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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37:00

양수(고려)

1. 개요2. 생애3. 기타


良守
(? ~ 1168)

1. 개요

고려의 인물. 양수의 난의 주동자.

2. 생애

1168년에 탐라현에서 이익을 위해 세금을 마구 거두어들이는 등 관리들이 불법을 저지르자 군사를 일으켜 수령을 축출했고, 고려 조정에서는 조동희에게 명령해 부절을 가지고 가서 왕의 뜻을 전하자 양수를 포함한 탐라 사람들이 스스로 항복했다. 양수를 포함한 두 사람과 그 무리 5명은 베고, 나머지는 모두 곡식과 비단을 주어 위로했다.

3. 기타

양수는 제주 양씨 족보에 이름이 올라있는데, 사실이라면 탐라 토호가 앞장서서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탐라지 등 기록에 따르면 제주에서 양(良)씨는 고(高)씨 성주(星主) 다음가는 왕자(王子)를 지내며 후에 양(梁)으로 성을 바꾼다. 탐라 토호가 반란 수괴로 처형에까지 이른 경우는 찾기 힘들며, 이후의 여러 반란에서 탐라 토호들은 반란 세력에 가담했다가도 효유하러 온 안무사나 수령 등에게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제주연구원에서 발행한 탐라사 복원 이야기의 분석에 따르면 왕자직을 계승한 양씨 세력의 입장을 대변한 양수는 이전의 고유, 고조기 등이 고려 조정과 타협해 중앙정계의 관리로 진출한 것에 대한 반발 때문에 반란을 일으킨 것이며, 자신들이 주도하던 이전의 탐라국으로 돌아가려는 분리주의 정서가 짙게 깔린 움직임으로 볼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했다.

이 일 이후로 양씨가 왕자직을 잃어 토호 세력의 대열에서 이탈하고, 그를 대신해 고씨 세력과 동맹을 맺고 전라도에서 이주한 문씨 세력이 왕자직을 계승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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