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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03:26:38

알렉스 테포

알렉스 테포의 역임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폴 니콜라
(1930~1931)
알렉스 테포[1]
(1931~1935)
에드몽 델푸르
(1935~1937)
}}} ||
아르헨티나의 前 축구 선수
파일:external/www.footforever.com/CM_00869_1930_France_Alex_Thepot_en.jpg
알렉스 테포
Alexis Thépot
<colbgcolor=#eee,#191919><colcolor=#000,#e5e5e5> 출생 1906년 7월 30일
프랑스 브레스트
사망 1989년 2월 21일 (향년 82세)
프랑스 덩케르크
국적
[[프랑스|]][[틀:국기|]][[틀:국기|]]
신체 178cm
직업 축구 선수 (골키퍼 / 은퇴)
소속 <colbgcolor=#eee,#191919><colcolor=#000,#e5e5e5> 선수 FEC 르발루아 (1927-1928)
레드 스타 파리 (1928-1935)
USL 됭케르크 (1935-1936)
국가대표 31경기 0골 (프랑스/ 1927-1935)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선수 생활2.3. 이후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4. 뒷이야기5. 수상
5.1.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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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전 축구선수. 월드컵 최초의 부상자로 기록되기도 한 인물이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브레스트에서 선원의 아들로 태어난 테포는 어린 시절에 고향팀에서 플레이했다.

2.2. 선수 생활

2.2.1. 클럽

테포는 브르통에서 빨리 두각을 나타내었고 군복무를 마친 1927년부터는 파리로 이동하여 1년간 르발루아에서 활약하였다. 르바루아에서 1년을 보낸 테포는 그 후 7년간은 레드 스타 파리에서 뛰었다. 1935년부터는 됭케르크에서 뛰며 커리어를 마무리하였다.

2.2.2. 국가대표

테포는 르바루아에서 뛸 때부터 레 블뢰에도 선발되어 전임 골키퍼 피에르 샤이리게스의 자리를 대체하였다.

1927년부터 1935년까지 테포는 총 31경기를 뛰었는데 이는 1970년대에서야 기록이 깨졌다. 또한 그 중 13경기를 주장으로서 활약할 정도로 리더십이 있었다. 그런 그였던 만큼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활약하였다.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테포는 이탈리아를 상대로 4골을 실점했고 프랑스는 3골을 넣었지만 이를 만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프랑스는 이 한 경기를 끝으로 암스테르담에 더 있을 이유가 없었다.

초대 월드컵 개막전이었던 멕시코전에서는 24분에 멕시코의 공격수 메히아와의 충돌로 턱에 부상을 입기도 했다. 결국 하프백 오귀스탱 샹트렐에게 골키퍼 자리를 넘겨줬지만 프랑스는 4대1로 승리를 거두었다. 다행히 턱 부상이 큰 부상이 아니어서 다음 2경기에도 출전하여 모두 한 골씩만 실점했지만 공격진이 아예 침묵을 지키는 바람에 결국 2경기에서 모두 1대0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이렇게 프랑스는 초대 월드컵을 다소 암울하게 마쳤지만 적어도 테포의 재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조별 리그로 활약을 좁히면 13팀의 모든 골키퍼 중 테포는 최고급의 활약을 보였다.

다음 월드컵에도 프랑스의 골문을 지켰지만 분더팀 오스트리아를 맞아 연장 혈투 끝에 2대3으로 패배하였다. 그리고 1935년 독일을 상대로 마지막 A매치를 치렀다.

2.3. 이후

됭케르크에서 나온 테포는 여러 아마추어팀에서 뛰었다.

그 후에는 1954년부터 1960년까지 프랑스 대표팀의 선수 선발위원을 맡기도 했다. 이 때 발탁된 선수들1958년 월드컵에서 프랑스를 3위에 올렸다.

1968년에는 1964년부터 시작한 세관일도 은퇴하고 그 이후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활동 반경이 넓은 편이고 골문 안에서의 반사 신경이 좋은 골키퍼로 평가를 받았다. 또한 테포가 있는 동안 잉글랜드를 꺾기도 하는 등 좋은 기량을 선보였다. 프랑스 축구계에서는 2006년 10월에 테포를 역대 프랑스 골키퍼 중 7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4. 뒷이야기

5. 수상

5.1. 클럽



[1] 테포가 대표팀에 소집되지 않을 때에는 마르셀 랑질리, 에드몽 델푸르, 에티엔 마틀레르 등이 주장 완장을 차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