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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리스 조 잭슨의 수상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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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리스 조 잭슨 Shoeless Joe Jackson | |
본명 | 조셉 제퍼슨 잭슨 Joseph Jefferson Jackson |
출생 | 1887년 7월 16일 |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피켄스 카운티 | |
사망 | 1951년 12월 5일 (향년 64세) |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그린빌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85cm / 90kg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우투좌타 |
프로입단 | 1908년 현금 트레이드 (PHA) |
소속팀 |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 (1908~1909) 클리블랜드 냅스-인디언스 (1910~1915) 시카고 화이트삭스 (1915~1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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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데드볼 시대에 활동한 위대한 강타자이자 전설적인 4할 타자[1] 중 한명이지만 블랙삭스 스캔들에 연루되어 영구제명된 인물이며, 당시 영구제명된 8명의 선수 중 가장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인물이기도 하다.2. 선수 경력
어릴 적에는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평생 문맹으로 살았다고 한다.[2]어릴 적에는 동네 야구팀에서 투수를 했지만 패스트볼을 던져서 다른 선수의 팔을 부러뜨리는 바람에(...) 아무도 그를 상대하려 하지 않아서 외야수로 전향하게 되었다고 한다. 외야수로서도 그는 수비와 타격이 일품이었기 때문에 프로에 입단할 수 있었다.
잭슨은 1908년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에 입단하지만, 프로라는 개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터라 자주 경기와 훈련을 빼먹고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등 2년간 10경기 출전에 그치고 만다. 그 후 클리블랜드 냅스로 트레이드되는데, 클리블랜드 냅스 입단 2년차에 공식적으로는 아직 신인인 상태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 역사상 전무후무한 신인으로서 4할 타율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한 것. 그 뒤로 그는 매년 3할 중반의 타율과 수십개의 2루타와 3루타와 도루를 기록하는 호타준족으로서 냅스의 타선을 이끌었고 MVP 투표에도 이름을 올렸다.[3][4]
1915년 중반 인디언스[5]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된 그는 여전히 최고의 타자로 이름을 날렸으며, 1917년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고 1919년에도 팀을 월드 시리즈로 이끌었다. 그러나 .375의 타율을 선보인 그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시리즈 승리는 신시내티 레즈에게로 돌아간다.
이후 1920년 다시 최고의 타격을 선보이지만, 1919년 월드 시리즈의 승부조작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며[6] 그 해를 끝으로 유니폼을 벗고 케네소 랜디스 커미셔너에 의해 영구제명된다.
12시즌간 기록한 성적은 메이저리그 역대 3위[7]에 해당하는 .3558의 타율과 1772안타, 307개의 2루타와 168개의 3루타.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입회할 수 있는 대단한 스타였음에도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후 그는 세탁소와 술집을 운영하면서[8][9] 세미프로 야구단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야구를 지속할 수밖에 없었고, 1951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3. 그는 진짜로 승부조작에 가담했는가?
그는 승부조작 혐의를 받는 1919년 월드 시리즈 8경기에서 무려 0.375 / 0.394 / 0.563 / 0.956의 슬래시 라인과 164 wRC+을 기록했고, 수비에서도 단 하나의 에러도 범하지 않은 채 5번이나 어시스트를 성공했다. 무엇보다 성격이 어리숙했고, 문맹이었다는 점에서 많은 의혹이 불거진다.하지만 실제 그의 진술에 의하면 돈을 받긴 했지만, 조작은 하지 않았다고 하는 점에서 그 신빙성이 많이 결여된다 보는 사람들이 많고, 실제로 그는 수준급의 외야수비와 송구를 자랑했음에도 유난히 그가 버티고 있던 좌익수 방면 3루타가 많이 나왔다는 점에서 그가 수비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남아있으며,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그의 조작 가담은 사실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그의 복권을 주장하는 이들은 매우 많이 있으며, 실제로 버드 셀릭 커미셔너는 그에 대한 재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끝내 그는 복권되지 못했고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4. 이모저모
- 세기의 강타자 테드 윌리엄스가 자신의 저서 <타격의 과학>에서 야구 역사상 가장 완벽에 가까웠던 타자로 잭슨을 꼽았다. 테드가 신인이던 시절,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2루수 겸 교타자로 은퇴한 에디 콜린스로부터 받은 최고의 칭찬은 "짜식, 방망이를 조 잭슨처럼 휘두르네."였다. 콜린스는 5년간 잭슨과 같은 팀이었다.
- 그가 슈리스(Shoeless. 맨발)라는 별명을 얻게 된 데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 메이저리그에 입단하기 전 마이너에서 뛸 때 새 신발이 잘 맞지 않아서 딱 한번 맨발로 타석에 들어섰다가 관중에게 "Shoeless son-of-a-bitch"[11]이라는 욕설을 들은 뒤로 이 별명을 얻게 되었다고.
- 그는 여전히 인디언스와 화이트삭스에서 각각 단일 시즌 3루타 기록과 통산 타율 기록에서 1위를 지키고 있다.
- 방망이에 여동생의 이름인 벳시라는 이름을 붙여 블랙 벳시로 부르며 그 방망이만을 사용했다고 한다. 블랙인 것은 담배물을 들여서 타르 때문에 검은색이 되었기 때문이다.
- 베이브 루스의 타격자세는 잭슨을 본받은 것이라고 한다.
- 당대 야구의 황제였던 타이 콥도 최고라 인정한 타자였다.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콥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스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선수가 바로 잭슨이었다. 두 사람은 1911년 함께 4할을 기록했고 콥은 그때부터 그를 계속 주목했는데, 세월이 많이 흐른 어느 날 골프대회에 참가하려고 지나가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그린빌에서, 잭슨이 운영하던 술집에서 둘은 마주쳤고 콥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은퇴 후 모두에게 외면받았던 잭슨은 감동을 받았고[12] 콥은 잭슨에게 '정말 갖고싶었던 것'이라며 사인을 요청했다. 하지만 잭슨은 문맹이라 사인을 할 줄 몰랐고, 문맹이라는 사실을 밝히기 부끄러웠는지, 머뭇거리며 콥에게 내일 여기로 사인을 가지고 올 테니 기다려달라고 했지만 콥은 시간이 없어 결국 그냥 헤어지고 말았다.
- 타이 콥이 1941년 7월 31일 뉴욕 타임스와의 특별 인터뷰에서 "감독이 되어 모든 시대 선수를 다 기용하게 해준다면 뽑고 싶은 선수는?"이라는 질문에 외야수로 조 잭슨을 뽑았다. 좌익수 조 잭슨, 중견수 트리스 스피커, 우익수 베이브 루스를 뽑았는데, 그가 조기 은퇴를 고려하면 대단한 결정이다.[13]
-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영화 <꿈의 구장>(원제: The Field of Dreams)[14]에서 그는 유령으로 옥수수밭 야구장에 출현하는데, 매우 행복한 모습으로 나온다. 레이 리오타가 조 잭슨 역을 맡아 연기했다. 하지만 우투좌타가 아닌 좌투우타로 출현하는 바람에 고증을 무시한 꼴이 되었다.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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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인의 추방자 | |||||||
에디 시콧 | 해피 펠시 | 칙 갠딜 | 슈리스 조 잭슨 | 프레드 맥멀린 | 스위드 리스버그 | 벅 위버 | 레프티 윌리엄스 |
[1] 1911년의 4할8리라는 엄청난 기록으로, 냅 라조이의 1901년 4할2푼1리 이후 10년만에 나온 메이저리그 4할이었다. 근데 하필 재수없게도 그해 데드볼 시대의 황제 타이 콥이 함께 4할 타자가 되며, 4할1푼9리로 타격왕을 먹는 바람에 타격 2위 4할 타자가 되었다.[2] 산업혁명기 미국에서 가난한 집안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노동해서 학교도 초등학교만 다닌 경우가 많다.[3] 잭슨의 실력을 가장 높게 평가한 선수는 바로 타이 콥이다. 콥은 천하의 베이브 루스도 자기 보다 몇수 아래로 봤다. 루스의 홈런 일변도 야구가 진정한 타격이 아니라 힘으로 대강 때우는 것이라고 폄훼했을 정도인 사람이고 동시대 다른 선수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조차 불쾌할 정도로 다른 선수들 수준이 낮다고 내뱉던 인간인데, 그런 그가 유일하게 인정한 타격천재가 이 잭슨과 역사상 최고의 유격수 호너스 와그너이다. 와그너에게는 콥이 1루주자일때 땅볼시 2루 태클도 안 걸었다는 후문이 있다. 근데 와그너는 비슷한 나이대인 콥이나 잭슨보다 훨씬 선배다... 한참 후배가 선배를 인정한다는? 콥이 투수 중 가장 인정했던 선수는 월터 존슨. 사실 그 외에도 조지 시슬러처럼 콥이 인정한 다른 선수가 많다.[4] 단 타이 콥도 이후 자기가 살았던 데드볼 시대의 야구가 끝나고 완전히 라이브볼 시대가 열린 뒤 더 많은 인기를 끄는 것을 본 이후의 홈런 타자들을 어느정도 인정했다. 베이브 루스와의 사이도 원만해졌다. 루스가 타격의 기술적인 요소와 파워적인 측면을 가장 완벽하게 조화시켰다고 평해주기도 했다. 애초에 콥이 성질은 드럽긴 해도 사실 당시 시대보정으로는 그렇게 드러운 편도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1등이다보니 하도 혼자 주목받으니까 예민하고 거칠었던 일화가 더 많이 전해진 것뿐 인종차별이 흔하던 시대에 인종차별도 한 적이 없고, 꽉 막힌 인물은 아니다. 이 분처럼 가족에게 개지랄 하지도 않았다.[5] 1915년부터 냅스는 팀 명칭을 인디언스로 바꿨고 2021년까지 이 이름을 사용했다.[6] 법정에서는 무죄 평결을 받는다.[7] 1위는 타이 콥(.3664), 2위는 로저스 혼스비(.3585).[8] 술집을 운영하면서 타이 콥을 만난 일화가 있다. 콥은 주변의 냉대에 시달리던 잭슨을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했지만 문맹인 잭슨은 사인을 하는 법을 알지 못하여 자신의 이름이 적힌 도장을 찾으러 갔다. 허나 갈 길 바쁜 콥은 그가 도장을 가져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술집을 떠났다고.[9] 다른 버전으로는, 콥과 유명 칼럼니스트였던 그랜트랜드 라이스가 잭슨이 운영하는 술집을 우연히 들어갔다가 잭슨을 바로 알아봤지만, 잭슨은 콥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콥이 "아니, 조, 날 못 알아보는 거야?"라고 물어보자 잭슨은 조용히 "당연히 알아봤지. 하지만 자네가 나와 이야기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어서. 다들 날 알아보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게 편한 것 같더라고"라 대답했다 한다. 여러모로 씁쓸해지는 이야기.링크[10] 사족으로, 히스토리 채널의 인기 프로그램인 Pawn Stars의 진행자인 릭 해리슨이 이를 몰랐던 탓에, 조 잭슨의 친필 사인이랍시고 가짜를 자신의 전당포에 들고 온 사기꾼에게 낚인 적이 있었다.[11] 번역하면 "신발도 안신은 병신새끼"[12] 잭슨이 의도적으로 모르는 척 하자 콥은 카운터에 가서 "나야, 이 친구야. 날 못 알아봐?"라고 물었고, 잭슨은 나지막하게 "당연히 알지, 타이. 하지만 자네가 날 알아보고 싶은지 확인하고 싶었어. 여기에 오는 대부분의 그시절 사람들은 나를 모르는 사람 취급하더군."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13] 1루수는 루 게릭, 2루수는 상술된 에디 콜린스를 뽑았다.[14] 소설 Shoeless Joe를 원작으로 제작한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