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축구에서 수비범위가 넓은 골키퍼를 이르는 말.골키퍼의 역할은 현대축구로 오면서 뒷공간 커버와 롱 패스를 이용한 빌드업 임무도 일부 분담하게 되었는데, 이런 부수적인 옵션을 극대화하면서 스위퍼 키퍼라는 골키퍼의 새로운 역할이 등장했다.
2. 상세
최초의 스위퍼 키퍼로 꼽히는 선수 중 한명은 웨일스의 골키퍼였던 리 리치몬드 루스(Leigh Richmond Roose)로 당시 규정에선 골키퍼는 아군팀 하프라인까지 손으로 공을 다룰 수 있었다. 루스는 이 규정을 이용해 마치 농구처럼 공을 튀기면서 하프라인까지 달려나가 볼배급을 하거나, 수비수들이 전진한 빈 공간으로 달려가 커버하는 등 당시 시대상으로 기상천외한 플레이를 선보였다. 1912년부터 골키퍼가 손으로 공을 다룰 수 있는 범위를 패널티박스 안으로 제한하는 규정을 만든 것이 루스의 영향이라고 보고있다.1925년엔 오프사이드 규정이 최종 수비수와 2번째 수비수 사이로 변경되면서 최종 수비수인 골키퍼와 2번째 수비수 사이의 공간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40년대에 아마데오 카리소, 줄러 그로시치같은 패널티 지역에서의 뛰어난 수비력과 장악력, 그리고 킥력으로 공격에 관여하는 골키퍼들이 등장했다.
50~60년대 TSV 1860 뮌헨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유고슬라비아의 골키퍼 페타르 라덴코비치도 패널티박스 밖까지 나와서 커버하거나, 하프라인까지 드리블을 하는 등 현대의 스위퍼 키퍼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리누스 미헬스가 토탈 풋볼을 창시하면서 골키퍼의 역할에 대하여 새로운 개념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토탈 풋볼의 골키퍼는 수비수들이 전진하면서 생기는 빈 공간을 커버하는 최후방 수비수이자, 공격의 활로를 만드는 최후방 공격수였다. 그래서 얀 용블루트가 네덜란드 주전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토탈 풋볼의 영향을 받은 요한 크루이프는 전술철학에서 수적 우위를 위해 골키퍼는 수비수들과 함께 수비라인을 형성한다는 개념을 만들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의 골키퍼였던 안도니 수비사레타는 이런 낯선 개념의 골키퍼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기에 주요 전술에서는 멀어진 채 사장되었다.
1992년 골키퍼가 백패스를 잡을 수 없다는 규정이 생기면서 골키퍼의 발밑의 중요성이 올라갔고, 크루이프즘의 영향을 받은 루이 판할의 아약스에선 골키퍼면서 후방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할 수 있는 에드윈 반 데 사르가, 사키이즘을 필두로한 이탈리아에선 높은 라인형성으로 생긴 넓은 공간을 커버할 수 있는 잔루이지 부폰같은 선수들이 있었다. 다만 반데사르는 수비라인이 낮은 세리에 무대에서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부폰은 골키퍼로서의 안정성을 중요시여겨 점차 플레이스타일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후 스위퍼 키퍼의 명맥을 이어온 것이 빅토르 발데스였다. 발데스는 유망주 시절부터 발밑이 좋고 활동 반경이 높은 골키퍼로 유명했는데, 크루이프즘을 지향하는 펩 과르디올라가 발데스에게 스위퍼 키퍼 역할을 지시하면서 골키퍼의 빌드업을 본격적으로 전술의 일부에 편입시켰다. 다만 발데스는 반대급부로 불안한 모습도 많이 보여주었고, 오래 지나지 않아 그 역할을 더욱 완벽하게 수행해내는 노이어가 등장하면서 스위퍼 키퍼의 선구자라는 이미지는 많이 약한 편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위퍼 키퍼 역할을 완성시킨 선수가 바로 독일과 FC 바이에른 뮌헨의 수문장 마누엘 노이어이다. 사실 노이어는 샬케 시절부터 뒷공간을 커버하고 적극적으로 전진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의 노이어가 본격적으로 전술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은 유프 하인케스 체제하의 바이언이 시초라고 할 수 있다.[1][2]
노이어는 한술 더 떠서 웬만한 수비형 미드필더들 못지 않은 롱 패스 정확도와 손을 이용한 던지기로 빌드업에 많은 관여를 하기 시작했다. 중앙선을 넘기는 비거리와 정확성을 이용한 빌드업의 관여는 바이에른의 역습과 빌드업에 큰 몫을 보탰으며 후방에서의 템포 조절과 롱 볼 전개에도 큰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플레이로 인해 많은 키퍼들이 그의 성향을 참고하고 있으며, 현대 축구에서 키퍼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할지 길을 제시한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3] 지난 10년 동안 가장 발전한 포지션이자 다른 어떤 포지션보다 더 많이 발전함을 증명하는 사례. 강한 압박과 높은 라인 형성 그리고 빌드업의 중요성 등 현대축구에서 골키퍼에게 요구하는 새로운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4]
그리고 노이어 덕분에 그 이전 세대에도 스위퍼 키퍼의 모습을 보인 선수가 있다는 점도 재조명되었다. 대표적인 선수가 IT가 연약했던 시절 당시 90년대 최강의 괴짜 골키퍼로 명성을 쌓았던 호세 레네 이기타. 이기타는 이른바 전갈 킥 세이브와 독특한 유니폼을 비롯한 기행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사실 프리킥/페널티킥/심지어 직접 공을 몰고가서 현란한 드리블로 필드골을 기록했던, 통산 40골을 넘게 기록했던 선수였다.
특히 남미엔 이기타처럼 빠르게 달려나가서 페널티 박스 밖에서 공격을 차단해내는 골키퍼들이 주기적으로 등장했는데 특이한 점은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거나 중앙선까지 공을 몰고 질주하며, 뛰어난 킥력을 이용해 세트피스 키커로 나서는 등 무모하다고 여겨질 정도의 과감한 플레이를 즐기는 골키퍼들이였으며 이들에겐 '엘 로코(El Loco, 미치광이)'란 별명이 따라붙었다. 아마데오 카리소, 우고 가티, 라몬 키로가, 호세 레네 이기타,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 호르헤 캄포스 등이 이런 유형에 속했다. 굳이 따지자면 노이어같은 필드 플레이어 역할을 하는 골키퍼라는 현대 스위퍼 키퍼 개념과는 달리 좋은 킥력과 발이 빠른 선수 개인의 개성을 살린 것에 가깝긴하다.[5]
이 외에도 2000년대까지 전성기를 누린 에드빈 반 데 사르[6], 그 앞 세대의 페테르 슈마이켈도 스위퍼 키퍼의 모습을 보여줬고,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레프 야신 역시 현대에 들어서는 스위퍼 키퍼 역할을 수행했던 선수로 또 다시 재평가되고 있다.[7] 스위퍼 키퍼의 원조로 꼽히는 후보로 리 리치몬드 루스, 아마데오 카리소, 줄러 그로시치, 그리고 레프 야신이 있다. 스위퍼 키퍼의 기준을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의견이 갈린다.[8] 하지만 이런 골키퍼의 역할을 '스위퍼 키퍼'라는 명칭으로 정립시킨 것은 노이어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노이어 이후로는 비교적 이런 적극적인 스위퍼 키퍼 성향을 띄는 선수들이 전보다 늘어났으며 대표적인 선수들은 에데르송 모라에스, 마르크안드레 테어 슈테겐, 알리송 베케르, 클라우디오 브라보, 보이치에흐 슈체스니, 케파 아리사발라가, 마이크 메냥, 다비드 라야, 안드레 오나나, 아론 램스데일, 우나이 시몬, 로베르트 산체스, 디오구 코스타 등이 대표적인 스위퍼 키퍼 유형의 선수이다.
점점 스위퍼 키퍼가 늘어나는 서구권에 비해 한국에서는 아직 이런 유형의 선수가 드문 편이다. 국대급 선수 중에서 빌드업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선수는 드문 편이고, 그나마 예전부터 종종 있었던 킥력 좋은 선수들은 심심찮게 있는 정도. 그나마 벤투호에서 김승규가 향상된 발밑과 패스를 바탕으로 어느 정도 빌드업에 기여하고 있으나, 스위퍼 키퍼라고 하기에는 모자라다.[9] K리그 선수 가운데는 그나마 김경민, 김정훈이 스위퍼 키퍼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편이다.
하지만 오히려 과거에 좋은 킥력과 활동 범위를 무기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 선수들이 있었으니, 김병지와 이용발이 대표적이다. 김병지의 경우 칼스버그컵 파라과이전에서 나온 악몽의 드리블 이미지가 있어서 그렇지, 당시 김병지는 굉장히 훌륭한 스위퍼 키퍼였다.[10] 발밑과 롱패스 정확도가 매우 좋아서, 2022년 월드컵 때 골키퍼의 빌드업을 중시하던 파울루 벤투 감독 아래에서 이운재와 경쟁했다면 벤투가 김병지를 중용했을 확률도 꽤 있다.당시 기사. 이용발 역시 국대 활동이 없어서 인지도는 떨어지지만 리그 내에서는 훌륭한 킥력을 바탕으로 스위퍼 키퍼의 역할을 잘 수행해낸 선수였다.
3. 목록
현역 선수는 볼드체로 표기. 한글 자모순[1] 당시 바이언은 흔히 말하는 게겐프레싱 외에도 패스 정확도, 패스 횟수 등등 패스 관련 데이터는 FC 바르셀로나에 이어 모조리 2위를 차지할 만큼 기본 바탕은 포제션에 둔 팀이었다. 이런 팀들의 특성상 뒷공간이 넓어지기 마련인데, 노이어는 12-13 시즌부터 점점 스위퍼처럼 이 공간들을 커버하더니 펩 과르디올라 부임 이후에는 거의 스위퍼 롤을 고정으로 병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노이어의 플레이는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16강 알제리전에서 포터백과 점유 축구로 나온 독일의 뒷공간을 알제리의 역습으로부터 박스 밖으로 족족 뛰쳐나가며 철통 같이 방어해내 다시금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2] 노이어는 필드 플레이어 못지 않은 우월한 퍼스트 터치 능력과 낙하 지점을 정확히 포착하는 능력, 대담성을 앞세워 35~40m 가까이 전진한 뮌헨의 포백 배후 공간을 모조리 커버하기 시작해 본격적으로 스위퍼 키퍼를 하나의 역할로 정립해냈다. 골키퍼의 임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과거의 스위퍼의 역할까지 병행하여 유프 하인케스, 펩 과르디올라의 전술의 완성도를 높인 것이다.[3] 스위퍼 키퍼의 최대 장점은 아군 센터백의 뒷공간을 최대한 커버하여 불필요한 체력 낭비를 상당히 줄이는 것으로 풀타임 동안 수비진의 수비력을 안정화시키는 부가효과도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4] 현대축구에 요구하는 넓은 커버 범위의 스위핑, 후방에서의 템포와 빌드업 조절, 킥력을 통한 롱볼 전개 등의 능력 중 어떤 것까지 부합해야 스위퍼 키퍼인지는 여전히 의견이 갈린다. 이런 이유로 위고 요리스는 골문을 비우고 나와 공간커버를 하는 등 스위핑에서의 기록은 스위퍼 키퍼라 하기엔 부족함이 없어 박스 밖에서 볼처리 횟수 등 통계를 통한 분류에서 자주 이름을 올리지만 보통 요리스를 스위퍼 키퍼라고 칭하지는 않는다. 요리스의 킥력과 빌드업 능력이 상당히 부족한 편이기 때문이다.[5] 이 유형에 속하는 남미 골키퍼들은 카리소나 칠라베르트같은 장신 골키퍼도 있지만 골키퍼를 하기엔 한참 부족한 170대의 신장이 많았기에 빠르게 공격수와 거리를 좁혀야하는 선수가 많았던 것이다.[6] 실제로 노이어가 자신의 롤모델로 반 데 사르를 꼽기도 했다.[7]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재평가와 함께 위상도 더욱 높아졌다. 이미 선방 능력만 가지고도 역사상 최강의 골키퍼라고 불린 선수인데, 스위퍼 키퍼 역할의 정립과 함께 야신이 보여준 긴 던지기를 활용한 빌드업, 수비 조율 및 적극적인 공간 커버, 롱 킥을 통한 공격 방향 설정 등 스위퍼 키퍼가 보여주는 모습들도 보여준 것이다. 현대로 치자면 노이어보다 선방 능력이 우월한 골키퍼가 노이어가 하는 플레이까지 성공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8] 루스는 시기상으론 가장 최초지만 19세기 선수라 현대축구 룰과 매우 다른 시기의 선수이며 카리소는 '엘 로코' 별명이 붙는 남미 골키퍼들의 시초라 볼 수 있다. 그로시치는 주변의 수비수에게 빠르게 공을 굴리는 등 후방 빌드업의 시작점 역할의 시초로 평가받는다. 90년대까지도 골킥은 최대한 길게 차는게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시기였다.[9] 다만 김승규가 스위퍼 키퍼로 전향한지 오래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단정지을 수는 없는 게, 애시당초 김승규는 고등학생의 나이 때부터 자국 리그 강팀인 울산의 스토퍼 3인방 중에 한명이면서 기라성같은 선배 키퍼들을 전부 벤치로 보내거나 이적시키며 팀의 준우승에 엄청난 지분까지 가지고 성장한 국내 리그 최고의 스토퍼였고, 울산 소속 스토퍼로 10년간 훈련을 받다가 전성기였을 시기에 일본 리그로 진출한 2016 시즌부터 3년간 소속팀의 브라질 출신 골키퍼 코치에게 기술을 전수받아 스위퍼 키퍼 역할을 완성시킨 걸 감안하면 아시아 수준급은 맞다.[10] 그의 진가는 1999년 대한민국 대표팀과 브라질 대표팀과의 친선전에서 잘 드러났는데 노이어가 팀에서 보여주던 모습을 어색함 없이 보여주었고 1:0 신승의 주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