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알랭 바슝 Alain Bashung | |
본명 | Alain Claude Baschung 알랭 클로드 바슝 |
출생 | 1947년 12월 1일 |
프랑스 제4공화국 파리 | |
사망 | 2009년 3월 14일 (향년 61세) |
프랑스 파리 | |
국적 | 프랑스 제4공화국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장르 | 누벨 샹송 프랑세즈, 록 음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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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싱어송라이터, 배우. 세르쥬 갱스부르, 자크 브렐 등의 시대가 지난 뒤 다가왔던 프랑스 음악적 혼란기 속에서 프랑스 샹송의 재부흥에 가장 앞장섰던 인물로 손꼽히며,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로 부터 존경받고 있는 뮤지션 중 한명이다.2. 생애
1980년 싱글 "Gaby oh Gaby"의 성공 이후로 80년대 부터 그가 죽기 바로 이전인 2009년 까지 프랑스 내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렸던 뮤지션이다. 특히 1998년, 2002년 발매했던 Fantaisie militaire와 L'imprudence은 알랭 바슝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히며, 이 두 작품은 발매 당시 비평적/상업적 모든 면에서 큰 성고을 거두면서 알랭 바슝의 전성기를 함께했던 앨범이다.바슝은 사망 1년 전인 2008년에도 앨범 Bleu pétrole 발매하고, 폐암으로 지속적인 치료를 받으면서 공연을 진행하는가 하면 새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하는 등 등 죽는 순간 까지 지속적인 음악 활동을 이어나갔다. 물론 암이 점점 악화됨에 따라 2009년에는 큰 활동을 이어가지 못했기는 했으나, 2009년 1월 1일 레지옹 도뇌르 훈장 슈발리에를 수훈 받았으며, 2월 빅투아르 시상식에 출연하여 공연을 하는 등의 활동을 지속했다. 빅투아르에서의 공연은 알랭 바슝의 마지막 공연이었으며, 한달 뒤인 3월 14일 결국 생을 마감한다.
오랜 기간 동안 프랑스 음악을 지키고 있었던 대들보와 같은 존재였던 알랭 바슝의 죽음은 프랑스 국민들에게 큰 슬픔을 안겨줬으며,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또한 바로 다음 해 열린 빅투아르에서 남자 가수상을 수상한 뱅자맹 비올레(Benjamin Biolay)는 바슝에게 헌정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으며, 2011년에는 첫 사후 정규 앨범인 L'Homme à tête de chou이 발매되기도 했다.
3. 여담
- 2010년 롤링 스톤에서 올 타임 베스트 프렌치 록 앨범 순위를 발표했을 때 6개의 앨범을 랭크시키며 가장 많은 앨범들을 순위에 올렸다. 1위 역시 알랭 바슝의 앨범인 Osez Joséphine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