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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5 01:24:09

아이두르 구드욘센

에이두르 구드욘센에서 넘어옴
아이슬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Íslenska karlalandsliðið í knattspyrnu
파일:Eiður_Guðjohnsen_2018.jpg
<colbgcolor=#0344e0><colcolor=#ffffff> 이름 아이두르 구드욘센
Eiður Guðjohnsen
본명 에이뒤르 스마우리 그뷔드욘센
Eiður Smári Guðjohnsen[1]
출생 1978년 9월 15일 ([age(1978-09-15)]세)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국적
[[아이슬란드|]][[틀:국기|]][[틀:국기|]]
신체 185cm / 체중 89kg
직업 축구 선수 (공격수, 미드필더[2]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0344e0><colcolor=#ffffff> 선수 발뤼르 (1993~1994)
PSV 에인트호번 (1995~1997)
KR 레이캬비크 (1997)
볼턴 원더러스 FC (1998~2000)
첼시 FC (2000~2006)
FC 바르셀로나 (2006~2009)
AS 모나코 FC (2009~2010)
토트넘 홋스퍼 FC (2010 / 임대)
스토크 시티 FC (2010~2011)
풀럼 FC (2011 / 임대)
AEK 아테네 FC (2011~2012)
세르클러 브뤼허 KSV (2012~2013)
클뤼프 브뤼허 KV (2013~2014)
볼턴 원더러스 FC (2014~2015)
스자좡 융창 (2015~2016)
몰데 FK (2016)
푸네 시티 (2016)
감독 아이슬란드 U-21 대표팀 (2019~ / 수석 코치)
FH (2020)
아이슬란드 대표팀 (2020~ / 수석 코치)
국가대표 88경기 26골[3] (아이슬란드 / 1996~2016)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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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344e0><colcolor=#ffffff> 등번호 첼시 FC - 22번, 11번
FC 바르셀로나 - 7번
AS 모나코 FC - 9번
토트넘 홋스퍼 FC - 17번
스토크 시티 FC - 7번
풀럼 FC - 22번
AEK 아테네 FC - 22번
세르클러 브뤼허 KSV - 22번
클뤼프 브뤼허 KV - 22번
볼튼 원더러스 FC - 22번
스자좡 융창- 24번
몰데 FK - 22번
아이슬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 9번, 22번
가족 아버지 아르노르 구드욘센
이복동생 아르노르 보르크 구드욘센
첫째 아들 스벤 아론 구드욘센
둘째 아들 안드리 구드욘센
셋째 아들 다니엘 구드욘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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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가족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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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이슬란드의 前 축구선수.

인구 33만명인 소국, 아이슬란드를 대표하는 축구선수. 현역 시절, 첼시에서 좋은 활약으로 박스 안쪽에서 보여주는 지능적인 플레이와 뛰어난 결정력, 화려한 테크닉과 경기 조율 능력을 가졌으며 무엇보다도 기복이 없이 꾸준히 좋은 폼을 보여주던 선수였다.

2. 클럽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아이두르 구드욘센/클럽 경력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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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가대표 경력

조국이 인구 30만의 소국 아이슬란드라 라이언 긱스 같이 월드컵 운이 없는 사나이였다. 그에게 마지막 기회라 할 수 있는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유럽 플레이오프에서 크로아티아에게 합계 0-2로 패하자 눈물을 훔쳐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였다.#
이것이 내 마지막 A매치라는 것이 두렵습니다. 우린 경기를 충분히 잘하지 못했어요. 너무 겁을 먹어서 롱볼에 의존했고 볼을 소유하질 못했습니다. 모든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더 큰 성공을 꿈꾸기 시작했었죠. 비록 탈락했지만 우리는 함께해야 하고, 우리가 최종예선에서 성취한 것들과 우리가 이뤄낸 것들을 기뻐해야 할것입니다. 아마도 우리가 우리의 조국을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었다는 것, 국가대표팀을 중심으로 해서 신나는 일들을 만들었던 것을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 2013년 11월 19일 브라질 월드컵 플레이오프 크로아티아전 종료 이후 인터뷰에서.

그렇게 월드컵 예선을 끝으로 아이슬란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며 물러나는 듯 싶었으나 UEFA 유로 2016의 참가국이 24개국으로 늘어나고 지역예선에서 아이슬란드가 돌풍의 핵으로 떠오르며 본선 진출이 유력해지고, 구드욘센은 코칭스태프의 설득 끝에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메이저 대회의 출전을 위해 은퇴를 번복하고 국가대표팀에 복귀하였다.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함과 동시에 카자흐스탄 전에선 골까지 터뜨리며 기량 역시 녹슬지 않았음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가 유로 2016 본선진출을 확정지음에 따라 부상 등의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선수생활의 황혼기에 드디어 메이저 국가대항전에 데뷔할 예정이다. 그리고 아이슬란드가 유로 2016 진출팀 중 제일 먼저 최종 명단이 올라왔는데 구드욘센도 명단에 포함되었다! 유로 본선에서는 헝가리전에서 교체 투입되며 주장 완장을 달고 메이저 대회 첫 출전을 기록했다. 5-1로 뒤지며 패배가 확실시되었던 8강 프랑스전에서 마지막 교체 카드로 투입되며, 사실상의 국가대표 은퇴 무대를 조국의 역사상 최고로 높은 곳에서 영광스럽게 마무리하였다.[4]

4. 플레이 스타일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가 득점왕을 따내는 데엔 구드욘센의 기여가 매우 컸다. 플레이메이커라 해도 믿을 정도의 센스있는 스루패스, 이타성, 볼테크닉 등이 그의 큰 장점이었다. 그리고 아이슬란드베르캄프라는 별명처럼 전성기에는 유연한 터치와 아름다운 테크닉을 보여주었고, 특히 박스안에서의 볼터치는 185cm라는 꽤나 큰 체구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장면을 여럿 연출할만큼 뛰어났다.

5. 가족

아이슬란드인은 일반적으로 따로 성을 쓰지 않는데, 구드욘센은 비교적 드물게 성을 가진 아이슬란드인이다.[5]

아버지 아르노르 구드욘센 (Arnór Guðjohnsen)[6]도 아이슬란드 국가대표로 뛰었는데 부자 나이 차이가 겨우 17살. 아버지가 1961년생이다.

아이두르 구드욘센의 A매치 데뷔전이 아버지의 국가대표 은퇴전이었다. 아버지와 교체되어 들어오면서 세계 최초 국가대표 부자 출전 경기를 치렀는데, 이는 축구 역사상 유일한 기록이다. 1996년 4월 에스토니아전에서의 기록.구드욘센이 직접 올린 당시 영상 선수 은퇴 후에는 아들의 에이전트로 활동했다.

아버지는 두 번 결혼하고 39세에 둘째 아들을 얻어 아르노르 보르크 구드욘센이라고 이름지었다. 즉 아이두르의 이복동생이고 스완지 시티 AFC 유스에 입단하면서 주목받기도 했지만 2020년 아이슬란드 리그에서 프로데뷔했다.

세 명의 아들을 가졌고 스페인에서 축구를 배우도록 했는데 1998년생 스벤 아론 구드욘센은 2015년 프로로 데뷔했고 2002년생 안드리 구드욘센은 2021년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소속 , 2006년생 다니엘 구드욘센도 레알 마드리드 유스팀에 소속되어 있다. 즉 삼대째 축구선수 가문이다. 특히 첫째 아들인 스벤 아론 구드욘센은 2021년 A매치에도 데뷔해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아이슬란드 국가대표가 되었다. 유럽에서도 보기 드문 기록을 가진 집안이 되었다.

6. 여담

지금은 나이도 들고 머리숱도 많이 빠져 잘 티가 안 나지만 과거에는 꽤나 미남이었다. 첼시 시절, 수염을 깎은 사진을 보면 금발 미남이 따로 없을 정도.

로만 인수 전 첼시 시절, 팀이 가난해서 선수들이 자비를 모아 경기장 시설을 개편하자고 얘기를 나누는 중, 구드욘센이 그럴바엔 돈 모아서 호나우두를 영입하자고 농담을 해 모두가 웃은 적이 있다고 한다. 락커룸 내에서도 꽤나 유쾌하고 시원한 성격이었을듯.[7][8]


[1] 아이슬란드어 아이슬란드어에서 Guð(신)은 Gvudh로 읽히기 때문에 그뷔드욘센이 오히려 맞는 표현이다.[2] 첼시 시절 공격형 미드필더와 윙어를 맡은 적이 있으며, FC 바르셀로나 시절에는 중앙 미드필더를 뛴 적도 있다.[3] 대표팀 역대 득점 2위.[4] 그 16강 상대마저 잉글랜드라는 강팀이었고 그 팀을 기어코 꺾어내 8강까지 올라온 것이다.[5] -sen으로 끝나는 이름은 주로 덴마크페로 제도식 이름으로, 한때 아이슬란드를 지배하던 덴마크나, 지금도 덴마크령의 자치 지역인 페로 제도에서 이주해온 사람의 후손인듯 하다.[6] 아이슬란드 A대표팀 역대 최다출전 4위, 최다득점 4위.[7] 실제로 당시 첼시는 매우 가난해서 졸라가 자비로 프리킥 연습용 벽을 구매했을 정도였다고 한다.[8] 선수들이 매번 무거운 골대를 옮기기 힘들어 각각 100파운드씩 모아 가벼운 알루미늄 골대로 교체하자는 의견이 나오던 도중, 하셀바잉크가 다가와 자비를 모아 잔디 관리인을 고용하자는 의견을 냈고 다른 선수가 다가와 500파운드를 모아 샤워장 타일을 교체하자는 의견을, 또 이 이야기를 듣고 온 드사이가 100파운드씩만 더 모아 욕조도 설치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 얘기를 들은 구드욘센은 지랄하지 말고 10만 파운드씩 걷어 호나우두를 영입하자는 농담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