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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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묘 | 양녕대군 이제 묘역 | 효령대군 이보 묘역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1호 | |
양녕대군 이제 묘역 讓寧大君 李禔 墓域 | |
소재지 |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동작구 양녕로 167 (상도4동) |
분류 | 유적건조물 / 무덤 / 왕실무덤 / 조선시대 |
수량 / 면적 | 건물 3棟, 분묘 1基, 석물 7基, 토지 1,739㎡ |
지정연도 | 1972년 8월 30일 |
시대 | 1675년 (숙종 1년) |
홈페이지 | 지덕사 |
<colbgcolor=#1b0e64> 양녕대군 묘소[2] |
지덕사 전경[3] |
지덕사 정문[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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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3대 임금 태종의 맏아들이자 4대 임금 세종의 큰형 양녕대군 이제의 묘소 및 사당이다.2. 역사
1675년(숙종 1년)에 건립했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양녕대군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이었으나,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양녕대군이 세종에게 왕위를 양보했다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고, 숙종 시기 들어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태백과 같이 덕이 있는 아우에게 왕위를 양보한 현인'이라는 명분으로 숙종이 사당을 세웠다. 자세한 내용은 양녕대군/평가 문서 참조.사당 이름 '지덕(至德)'은 '인격이 덕(德)의 극치에 달했다(至)'는 뜻이다. 주나라의 고공단보가 3남 계력을 후계자로 삼을 때 장남 태백이 아버지의 뜻을 안 후 삭발하고 숨어살았던 일을 두고 공자가 태백은 지덕이라고 칭송한 데에서[5] 유래했다.
이후 역대 임금들이 신하를 보내어 제사를 지내게 했다. 1757년(영조 33년)에 영조는 양녕대군의 후손을 골라 등용시키게 하고 사당을 보수시켰으며, 직접 제문을 짓고 제를 올리게 했다.# 1789년(정조 13년)에는 정조가 직접 지덕사의 유래와 양녕대군의 일생을 적은〈지덕사기(至德祠記)〉를 친히 써서 사액했다. 또한 판부사 채제공에게는 현판을, 지중추부사 윤동섬에게는 사당 액호를 쓰라고 명했다.#
1873년(고종 10년)에는 16대 사손 이승보[6]가 중수했다.
처음에는 숭례문 밖 도동[7]에 있었다가 일제강점기였던 1912년에 현재 자리로 옮겼다. 1972년 8월 30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받았다. 첫 등재명칭은 '지덕사부묘소'였고 2008년 10월 30일에 '양녕대군 이제 묘역'으로 바뀌었다. 2002년에서 2005년에는 묘역을 정화했고 2005년 3월에 재실 도광재를 준공했다.#
지금까지 양녕대군의 후손들이 관리하고 있다.
3. 관람
2000년부터 문화재 보호 등의 이유로, 제사 등 특별한 행사를 할 때에만 개방했고 평상시에는 닫아두었다. 그러다가 서울특별시와 동작구에서 2018년부터 # 시민들에게 전면 개방했으며, 묘역 개방과 함께 근처에 있는 국사봉 산책로도 같이 정비했다.입장료는 없다. 관람일과 시간은 매주 화요일에서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고, 일요일과 월요일에는 휴관한다.
지하철 역은 수도권 전철 7호선 장승배기역과 상도역이 가깝다. 둘 중 어느 역에서 내려도 거리는 비슷하기 때문에 편한 역에서 내리면 된다. 장승배기역과 상도역 둘 다 2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걸어서는 약 18분 정도 걸린다. 장승배기역에서는 500번[8], 5535번[9], 8551번[10], 동작13번 버스를, 상도역에서는 동작08번과 동작13번 버스를 타면 가장 빨리 갈 수 있다.
4. 구조
- 묘역 11,888평에 사당 건평 9평, 건물 3동, 묘 1기가 있다. 사당 동측 옆에 있는 연못 위의 다리를 건너 언덕을 오르면 묘역이 보인다. 사당 내부에는 양녕대군과 부인 수성부부인 김씨의 위패를 모셔놓았다.
5. 유물
6. 여담
- 경술국치 하루 전날인 1910년 8월 28일에 양녕대군 묘비가 번개를 맞아 갈라졌다고 한다. 현재 있는 묘비는 1915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colbgcolor=#1b0e64> 이승만 대통령 양녕대군묘 성묘를 다룬 《대한뉴스》 영상 |
[1] 9호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은 2021년 12월 27일에, 10호 '한우물'은 1991년 2월 26일 해제 후 각각 보물과 사적 343호로 승격했다. 한우물의 경우,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서 '한우물및주변산성지'를 거쳐 2011년 7월 28일 '서울 호암산성'으로 명칭을 변경했다.[2]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3]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4]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5] 논어 제8편 泰伯[6] 경복궁 중건 당시 영건도감의 제조(총책임자)였다.[7] 지금의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일대.[8] 당곡역과 봉천역에서 버스를 탄다.[9] 당곡역에서 버스를 탄다.[10] 봉천역에서 버스를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