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90년대 X세대의 사회 문제로 떠올라 오렌지족과 함께 화제가 됐던 사람들을 일컫는 신조어.2. 상세
1980년대부터 등장한 오렌지족들이 번화한 밤거리에 고급 승용차를 몰고 마음에 드는 여성 앞에 차를 세운 후 "야, 타."라고 하면서 여성을 유혹하고 여성들은 남성이 맘에 들면 차에 타고 함께 놀았는데 이들은 자연스럽게 원나잇 스탠드로 이어졌다.야타라는 이름은 저들의 명대사인 '야, 타.\'에서 유래했다. 당연히 자기들이 직접 붙이지는 않았고 당시 이런 문화가 등장하자 한 언론에서 지었다. 참으로 90년대스러운 네이밍 센스다.
이들은 1990년대에는 꽤나 센세이셔널한 집단이었다. 젊은이들이 고급차와 명품을 드러내고 자신의 부를 과시하면서 여성을 유혹하고, 여성들은 아무런 경각심도 없이 이들의 차에 올라타 밤을 보내는 행위는 전국적으로 굉장히 충격을 주었다.
당시 자동차는 자가용의 유무로 집안 형편을 가늠할 수 있었을 정도로 고가의 물건이었고, 1990년대에는 고급차의 상징이었던 다이너스티나 프리미엄 수입차인 벤츠, BMW, 볼보 같은 차는 더욱 엄청난 고가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고급형 중형차[1]만 되어도 야타하기엔 부족하지 않았다. 특히 르노삼성 SM5은 야타에 특화된 차로도 유명했을 정도다. 이러한 야타족 차량들이 오늘날 말하는 소위 양카의 시초이자 조상님이다.
가장 활발히 야타가 성행했던 지역은 방배동 카페 골목이었는데 밤 11시 전후를 기점으로 하얀색 세단들이 길이 막힐 정도로 나타나 새벽 2~3시까지도 계속 누비고 다녔다. 야타에 성공한 일행은 바로 인근의 심야 불법 영업[2]중인 가라오케나 실내포장마차 등으로 이동하여 즉석 만남을 이어갔다.
그 외엔 나이트클럽이 문을 닫는 시간인 새벽 2시경 클럽 앞에 나타나 부킹에 성공하지 못한 여성들 앞에서 차 문을 열어주며 가라오케나 어디 가서 술 한잔 더 하자는 멘트 혹은 별로 내켜하지 않는 여성에겐 그럼 그냥 집에 데려다 주겠다는 멘트로 차에 태우곤 했다.
급기야 원래는 오렌지족이 자주 찾는 서울의 일부 번화가에서만 행해지던 야타가 뉴스로 인해 전국적 명성에 힘입어 남성들은 어떻게든 차를 빌려 야타를 하려고 했고, 여성들은 야타를 안 하면 유행에 뒤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아 오히려 서울의 일부 번화가에서만 유행하던 야타의 전국적 대 유행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에 야타족이란 용어를 비틀어 "나, 타?"라며 여성들의 속물적인 면을 강조한 유머도 존재했다.
남녀관계, 성적인 측면에서 당시보다 훨씬 더 개방적인 21세기에도 아무런 맥락 없이 차 문을 열고 타라고 하고 그걸 또 타는 행위는 기이하게 보이는 면은 분명 있다. 하지만 죄는 아니기도 하고[3] 그냥 당시의 (현재 시점에서 보면) 오글거리는 감성, 페라리 거지 같은 말까지 나오는 현재와 다르게 승용차의 위상이 더 높았던 점, 무엇보다 지금처럼 흉악범죄, 이유 없는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강하던 시절이 아니라는 점 등이[4] 복합적으로 만들어낸 문화였다. 하지만 이걸 중대한 범죄인 것 마냥 연일 보도하고 비난한 야타족 보도는 결국 사회에 무의미한 '열등감'과 '증오'만을 만들어냈다. 결국 열등감과 증오에 사로잡힌 사회 하층 청년들이 지존파, 막가파 같은 살인 조직을 결성하여 '고급차를 타는 부유층'을 노리고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끔찍한 사건까지 일어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체포된 지존파 두목은 인터뷰에서 "야타족, 오렌지족을 죽이겠다!"고 소리 질렀는데, 이들이 실제로 소위 "그랜저를 타고 다니는 부유층"을 단 1명도 죽이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당시의 보도가 얼마나 과장되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황금만능주의의 일면 등등의 이유로 당시 많은 질타를 받고 TV에서 패러디하기도 했다.
당시 MBC 코미디 프로그램 <길 떠나는 은장도>에선 가마를 홀로 타고 다니는 바닥을 뚫고 안에 들어가서 가마를 들고 다니는 양반 자제들이 젊은 처자들에게 야타~ 이렇게 하는 걸로 패러디했다.
2000년대 초까지 자가용 보급률이 가파르게 치솟자 나중엔 야따족이라는 신조어가 잠시 나오기도 했는데 여성들도 차가 있다보니 타라고 하는 대신 "야, 따라와!" 한다는 뜻이다. 다만 이 무렵부터는 고급차 자체가 흔해지다 보니 얼마 못 가 금세 사라졌다. 이때는 이미 야타족 자체가 구닥다리 문화가 되어서 '이거 타고 강남 가면 계집들 줄슴' 하는 제목으로 광역버스에 줄 서서 타는 사람들 사진을 올리는 낚시글이 인터넷에 퍼질 정도였다.
[1] 1990년대 야타족들 주요 차종은 1992~1997년에는 현대 2세대 그랜저를 사용했고, 1998년부터는 삼성 SM525V를 많이 사용했다.[2] 당시엔 12시 이후엔 술집 영업이 금지였다.[3] 남자가 여자에게 먼저 추파를 던지고 여자가 그걸 수락했을 때야 비로소 만남이 성립되기 때문이다.[4] 그 때보다 더 이전부터 봉고차에 잘못 타면 새우젓배에 팔려간다는 등의 얘기는 있었으므로 이유 없는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라기보다는 방배동 등 매우 치안이 좋은 서울 한복판의 번화가, 당시 부를 상징하는 좋은 자동차 등이 범죄확률을 낮춰준다. 결정적으로는 젊음과 용모, 그리고 정보화 사회가 아닌 당시로서는 상당히 복잡한 코드였던 서울의 최신 옷차림과 패션에 능통한 것은 쉽지 않다. 지존파, 막가파 등도 이런 야타족과 오렌지족에 대한 증오심을 가졌지만 이들이 자동차는 탈취해서 타고 다니더라도 인터넷도 없는 세상에서 패션을 따라갈 수는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