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안신영(安信永) |
생몰 | 1902년 1월 26일 ~ 1975년 5월 25일 |
출생지 | 충청남도 청양군 장평면 적곡리 |
사망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견지동 18번지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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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 교육자 (배재중고등학교 교장 및 이화여대 재단이사 & 한국기독교 방송국 국장.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안신영은 1902년 1월 26일 충남 청양군 장평면 적곡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일 서울의 대한문 등지에서 3.1 운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되어 5월 13일 경성지방법원, 6월 23일 경성복심법원, 8월 12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미결수 4개월 기결수 6개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23년 3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한 그는 공주 영명학교 교사로 부임했고, 1935년 4월 평양 정의여자고등보통학교[1] 교사를 맡아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창가집 및 한글독본을 출판해 교재로 활용했다. 이 일로 다시 체포된 그는 1938년 7월 14일 고등법원에서 출판업 위반 혐의로 금고 3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으며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당국의 감시를 받다가 일제에 의하여 교원직을 박탈당하였으며 광복후에는, 미국 공보원에서 근무, 기독교 방송국 국장, 배재중고등학교 교장, 공주 영명학교 재단이사, 대한기독교서회운영이사, 감리고 신학대학 감사, 이화여자대학교 재단이사 등을 역임하고 교육계와 기독교계에서 헌신하다가 1975년 5월 25일에 자택인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18번지에서 사망했다. 안신영의 여섯형제들 또한 모두 독립운동을 하였는데 큰형인 안사영은 신흥무관학교 초대 의무감이며, 다른형제들 또한 신흥무관학교와 조선혁명간부학교 출신으로 독립운동을하다가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1967년 발행한 개편찬송가 가사위원장을 지냈는데, 편찬 과정에서 민요, 국가 곡조를 다른 곡으로 바꾸는 한편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교회 일치 분위기에 따라 보편 전례 관련곡과 한국인 곡을 추가시켰다. 기존 신편/북한찬송가 53번 <하늘가는 밝은 길이>도 원래 스코틀랜드 민요 애니로리였던 것을 직접 작곡하여 개편찬송가 488번에 수록한 것이 그 예시이다. 그 외에도 신편/북한찬송가 67번 기쁘다 구주 오셨네도 개편찬송가 85번 아 기뻐라 주 오셨다로 수정하는 등 평서문 위주로 가사를 손본 것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안신영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8년에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그의 유해를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