하기 위해 인연이 있던 일본의 제작가 마쓰무라 마사노부(Masanobu Matsumura)[5]에게 가르침을 청했으나 불발되었고, 일본에서 독일로 이주한 한국계 제작가 카즈오 사토(Kazuo Sato)[6] 제작가를 사사했다. 귀국 이후 사토의 흔적을 떨쳐내기 위해 10년 동안 연구를 거듭하여 2002년에는 스스로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었다.[7]

4.1. 연주자

5. 엄홍식(3대)


엄홍식(Uhm Hong-Sik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네이버 카페 아이콘.svg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은 대한민국의 클래식 기타 제작가다. 단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기타 외에는 핸드폰 개발자로 일한 경험을 살려 스피커를 제작하고 있다.

기타 제작의 가업을 잇고자 했으나 다른 업계의 경험을 배우고 오라는 부친의 권유로 파나소닉, 산요텔레콤, 텔레카 등에서 핸드폰 개발자로 활동했으며 억대의 연봉을 이뤘으나 자신의 삶이 없고 성취를 이뤄도 회사의 것이 되는 상황에 허탈함을 느껴, 주도적으로 일하기 위해 클래식 기타 제작가로 전향했다.[8]

엄태흥의 아들이며 공방을 공유한다. 대한민국 루시어 중에는 신세대에 속하며 과학적 분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통기타에 사용된 X브레이싱 등 혁신적 시도를 적극 채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헤드 모양은 안토니오 토레스와 유사하며 외부 디자인은 대체로 부친의 것을 물려받았다. 악기 제작 기간은 모델에 따라 3 ~ 6 개월 소요된다. 부친의 기타 음색을 80년대의 스페인 기타 음색이라 평하며, 본인이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도 엄기타의 전통 안에서 찾았다고 자평한다.

애호가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개인 위키 사이트 Guitar Wiki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를 개설, 운영 중이다. 위키 엔진도쿠위키. 하지만 결국 2024년에 폐쇄해버렸는데, 사이트 비용 때문으로 추정된다. 서버비를 절감하기 위해 무료 호스팅 옵션이 존재하는 위키닷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위키가 왕왕 있다.

엄준식과 이름이 비슷하고, 디시인사이드 운영자 김유식과 닮아 디시인사이드 등지에서는 농담의 대상이 된다.

5.1. 연주자



[1] 한국 클래식 기타제작의 선구자 엄상옥 옹 : 네이버 블로그[2] 엄태창 기타 ‥ "이름 걸고 좋은 기타 만들어야"[3] 클래식 기타 장인 엄태창[4] 3代가 잇는 기타 名家에는 쉼표가 없다[5] 엄상옥 제작가와 친분이 있었다. 로베르 부셰를 사사하고 건강을 깎아가며 완성한 고유한 스타일의 악기로 명장으로 인정받았으나 몇 년 뒤에 암으로 사망했다.[6] 광복 이후 헤어진 한국의 가족, 부친의 묘를 찾는데 엄태흥이 도움을 준 것을 계기로 친분 관계가 급격히 가까워졌다.[7] 한 대 5백만원… 한국산 명품 기타를 만드는 사나이 명품 선율 만드는 수제 기타의 명인[8] 클래식 기타 제작자 엄홍식 작업실 탐방 (1) 클래식 기타 제작자 엄홍식 작업실 탐방 (2) 당신은 일의 ‘노예’ 입니까, ‘주인’ 입니까? 클래식 기타 제작, 3대째 가업 잇는 엄홍식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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