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기질’이라는 걸 타고난다. 어떤 아이는 차분함을, 어떤 아이는 불안이나 긴장을 갖고 태어날 때 해영은 계산력 을 양손에 쥐고 태어났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상황이든 머릿속에서 착착 계산 되어버린다. 해영에게 손해인지 아닌지가. 그리고 해영의 가정환경은 기질을 더 강화했다.
해영은 외동으로 태어나 다둥이로 자랐다. 결혼 전에 보육원 봉사를 했던 엄마가 결혼 후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집으로 데려와 가정위탁을 하셨기 때문이다. 성씨, 성별, 성격이 제각각인 아이들이 해영에게 언니오빠 혹은 동생이었다가 남이 되어 떠나갔다. 주변 사람들은 엄마의 베풂과 나눔의 삶에 찬사를 보내며 해영에게 엄마를 본받아 착하고 바르게 크라고 했다.
틀린 말이었다. 베풀고 나누고 있는 것은 엄마가 아니라 해영이였기 때문이다. 해영의 소원은 아빠, 엄마, 해영, 딱 세 식구만 살아보는 것. 아빠는 그러겠다 약속했지만, 약속을 지키기 전 해영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 아빠의 죽음으로 해영과 엄마 사이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생겼고, 그 후 해영과 엄마는 쭉 따로 살고 있다.
손해 보기 싫지만, 전혀 안 보고 사는 건 아니다. 친구가 없으면 더 손해, 사회생활도 못하면 더 큰 손해니까. 연애도 그랬다.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 덜 손해 같아서 하긴 했는데... 유일하게 해영의 손익분기점을 넘긴 연애상대가 바로 최신상 구남친 안우재였다.우재와는 입사 동기로 대리 3년 차부터 사귀었는데, 친한 친구에게조차 말 못 한 비밀을 우재에게 털어놓았더니 그게 해영의 상각비용이 될 줄이야. 손해를 보는 것도, 되는 것도 끔찍하게 싫은 해영은 우재에게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 6개월 뒤 우재의 결혼식이 열리는데...알고 보니 양다리였어?
양다리한테 낸 축의금이 아까웠다. 그러고 보니 축의금만 아까운 게 아니다. 독특하게도 해영이 속한 꿀비교육은 회사의 복리후생의 90%가 결혼/출산/육아/자녀 교육에 몰려 있다. 기를 쓰고 열일해서 고과를 잘 받아 연봉 3% 올리느니, 결혼해서 축의금 회수하고 회사에서 주는 축하금을 받아 신혼여행 다녀오는 게 더 이득.
쓰레기 전 남친이 그 모든 혜택을 다 받는데 해영은 못 받는다 생각하니 너무 큰 손해 같다. 게다가 초고속 승진이 예약된 사내공모는 미혼 여성을 뽑지 않는다. 소문대로면 회장의 사생활 문제로 속 썩은 사모의 특별 지시이거나 오너 리스크 원천 봉쇄를 위한 사장의 셀프 거리두기 때문이라는데... 이건 진짜 손해다. 승진을 못한 해영도, 해영을 놓친 회사도.
그리하여 해영은 고심 끝에 결혼, 아니 결혼‘식’만 올리기로 한다. 축의금도 회수하고~ 복지도 누리고~ 초고속 승진도 하고~ 웨딩 로드만 같이 걸을 신랑만 있으면 된다. 신랑은 어디서 찾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