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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05-24 19:48:49

야마자키 마리

파일:external/www.newyorker.co.jp/19yamazaki.jpg

일본의 만화가. 도쿄에서 태어났으나 유년기 대부분을 홋카이도 삿포로에서 보냈다고 한다.

ヤマザキ マリ

1967.04.20 ([age(1967-04-20)]세) ~

한국에서는 테르마이 로마이로 유명하다. 그외에 [지구연애], [세상의 끝에서도 만화가] 등이 있다. 1996년부터 이탈리아 생활을 담은 에세이 만화로 데뷔해 활동하기 시작했지만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8년 테르마이 로마이가 잭팟을 터트리면서부터였다.

남다른 역마살로 유명하다. 14살때부터 이미 혼자서 독일과 프랑스 여행을 다녔으며,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하다 현지인과 결혼하여 북부 지방에서 몇 년 살고, 다시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이주했다. 2013년 이후로는 미국 시카고에 살면서 만화를 그리다가 또 다시 이탈리아로 이주했다. 평생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를 넘나들며 30여개국을 오갔다고 한다.

만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들 출산 후 조금이라도 생활비를 벌어보기 위해서였다. 아이의 친부는 17살 때부터 10년간 연애 및 동거를 했던 남자친구였는데, 작가는 아이를 낳자마자 무능력자(...)인 그를 쫓아내고 아이를 홀로 기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이후 아들이 만 8살이 되었을 때 이탈리아에서 지금의 남편[1]을 만나게 되었다.

만화가가 되기 이전엔 화가였다. 그냥 화가도 아니고 무려 1563년에 세워진 피렌체 국립미술원(Accademia di Belle Arti Firenze) [2] 출신이다. 그야말로 로열 블러드 중에서도 로열 블러드인 셈. 그럼에도 만화계로 뛰어든 이유는 만화 쪽이 돈이 더 잘 벌렸기 때문이다. 하여간 대회에 첫 작품을 출품하여 상금 10만엔 가량을 받았고 그 돈으로 귀국 비용을 마련했다. 이런 커리어 탓인지 야마자키 마리의 화풍은 일본 만화의 대세 화풍하고는 약간 거리가 있는 편이다. [3][4]

여러 나라를 오가면서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

일본을 제외하고 가장 오래 머문 나라는 이탈리아다. 남편도 이탈리아 사람이며 화가의 길을 시작한 곳도 이탈리아. 학생 때 작가는 우연히 마주친 이탈리아 아저씨[5][6]에게서 예술을 공부하고 싶다면 이탈리아로 오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이를 계기로 아저씨의 가족과 인연을 쌓게 되었다. 그리고 작가는 몇 년 후 이 남성의 외손자와 결혼한다! 남편이 유학중이던 이집트의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며, 후에 시리아, 다마스카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을 옮겨다니다가 남편이 시카고 대학에서 비교문학을 연구하게 되면서 시카고에 살게 된다.

그렇게 시카고에 정착하는가 싶더니 2016년 3월에 다시 이탈리아로 이주[7] 했음이 밝혀졌다. 2016년 10월부터 NHK ETV 프로그램인 [여행하는 이탈리아어(旅するイタリア語)]에서 현지 리포터로 등장했다.

어렸을 때부터 유럽 여행을 다녔다거나, 이탈리아의 일류 미술원으로 유학을 갔다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 부유한 집안 출신이다. 어머니는 삿포로 교향악단 비올라 주자라고 한다.

2016년부터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만화로 그리고 있다.

1. 국내 번역 출간 작품[8]



[1] 결혼 당시 야마자키 작가는 만 35세였고, 남편은 만 21세의 학생이었다. 작가-남편의 연령 차보다 남편 - 작가의 아들 간 연령차가 더 적다.(...) 남편 쪽에서 상사병이 나서 작가가 결혼을 덜컥 승낙해버렸다고.[2] 이 미술원 산하 박물관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진품이 있다![3] 이런 경력을 만화가로 전업하고서도 아예 썩혀두지는 않았는지, 야마시타 타츠로의 2022년 발매 앨범인 SOFTLY의 앨범 아트워크에 쓰인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진작부터 자신의 초상화를 남기는 게 꿈이었던 야마시타로부터 '당신은 원래 화가였잖아.'라며 의뢰를 받았다고 하며, 야마자키 작가는 '어떤 표현에 있어서도 까다로운 심미안을 가진 한 장인을 납득시키기 위해 지금의 제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으로 그려낸 것이 이 작품입니다.'라고 언급했다.[4] 덧붙여서 '회화의 길을 선택하고서 자신에게 처음으로 기쁨과 긍지를 느낄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해주신 야마시타 씨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라고 언급했다.[5] 큰 여행 가방을 들고 있던 작가를 가출 소녀로 착각해 혼냈다고 한다.(....)[6] 벨기에에서 만났는데 아마 자기 현지 애인을 만나러 온 것 같다고. 부인(남편의 외조모)과는 바람기 때문에 옛날에 이혼해서 같이 살지는 않는다.[7] 후지정당주식회사 홈페이지에 게재된 에세이의 프로필에 언급.[8] 2019년 12월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