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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22 07:3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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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오해

1. 개요

네덜란드의 목사이자 신학자인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Jacob Arminius)가 주장한 개신교 구원론의 하나이다.

2. 상세

아르미니우스는 1560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때에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하여 그의 어머니는 개종한 가톨릭 신부의 양자로 맡겼고. 신부가 죽은 후에는 마르부르그의 한 교수가 그를 루터파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하였다. 후에 그는 로테르담의 개혁교회의 목사 피터 베르티우스(Peter Bertius)의 집에 머무르고 베르티우스 목사는 그를 라이덴의 대학으로 보냈다.

그는 암스테르담의 교회의 후원자들로부터 목사로 돌아와야 한다는 조건으로 제네바에서 최상의 교육을 받아 칼빈주의 주창자인 베자와 다른 스승들로부터 신학을 배웠다. 그는 이 때에 극단적인 칼빈주의의 입장을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당시 학식있는 평신도인 코른헤르트(Koornheert)가 1589년에 베자의 신적 작정(이중예정론)의 이론을 논박하는 학술과 강연을 하고 저서를 발행했는데에. 이는 신학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그는 베자가 말한대로 만약 하나님께서 죄의 원인이시라면 하나님은 바로 죄의 창시자가 된다는 것에 관하여 논의했다. 그가 매우 뛰어나게 그 논의를 이끌어가자 칼빈주의의 전체 체제와 정치적 안정성 자체가 침해받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겨나게 되어 그를 논파할 수 있는 목사로 아르미니우스에게 그 임무가 주어졌다.아르미니우스는 우선 성경 자체, 로마서에서 나타나는 예정에 관한 진지한 연구로부터 시작했다. 특히 칼빈주의자들의 교리의 중심지가 되는 9장에 관심을 집중했다. 로마서에 관하여 연구가 진행될수록 아르미니우스는 바울의 실제로 가르친 것은 베자가 주장한 예정론을 논박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개인 구원은 항상 신적 작정에 의해서가 아닌 믿음에 의해 이루어졌고, 여기에 하나님의 의가 놓여있다. 아르미니우스는 예정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단념하지 않고, 다른 시야에서 성경적인 예정을 보았다.그는 초대 교회 교부들의 책을 읽고 학문적으로 검토를 하여 어떤 훌륭한 교부도 베자의 견해를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는 것과 칼빈의 이중 특별예정은 공식적으로 교회에 받아들여진 적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어거스틴펠라기우스의 논쟁 전후를 막론하고 완전한 도덕적 책임성을 가르쳤다는 것을 발견했다.아르미니우스는 이러한 연구 결과로 인해 코른헤르트에 대하여 이단이라고 논박할 수 없었다. 그는 이 후 로마서를 강해할 때에 타락 전 예정설에 강조를 두지 않고 로마서의 참되고 풍성한 의미를 강해하기 시작했다.그는 권위가 사람들의 의견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고 주장했다. 신앙 신조가 아닌 성경이 단 하나의 정통적인 근거가 되기를 원했다.
아르미니우스는 신적 작정에 관한 타락 전 예정설의 개념을 다음과 같은 이유로 거부했다.
1. 그것은 성경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2. 과거 1500년간, 그것은 책임 있는 신학자들에 의해 주장되지도 않았었고 전체 교회에 의해 수용되지도 않았었다.
3. 그것은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만든다.
4. 그것은 창조되지 않은 사람에 관해 선택의 작정을 만든다.
만약 베자와 고마루스가 가르친 대로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하는 원인이라면, 하나님은 곧 죄의 창시자이다.
아르미니우스는 타락 전 예정설의 논리는 결코 이런 결론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 중 가장 심각한 것은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보는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이러한 오류를 비난하는 데 전력하였다.

아르미니우스는 신학적 문제들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 1609년에 세상을 떠났다.
1. 예정에 관한 아르미니우스의 원리들
ㄱ. 예정 교리는 1차적으로 논리적이거나 철학적이 아니라 반드시 성경적이어야 한다. (이 점은 후에 감리교 창시자 존 웨슬리의 원리가 되었다.)
ㄴ. 예정은 반드시 기독론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신적 작정이 아닌 그리스도가 구원의 근원이며 원인이다
ㄷ. 구원은 반드시 복음적이어야 한다. 즉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믿는 믿음에 의해 구원을 받는 것이다.
ㄹ.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죄의 창시자로 만드는 어떤 이론도 비성경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을 자기 스스로의 구원의 창시자라고 말하는 것도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2. 네 가지 작정(decrees)에 비추어 본 아르미니우스의 예정이론
ㄱ.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죄를 파괴하는 자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작정하셨다. 그리스도는 선택된 사람(Elect Man)이다. 각 개인들은 구원에 선택되어지지 못했으나 그리스도는 인간들의 유일한 구세주로 지명되었다. 구원의 방법은 예정되었다.
ㄴ.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믿는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은총으로 받아들이시기로 작정하셨다. 주된 강조점은 "그리스도 안에"이다. 그리스도의 공로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은 참고 견디는 자들에게 부여된다.
ㄷ.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목적을 성취시키는 수단(능력)으로 은총을 사용하신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께 돌아오고 또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은총은 모든 사람에게 부여되었다. 이것이 선행 은총이다. 인류로 하여금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ㄹ. 하나님께서는 신적 예지에 근거하여 예정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믿을 사람과 믿지 않을 사람을 미리 아시고(예지豫知) 거기에 따라 예정[1]하신다.

아르미니우스는 이중예정에 대한 부분만을 거절하는 자로 볼 수 있다. 아르미니우스는 이러한 예정의 부분만 거절했고 모든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칼빈주의 4대 강령만 믿는 온건한 칼빈주의자로 볼 수 있다.

알미니안 신학자인 F.L. 폴린트는 '고전적 알미니안'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 우리 복음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의 구원을 예정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모든 이가 영원한 죽음의 정죄를 받도록 예정하셨다고 말한다." F.L. 폴린트

즉 아르미니우스의 예정의 표현과 그 개념이 칼빈주의에서 말하는 예정과는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아르미니우스 사후에 그의 추종자들은 유능한 학자이며 신실한 그리스도인인 시몬 에피스코피우스(Simon Episcopius)를 중심으로 그가 끝마치지 못한 일들을 계속해 나아갔고 그들은 항의자들(Remonstrants)이라 불렸다. 그들은 앞으로 있을 공청회에 대비해서 아르미니안의 입장을 정식으로 형성했다.
아르미니안의 다섯가지 전제
1. 예지에 기초한 조건적 선택 (Conditional Election)
2. 인간의 개인적 믿음에 의해 제한되어지는 만인 구속설(Universal Atonement)
3. 하나님의 은총이 없이는 선을 행할 수 없는 - 자연적 무능력
(Natural Inability)
4. 선행적 은총 (Pervenient Grace) - 인간의 선의 근거로 제시해주는 것으로서, 죄인들의 사악한 의지에 의하여 거부되어지고 따라서 그 효과를 잃을 수도 있다.
5. 조건적 견인(Conditional Perseverence) - 비록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에서 충분한 은총을 주실지라도, 인간은 이것을 무시하고 은총에서 떠나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질 수 있다.

이것에 대항하여 칼빈주의자들이 답한 것이 도르트총회에서의 TULIP이라고 불리는 칼빈주의 5대 강령이다.

도르트공의회는 1618년 11월 13일에 시작이 되어, 154번의 회의를 계속한 후에 1619년 5월 9일에 끝났다. 102명의 네덜란드 정통 칼빈주의자들은 외국에서 온 28명의 칼빈주의 대표자들과 함께 회의의 공식적인 구성원이었다. 아르미니안의 대표자들은 13명이 참석했으나 그들은 국가의 죄수들이었다. 교회와 국가의 전영역에 대한 항거와 그들의 신학적 입장 때문에 그들은 반역죄를 선고받았으며, 따라서 그들은 발언권과 선거권을 가지지 못했다. 그 결과 만장일치로 칼빈주의의 주요 5대 교리가 공식적인 칼빈주의의 입장으로 선포되고, 아르미니안의 주장은 이단으로 선포되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이단으로 선포되었다고 해서 그들의 사상이 이단이라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여기서의 칼빈주의는 극단적 칼빈주의(Hyper Calvinism)[2]이다. 존 웨슬리는 이러한 극단적 칼빈주의를 비판하여 이중예정론을 거부했다.

아르미니안의 추종자 일부는 펠라기아누스적 합리주의(pelagian rationalism)에 빠졌다. 이러한 형태로 아르미니우스의 주장이 왜곡이 되어서 인간을 고양하고 구세주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신학적 자유주의로 발전하게 된다. 이들은 인간은 죄로 묶여있으며, 구세주에게 의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육과 사회적 불평등을 시정함으로 인간들을 곤경에서 구원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복음적 아르미니안주의는 항의자들(Remonstrants)의 5가지 주장에 기초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베푸시고 모든 각 개인들을 그러한 사랑을 영접해야 할 개인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존 웨슬리는 "아르미니안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그들은 칼빈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강력하게 원죄를 긍정하고 믿음에 의한 칭의를 가르친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으나,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할 수 있으며 신자들도 영원한 믿음의 파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칼빈주의자들은 예정이 절대적이라고 믿고, 아르미니안주의자들은 구원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믿는다. 웨슬리는 아르미니안을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반대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확신하였다.
근본적으로 아르미니안주의는 칼빈주의의 도덕 무용론, 율법폐기론(Antinomian)적 경향에 대한 윤리적 반동이었다. 만약 인간들이 모든 면이 예정에 의하여 결정된다면, 거룩(성결)에 대한 윤리적 요구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아무런 관련도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르미니우스주의에 영향을 받거나 지지하는 사람으로 대표적인 인물은 감리교의 창시자 존 웨슬리와 그의 형제 찰스 웨슬리가 있으며, 미국의 복음전도자 찰스 피니, 빌리 선데이, 드와이트 라이먼 무디빌리 그레이엄을 들 수 있다.[3]

교파별로 존 웨슬리의 영향을 받은 감리회, 성결교, 구세군, 오순절교회(순복음)의 경우 이러한 아르미니우스의 영향을 받은 교파이다.

침례교의 경우 어떠한 신학보다 성경 그 자체를 중시하는 교파로써 칼빈주의, 아르미니우스주의 두 가지 다 나타나고 있는데, 아르미니우스주의를 추구하는 침례교회를 일반침례교회, 칼빈주의를 따르는 교회는 특수침례교회로 칭하고 있다.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는 개신교 신학자이기 때문에, 가톨릭정교회의 경우 사실상 아르미니우스주의적인 구원관을 가지고 있지만 아르미니우스주의라는 용어를 쓰지는 않는다.

3. 오해

칼빈주의를 지지하는 국내의 보수적인 교단들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되고는 한다. 사실 아르미니우스 주의가 칼빈주의 신학을 반대하는 신학이기도 하고 사람의 행위를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극단적인 신비주의자[4]들에게도 반발을 듣는다. 또한 아르미니우스주의와 일부 비슷한 주장을 하는 자유주의 신학[5]자들이 있기 때문에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간혹 아르미니우스주의가 곧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일반화를 받기도 하지만, 자유주의 신학과 아르미니우스주의는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아르미니우스주의는 그저 칼빈주의 신학과 같지 않은 견해일 뿐이고, 사람의 행실로 믿음의 상태를 점검할 필요성을 조금 더 중요시 여겼을 뿐, 자유주의 신학과 같이 성경의 권위와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신학이 아니다. 또한 칼빈주의도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6] 아르미니우스주의 신학은 행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고, 믿음이 흐트러졌을 때에 회개하는 것을 조금 더 중요시 여겼을 뿐,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또한 아르미니우스주의 = 자유주의라는 인식 때문에 아르미니우스주의를 지지하는 교단들은 전부 진보적이라는 인식이 있을 수는 있다.
여기서 “자유주의”란 사회문화적으로 자유로운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보주의와도 관련이 있다. 하지만 그것과는 다르게, 성결교의 예성교단과 순복음교단의 예하성교단은 보수적인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칼빈주의를 지지한다 해서 무조건 보수인것도 아닌것이, 국내 장로교단중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있다[7]. 또한 성공회도 꽤나 진보적인 교단이며 천주교와 비슷한 분위기도 있는 교단이지만 성향은 온건한 칼빈주의 성향이다.[8]

또한 거의 대부분의 기독교에서 이단으로 취급하는 세미펠라기우스주의와 매우 자주 혼동된다. 세미펠라기우스주의는 자신의 행위로 인한 의만으로는 구원에 이르기에 부족해서, 자신의 행위로 인한 의와 하나님의 은혜가 합쳐져서 구원에 이른다는 주장이다. 세미펠라기우스주의가 주장하는 바에 대해 다시 설명하자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는 이유는 그 사람이 거듭나기 전에도 나름 도덕적인 삶을 살았는데 나중에 믿음까지 갖게 됐기 때문이고, 거듭난 후에도 거듭나기 전의 도덕적 성향[9]이 그대로 남아서 그것과 하나님의 은혜가 합쳐져 사람은 온전히 선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미펠라기우스주의의 이런 주장은 사람이 은혜를 힘입어 믿음으로 한 선한 행위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가톨릭 등의 주장과는 매우 다르며, 회개하고 은혜를 받아들이게 되면 거듭 나기 전의 나름 도덕적으로 살려고 했던 성향조차 자기 의를 세우려고 했던 교만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런 성향이 사라진다는 것이 정상적인 기독교 교리다.[10] 아르미니우스주의는 100%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며, 성도의 거룩한 행위는 그 사람이 스스로 내세울만한 의가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한다. 즉 인간이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거나 받아들이는 것 뿐이며, 구원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로만 이루어진다는 이론이 아르미니우스주의다.

또한 누가복음 13장 24절, 히브리서 4장 11절, 베드로후서 3장 14절 등을 근거로 구원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아르미니우스주의가 행위구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쓰라는 말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끊임없는 죄성을 십자가에 못박아 온전히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시도록 힘쓰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힘으로 뭔가 해보려고 하겠다는 자신의 종교적 혈기가 있다면 그것은 버려야 할 것이고 힘을 빼야 하지만, 신앙생활이 귀찮거나 다 포기하고 싶은 힘들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과, 틈날 때마다 예수님을 찾으며 기도하는 것과,[11] 믿음으로 선을 행하는 것[12]에는 부지런히 힘써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1] 이 예정에 대한 표현으로 아르미니우스는 "인간의 대한 구원의 선택과 파멸의 유기"라고 표현한다.[2] 극단적 칼빈주의는 이전에는 강경한 칼빈주의로 표현되거나 가짜 칼빈주의로 표현되다가 19세기 후반에 하이퍼 칼빈주의로 불리게 되었다. 이들의 문제점은 복음 전도와 설교, 기도와 같은 인간의 노력 없이 하나님의 주권적 뜻으로 선택하신 자를 구원한다는 가르침이 있었다. 이들은 때로 선하고 악한 인간의 모든 행동도 하나님이 지시하신 것으로 본다. 이들은 복음 전도와 선교를 무용지물로 만들 정도로 극단화된 칼빈주의이다.[3] 감리회에서는 존 웨슬리가 아르미니우스주의자라는 의견에 반대한다.[4] 사람이 아닌 하나님만이 하신다며 아무런 노력도 하지말고 기도만 해야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지칭[5] 보수적인 입장에서 볼 때 자유주의 신학은 이단이다.[6] 왜냐하면 예수를 진정으로 믿는다면,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되기 때문이다.[7] 진보적인 분위기가 강하고, 자유주의 신학을 지지하는 사람또한 일부 있는 교단임에도 어찌되었든 장로교이기 때문에 칼빈주의를 지지하는것을 밑바탕으로 삼는다[8] 다만 장로교와는 어느정도 차이가 있다. 기본적으로 천주교적인 요소들에 대해 반발하는 부분을 배제한 것이 큰 특징이다. 또한 진보적인 성향 때문인지 성공회는 아르미니우스주의라고 알고 있는 사람도 일부 있다[9] 올바른 신앙생활을 통해 서서히 발전하는 성화의 수준과는 다르다. 아무리 이전에 도덕적으로 살았어도 거듭난 직후의 성화 수준은 매우 낮다.[10] 그러므로 보수 개신교 신학자 특히 칼뱅파 복음주의자들이 가톨릭 의화교리를 세미펠라기우스주의라고 까는 것도 가톨릭 신학 측면에선 상당히 가당찮은 것이, 가톨릭 구원관 역시 구원은 무조건 하느님 은총으로만 가능하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며 다만 그 은총을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는다거나 선행에 소홀하고 악에 빠져 살다가 잃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 뿐이다. 다시 설명하면 의화는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100% 이루어지며 사랑으로 행하는 믿음인 선한 행위 또한 하느님 자비와 은총의 발로일 뿐이지만, 자유의지로 인한 인간적 차원의 선행이 하느님적 차원의 의를 잃지 않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 뿐이다. 애초에 교회론과 성사론 등이 달라서 타협 불가능하긴 한데 세미펠라기우스주의라고 까는 건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모욕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펠라기우스 본인과 추종자인 펠라기안, 이후의 세미펠라기안들을 이단이라 정죄한 곳이 가톨릭교회이기 때문이다.[11] 기도를 열심히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더라도 정신이 팔려 죄 가운데로 빠지는 것은 한 순간이기 때문이다.[12] 어떤 선행을 한 것이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 것이거나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 이외의 보상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니고, 그 행위를 마땅히 해야 할 것으로 여기면서 순수하게 하나님을 위하여 한 것이라면 믿음에 선 상태로 선한 일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