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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23:37

시마즈 타다츠네

파일:Shimazu_Tadatsune.jpg

島津 忠恒
1576 - 1638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

1. 개요

에도시대 초대 사쓰마 번주. 시마즈 요시히로의 삼남. 1606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서 '이에'(家) 자를 받아서 시마즈 이에히사로 개명하기도 했었다.[1]시마즈 히사야스의 아내였고 큰아버지 시마즈 요시히사의 딸인 카메쥬와 결혼하였다.[2]

2. 생애

1576년 시마즈 요시히로의 삼남으로 태어났다. 형들이 모두 죽었기 때문에[3]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시마즈 가문의 후계자로 지명되었다. 후계자로 지명되기 전에는 축국이나 주색에 빠져있어 임진왜란으로 조선에 있던 요시히로가 편지로 주의를 줄 정도였으나, 후계자가 된 후 훌륭한 기량을 선보이며 사천성 전투 등에서 아버지를 도와 활약했다. 다만 인간성이 바뀐 것은 아니라 타다츠네의 횡포에 시달리던 시마즈군의 일부가 조선군 측으로 도망치는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1599년에는 전횡을 일삼는다는 명목으로 가로였던 이쥬인 타다무네를 교토 후시미에서 모살, 이에 반란을 일으킨 그 자식 이쥬인 타다자네 또한 화친으로 방심시킨 뒤 1602년 사냥을 핑계로 불러내어 죽였다.

1600년에는 아버지 시마즈 요시히로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 편에 섰기 때문에 큰아버지이자 장인어른 시마즈 요시히사와 함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화친에 힘썼고, 직접 본인이 상락해 사죄하기도 하였다. 이 덕분에 시마즈 가문은 영지 삭감 없이 살아남게 되었다.

1609년에 병력을 보내 류큐 왕국를 침공하여 당시 류큐의 국왕인 쇼네이 왕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냈다. 이후 쇼네이 왕을 에도로 압송했고 거기서 도쿠가와 히데타다를 강제로 알현시켰다. 이렇게 해서 류큐 왕국은 명나라와 일본의 이중책봉국이 되었으며 1644년 명나라가 완전히 멸망하자 류큐는 일본에 완전히 종속되었다. 막부는 류큐 왕국을 대놓고 막부에 편입시키는 대신 형식상 시마즈의 속국으로 처리하도록 결정했다. 이후 아마미 군도는 사쓰마 직할지로 삼았다.

이후 명나라와의 밀무역 루트를 수립하거나 가고시마성을 쌓는 등 여러 일을 했고, 1638년 사망했다.

3. 대중매체

파일:島津忠恒.jpg
100만인의 노부나가의 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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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촌과 공교롭게도 이름이 같다.[2] 다만 둘의 사이는 매우 나빴고, 둘이 원해서 혼인한 것이 아니었다.[3] 첫째 형은 요절, 둘째 형 시마즈 히사야스임진왜란조선에서 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