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염립본왕회도에 나타난 고구려, 백제, 신라, 일본의 사신들 |
양직공도(梁職貢圖)[1]
1. 개요
당염립본왕회도는 양나라 효원제(508~554) 때 양나라에 조공 온 24개국 외국인 사절을 그린 양직공도(梁職貢圖)를[2] 모사한 그림으로, 염입본(601~673)이라는 당나라 화가가 그린 그림이다. 즉, 원본이 아니라 모사본이다. 비단에 그린 그림으로 폭 28.1cm, 길이 238.1cm의 그림이다. 현재 대만 국립 고궁 박물원에 소장되어 있다.2. 등장국
3. 정확성
당염립본왕회도가 참고한 원본 양직공도를 모사했다는 다른 그림과 비교해보면 형상이 달라 화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것으로 보이기에, 실제 당대 그 국가들의 의복을 나타내는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는 원본 직공도보다 떨어진다고 평가된다.또 대식국 등은 페르시아라고 추정할 수 있으나 그 외의 국가들은 실존하는 국가로 보기엔 기록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들어, 당시 위진남북조시대 북조와 경쟁하던 남조 양나라가 많은 외국에서 조공을 하러 올 정도로 자기들 위세가 대단했다는걸 나타내기 위해 일부러 창작 혹은 과장한 상상도로 보는 견해도 일부 있다.
색다른 견해로는, 현재 역사적으로 확인되고 있지 않은 나라들의 사신이 사기꾼들일 것이라는 설도 있다. 당시 중국 왕조들에게 조공을 바치면 황제국 존심 특성상 바친 것보다 몇배는 많은 하사품을 줬는데, 이를 이용하여 가상의 국가를 만들고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제나라에게 조공을 바쳤던 사신인 혜심(慧深)은 부상국에서 왔다고 속이고 조공을 바쳐, 제나라로부터 막대한 하사품을 받아 부를 쌓은 바 있다.[3] 신라-일본 관계에서도 김태렴이 자신이 경덕왕의 왕자인 것으로 속여 막대한 '하사품'을 뜯어간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다.
4. 한국에서
한국에서는 고구려 고분 벽화와 함께 삼국시대 한국의 의복을 묘사한 당대의 몇 안되는 그림이기 때문에, 역사책이나 여러 매체에서 많이 등장한다. 제목은 몰라도 그림은 보면 '아 이 그림' 할 정도의 인지도는 있는 편. 물론 위 영상에서도 보이듯 고구려, 백제, 신라 순서조차 헷갈려하는게 일반적이긴 하다만. 또 원본을 모사한 양직공도보다 정확도 측면에선 떨어진다는 한계가 있지만 색깔이 잘 살아있기에 당염립본왕회도가 매체에선 더 자주 인용되는 편이며, 덕분에 아예 당염립본왕회도를 양직공도로 아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위에서도 언급했듯 화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것으로 보이기에 당대 의상과 100% 일치하진 않을 확률이 높다. 그래도 참고 정도는 할 수 있는 편.
한편, 당시 야마토 왕권을 상의도 신발도 제대로 갖춰입지 않은 거의 야만인 수준으로 묘사한 덕분에,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는 문명국이었지만, 왜국은 비문명국이었으며 한국이 일본보다 문화적으로 훨씬 우월했다고 해석할 여지가 생겨 이걸로 일부 커뮤니티 떡밥을 즐기는 부류도 있다. 다만 당염립본왕회도에 묘사된 왜나라 사신의 모습은 사실이 아닐 것으로 추정하는 학자도 있다. 왜냐하면 양직공도의 왜나라 사람을 묘사한 기록이 양나라가 있던 6세기가 아닌 3세기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내용을 그대로 썼는데, 당시 황위 계승을 다투던 소역이 자신의 그림 실력과 외교 지식을 아버지에게 뽐내고자 했던 목적이 컸기 때문에 일부러 오지도 않은 왜국 등 몇개국까지 끼워넣은 것 아니냔 주장이다.
당시 양나라는 교류하던 서쪽 끝의 나라를 페르시아(波斯國)로 여겼고 동쪽 끝의 나라를 왜나라로 여겼는데, 페르시아(이란)도 설명을 보면 당대보다 이전 기록에 의거한 흔적이 보여서 북조와 경쟁하던 남조 양나라가 조공하러 오지도 않았던 사신을 상상화로 그려 자신들의 권위를 올렸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사신으로 온 사람들 그림만 그리고 실제 대화를 나눠보지 않았다면, 통역관도 부족하던 그 시절 각 나라 사정에 대해선 자세히 알 수 없기에 과거 자국 기록에서 찾아 적어넣는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긴 하다.
신라의 경우 다른 나라의 사신들보다 키도 크고[4] 미소년 삘 나는 젊은 사람이 사신으로 왔기 때문에, 신라의 화랑과 연관지어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당염립본왕회도가 기존 양직공도에 상상력을 더한 작품임을 생각해보면, 그냥 우연의 일치일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다.[5] 게다가 위 영상에서도 언급하듯 정작 신라 사신이 의복적으론 고구려, 백제, 신라 3국 중에선 가장 덜 화려한 편이기도 하다.
5. 여담
[1] 당엽립본왕회도의 원본 이름이다. 한국에서는 당엽립본왕회도가 양직공도라고 알려져있는데, 사실 두 그림은 시기 자체가 다른 별개의 그림이다.[2] 원본 양직공도는 현재 백제의 사신도를 포함한 일부만 남고 소실되었다. 이마저도 양나라 때 그려진 원본이 아니라 북송 대인 1077년경 모사된 남경박물관 소장본이 전해지는 것이다. 그래도 이 모사본은 왕회도에 비해 원본에 보다 충실하게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양직공도에 그려진 백제 사신의 모습은 무령왕 문서에도 첨부되어 있다.[3] 혜심은 부상국이 일본으로부터 동쪽으로 3만 2천리 떨어져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1만km가 넘는 거리로, 태평양을 건너 미국 동부 뉴욕 정도의 위치이다. 즉, 말도 안되는 것. 아메리카 원주민이었나보다. 사족으로 혜심이 한 사기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부상국의 이웃나라 중에 여인국이 있다고 한 것이다. 여인국은 말그대로 여자만 사는 나라이며, 남자가 없기 때문에 2월, 3월쯤에 강에 들어가면 저절로 임신할 수 있었다고 한다.[4] 일각에선 당시 신라인의 평균키(160cm)가 주변국들보다 조금 컸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5] 당장 원본을 모사한 양직공도에 남아있는 백제 사신만 봐도 당염립본왕회도와 달리 젊은 사람이 모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