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왕국 섭정 |
제1대 |
압둘 알-일라 |
제2대 |
샤라프 빈 라제 |
제3대 |
압둘 알-일라 |
<colbgcolor=#000><colcolor=#FFF> 1·3대 이라크 왕국 섭정 압둘 알-일라 عبد الإله | |
▲ 당시 세계적인 사진가 세실 비튼이 찍은 사진. | |
이름 | 압둘 알-일라 |
출생 | 1913년 11월 14일 |
오스만 제국령 히자즈 | |
사망 | 1958년 7월 14일 (향년 44세) |
아랍 연방 바그다드 | |
재임기간 | 제1대 섭정 |
1939년 4월 4일 ~ 1941년 4월 1일 | |
제3대 섭정 | |
1941년 6월 1일 ~ 1953년 5월 2일 |
1. 개요
이라크 왕국의 섭정.2. 생애
2.1. 어린 시절
1913년 11월 14일, 샤리프 후세인국왕의 아들인 알리 빈 후세인의 아들로 당시 오스만 제국령 히자즈에서 태어났다.2.2. 섭정이 되다
손아래 사촌형인 가지 1세의 죽음 이후 압둘 일라는 당조카인 파이살 2세의 섭정이 되었다. 당시 후계자였던 파이살 2세가 4살 밖에 안되었기 때문이었다.2.3. 1941년 쿠데타
가지 1세가 반영국이었던 반해 압둘 일라 섭정은 친영국 성향을 보였다. 당시 이라크는 반영국 민족주의와 친영국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섭정의 이런 행보는 대다수였던 반영국파의 섭정에 대한 지지를 떨어트렸다.이후, 섭정의 친영 정책에 실망한 민족주의 이라크 정치인 라시드 알리 알 가일라니와 황금 광장이 섭정 암살과 쿠데타를 시도하였으나, 암살 시도를 눈치채고 섭정은 이라크 왕국을 빠져나갔다.
이후 섭정은 파이살 2세의 수니파 이슬람 선생이었던 샤리프 빈 라제로 변경되었으며, 압둘 일라는 전 이라크 왕국 총리였던 누리 알 사이드와 같이 난민으로 요르단 암만 지역에서 신분을 숨기고 빈민가에서 동거하였다. 이후 같은 하심 가문소속이던 압둘라 1세가 이를 눈치채고 자신의 왕궁에서 지낼수 있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