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6-05-28 16:27:22

안막

파일:external/blog.koreadaily.com/03143534_17.jpg
아내 최승희, 딸 안성희와 같이 찍은 사진.
1. 개요2. 생애

1. 개요

일제강점기의 문학 평론가이자 독립운동가. 후에 최승희의 남편으로 더 유명했다. 안경수는 그의 종조부이며, 안회남이 그의 6촌 형이기도 하다. 본명은 안필승. 본은 죽산. 安漠.

2. 생애

1910년 4월 18일에 경기도 안성군 고삼면에서 출생한 그는 경성제2고등보통학교와 일본의 와세다 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다녔다. 그가 사회주의에 투신하게 된 것도 이 즈음의 이야기다.

1931년 5월 KARF에서 활동중이던 그는 최승희의 오빠 최승일의 중매로 최승희와 결혼했다. 그리고 최승희의 요청에 따라 안필승에서 안막으로 개명한다.[1] 이후 그는 문학활동에서 손을 떼고 최승희의 예술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데 전력을 다했다.[2]

그녀의 매니저로서 수많은 업무를 담당하며 그녀를 서포트했으며, 최승희가 거물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전적으로 그의 도움이 컸다. 단발이 최승희의 매력을 더 잘 살릴 수 있다면서 단발로 만든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하지만 1940년대 중반 이후부터 연안 독립 동맹 활동에 주력하면서 그가 하던 일은 최승희의 오빠인 최승일, 최승오, 안막의 남동생 안제승이 하게 된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해 일제강점기가 끝난 후, 조선은 소련과 미국이 분할 통치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몸담던 사회주의를 위하여 김일성을 만나서 최승희를 소개시켜주었고, 김일성은 그녀를 마음에 들어하며 지원을 약속했다. 이후 남한에서 압박받고 있는 최승희에게 월북하자고 제안했고, 최승희는 망설임끝에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월복한다. 이 결정이 안 막 일가의 운명을 끝장낼거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북한에서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설립하고 본인도 공산당 내각의 고위직으로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북한은 두 사람이 생각하던 곳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두 사람은 북한은 예술인들의 천국이라고 믿었지만, 정작 표현의 자유는 당연히 없었고, 김일성은 예술의 가치를 알지도 못하는 포악한 독재자였던 것.

당연히 김일성의 입장에서도 충성심이 없고, 소신이 있는 예술가인 두 사람이 마음에 들리가 없었고[3], 김일성에게 밉보이게 된 안 막은 1958년 반당종파분자 혐의를 받아 체포당한다. 그리고 그는 부르주아 평론가, 미제의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숙청당했다.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김일성에게 고문당한 후에 처형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후 딸과 아내 또한 같은 결말을 맞이했다. 상세한 정황은 최승희 항목을 참고.

[1] 최승희의 스승 이시이 바쿠의 이름을 따왔다.[2] 이는 이시이 바쿠가 작가는 많지만 최승희 같은 무용가는 많지 않기에 최승희의 명성을 올리는 게 더 낫다고 조언했기 때문이다.[3] 그가 속했던 월북한 KARF 계열 인사들도 역시나 김일성에게 숙청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