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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27 18:39:31

신고산타령

어랑타령에서 넘어옴
1. 개요2. 함경도민요 <신고산타령>3. 일제강점기 저항가 <화물차 가는 소리>4. 북한 선전물 '신고산타령'

1. 개요




신고산타령함경도 지방의 신민요이다. '어랑타령' 이라고도 한다. 신고산은 함경남도 안변군 고산면 일대에 새로 기차역이 생기면서 형성된 동네인데, 기존의 고산 마을은 구(舊)고산이 되었다. 그래서, 어랑은 단순한 추임새가 아니고 함경북도에 있는 실제 지명인 어랑군을 의미한다.

이 노랫말은 경원선이 개통되자, 함경남도 도청소재지였던 함흥으로 봇짐을 싸서 떠나는 한 여인을 안타깝게 노래하고 있는 내용이다.

요즘 젊은 층들은, 이 노래를 한국 트로트계의 레전드 이박사가 노래를 불러서 아는 경우가 많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23화에도 이 노래가 나왔는데 노구가 꼴찌족 4인방에게 이 노래를 부르라고 시켰는데 거부해서 노구는 알맹이를 빼버린 귤껍질을 줘버렸다.

2. 함경도민요 <신고산타령>

후렴 : [어랑어랑 어허야 어허야 더야 내 사랑아]

신고산(新高山)이 우루루 함흥차(咸興車) 가는 소리에
구고산(舊高山) 큰 애기 반봇짐만 싸누나

공산야월(空山夜月) 두견이는 피나게 슬피 울고
강심(江心)에 어린 달빛 쓸쓸히 비쳐 있네

가을 바람 소슬(蕭瑟)하니 낙엽이 우수수 지고요
귀뚜라미 슬피 울어 남은 간장을 다 썩이네

구부러진 노송 남근 바람에 건들거리고
허공중천(虛空中天) 뜬 달은 사해(四海)를 비춰주노라

휘늘어진 낙락장송(落落長松) 휘어 덤석 잡고요
애닯은 이내 진정 하소연이나 할거나

삼수갑산(三水甲山) 머루 다래는 얼크러설크러 졌는데
나는 언제 임을 만나 얼크러설크러 지느냐

오동나무를 꺾어서 열녀탑이나 짓지요
심화병(心火病) 들은 임을 장단에 풀어 줄거나

백두산 명물(名物)은 들쭉 열매인데
압록강 굽이굽이 이천리를 흐르네

후치령(厚峙嶺) 말께다 국사당(國師堂) 짓고
임 생겨지라고 노구메 정성을 드리네

불원천리(不遠千里) 허위단심 그대 찾아 왔건만
보고도 본체만체 돈담무심(頓淡無心)

백두산 천지에 선녀가 목욕을 했는데
굽이치는 두만강 뗏목에 몸을 실었네

가지 마라 잡은 손 야멸치게 떼치고
갑사(甲紗) 댕기 팔라당 후치령(厚峙嶺) 고개를 넘누나

지저귀는 산새들아 너는 무삼 회포 있어
밤이 가고 날이 새도 저대도록 우느냐

허공중천(虛空中天) 뜬 기러기 활개바람에 돌고
어랑천(漁郞川) 깊은 물은 저절로 핑핑 도누나

울적한 심회를 풀 길이 없어 나왔더니
처량한 산새들은 비비배배 우누나

간다온단 말도 없이 훌쩍 떠난 그 사랑
야멸찬 그 사랑이 죽도록 보고 싶구나

3. 일제강점기 저항가 <화물차 가는 소리>


태평양전쟁으로 전시체제에 접어든 식민지 조선에서는 당시 조선인들이 일제를 조롱하거나 규탄하는 내용으로 민요의 가사를 비꿔 불렀다.

심지어 당시에는 애국행진곡이나 군함행진곡 등 강제 보급된 일본군가를 일제를 비난하는 내용으로 가사를 바꿔불러 총독부가 꽤나 골머리를 앓았다고 한다.

이런 식의 저항은 해방 후에도 이어져 유행가나 군가에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가사를 붙여 부르곤 했는데 한국에 민주화가 실현되는 90년대까지 노가바라는 이름으로 계속되었다. 오월의 노래가 대표적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주민들 사이에서 체제 비판용으로 전래되던 가사는 다음과 같다.
신고산이 우루루 화물차 가는 소리에
지원병 보낸 어머니 가슴만 쥐여 뜯고요
어랑어랑 어허야 양곡 배급 적어서 콩깻묵 먹고서 사누나.

신고산이 우루루 화물차 가는 소리에
정신대 보낸 아버지 딸이 가엾어 울고요[1]
어랑어랑 어허야 풀만 씹는 어미 소 배가 고파서 우누나.

신고산이 우루루 화물차 가는 소리에
금붙이 쇠붙이 밥그릇마저 모조리 긁어 갔고요.
어랑어랑 어허야 이름 석 자 잃고서 족보만 들고 우누나.

4. 북한 선전물 '신고산타령'

북한에서 체제 선전을 위하여 가사를 마개조한 버전이다.

신고산이 우르릉 그 무슨 소린가 하였더니
농장마을 처녀들이 뜨락똘 모는 소리일세

신고산이 우르릉 그 무슨 소린가 하였더니
농장마을 처녀들이 뜨락똘 모는 소리일세

어랑어랑 어허야 어렴마지어라
뜨락똘 모는 소리일세

온다야 온다길래 동구밖 큰길에 나갔더니
자동차에 가득가득 흥남비료가 오누나

어랑어랑 어허야 어렴마지아라
흥남비료가 오누나

신고산이 들썩하게 농악소리 울리더니
집집마다 풍년분배 쌀독이 가득 넘쳤네

어랑어랑 어허야 어렴마지어라
쌀독이 가득 넘쳤네

어랑어랑 어허야 어렴마지어라
우리네 신고산 자랑하세

좋다


[1] 당시 주민들도 두 피해사례를 혼동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부득이 병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