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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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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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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ddd,#010101><colcolor=#373a3c,#dddddd> 장르
작가 정이리이리
연재처 다음 웹툰
연재 기간 2014. 01. 26. ~ 2016. 09. 04.
연재 주기
이용 등급

1. 개요2. 등장인물
2.1. 왕실2.2. 내명부2.3. 조정
3. 음악극4.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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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궁중 드라마 웹툰. 작가는 <잡초이야기>와 오!솔로의 작가인 정이리이리.

조선시대[1][2]를 배경으로, 세자 자리를 둘러싼 6명의 왕자[3]의 경쟁을 다루었다. 개그만화적 성격이 강했던 전작 오!솔로와는 달리, 내용 전개나 작품 속 메시지가 상당히 무거운 편이다. (그런데도 장르는 '코믹'으로 분류되어 있다.)[4][5] 시즌8 총 192화 및 후기로 완결된 후 유료로 전환되었다.

제목인 '세자전'은 세자 자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세자傳'으로 볼 수도 있고, 작중에서 왕자들이 합숙하는 건물의 이름인 '세자殿'으로 볼 수도 있으며 세자들의 왕위 쟁탈전을 그렸다는 점에서 '세자戰'으로 볼 수도 있어 중의적인 의미를 갖는다.

2. 등장인물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2.1. 왕실

2.1.1.

조선의 왕. 가상의 시대이기 때문에 역시 실제 역사에 등장하지 않는 가상의 왕이다. 6명의 후궁에게서 6명의 왕자(시즌 2 예고편에서 여섯 왕자 전원 아홉살 동갑인 것으로 확인)를 얻었고, 그들 중 누구를 세자로 삼을지 결정하기 위해 세자 경쟁을 실시하였다. 12화에서 중전이 회임, 왕자를 낳아 왕위 계승이 더더욱 카오스가 될 듯.

왕 자신도 선대 왕의 적자는 아닌 듯하다. 자신보다 어린 적자를 반란으로 몰아내고 왕이 된 듯한 묘사가 중간(6화, 17화)에 나온다. 세자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 고위직의 자식을 세자비로 간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세자전 시스템이 거짓은 아니었던 모양. 그러던 와중에 세자가 습격을 당하고 실종되어 시름에 빠지지만 동진군과의 필담을 통해 진실을 알게된다. 그후 세자를 암살하고 반역을 꿈꾸던 중전과 영상의 음모를 간파하고 이들을 숙청하면서 절대왕권 시대를 맞이 한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 반정을 일으켜 선왕이었던 자기 동생을 무력으로 왕 자리에서 끌어내렸던 전력이 있고, 중전 쪽에서 꾸민 역모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고는 해도 자기 동생 겸 자신의 적자인 정현대군을 죽인 진평군을 왕이 이제까지처럼 좋게 볼지는 또 의문이다. 어떤 독자는 왕이 중전의 역모 사건에서 진평군이 보여준 태도 때문에 진평군을 두려워할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6]

귀양지에서 복귀한 영상에게 예산을 소모하지 않는 구휼책을 찾아오라고 이르지만 흙전[7]이나 송피 따위를 대책이랍시고 올리는 것에 분노한다. 세자에게도 같은 미션을 내주었는데 세자가 그 답으로 부패로 축적한 재산을 감찰을 통해 적발, 몰수하여 백성들에게 돌려준다는 답을 내자 세자를 정치에 참여시킨다. 그러나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은 세자에게 시키고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히면 "세자가 어려서..."라며 세자에게 은근슬쩍 떠넘긴다. 이 와중에 어머니인 대비의 죽음을 겪고, 내명부를 관장할 사람이 없어지자 세자빈 간택 때 탈락했던 규수를 새 중전으로 들였다.

반정으로 왕이 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의 분명한 정치이념을 갖지 못했다. 신하들을 끊임없이 편가르기 하고 한쪽을 숙청하기를 반복해왔다. 숙청을 반복하며 왕의 자리가 지독하게 외롭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어머니 혜빈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묻는 진평군에게 사실 혜빈의 억울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용했다는 진실을 말해주며 "너를 세자로 삼은 것은 네가 가장 잘 견딜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말해준다. 사실상 왕의 마음 속에서는 후계자로서 진평군을 확실하게 낙점한 듯 하다. 왕이 되어야 할 아들에게만 허심탄회하게 해줄 수 있는 조언들을 계속해서 세자에게 해주고 있었으나 166화 부터 건강이 악화되더니 결국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한 날 죽고말았다. 죽은 뒤 독살이 제기되었지만 무령군의 술수로 유야무야 넘어갔다.

2.1.2. 진평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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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왕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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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내명부

인자한 모습을 보여주고 자신의 배가 아닌 다른 사람의배에서 낳은 아이를 세자로 삼는데에 동의하는 등 좋은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자신이 아들을 낳자 돌변한다.

사실 돌변하는 것도 어찌보면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인데, 당시에 대를 이을 아들을 못 낳으면 제아무리 중전이나 황후라고 해도 왕실/황실 내에서는 알게모르게 취급이 나빠질 수밖에 없는 게 당시 동양권 왕실/황실의 현실이었으므로 아들은 고사하고 딸조차 못 낳았던 시절의 중전은 당연히 왕의 아들을 낳은 후궁들 앞에서 착한 사람 코스프레라도 하면서 이미지 관리를 철저하게 해야 왕실에서 입지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중전으로서 자기 자리를 단단히 잡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될 왕의 적자를 낳아서 궐 내명부에서 자연스럽게 서열이 완전한 1위로 올라갔으니 후궁들 앞에서 착한 사람 코스프레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자기가 낳은 적자가 어떻게 되지 않는 한, 왕위 계승권을 1순위로 물려받는 것은 보통 적자고, 대비[8]로서 정계에 간섭하기 유리해지니 자연스럽게 권세를 부릴 수밖에 없을 듯.

그리고 마침내 영상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나 오히려 역공을 당해 자신의 아들인 정현대군은 죽고 자신도 귀양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 한다.[9] 이후 귀양지에서 사사되는데 마지막까지도 "제가 무슨 잘못을 지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란 말을 남긴다.

2.3. 조정

실눈에 희고 긴 수염과 백발이 인상적인 늙은 신하로, 왕의 말에 의하면 자기가 왕 자리에 오르는데 큰 역할을 한 일종의 반정공신과도 같은 입장인 듯 하다.[10] 하지만 그의 행적을 보면 진정으로 자신이 모시는 왕과 나라, 그리고 백성들을 위하는 충신이라기 보다느 알게 모르게 뒤에서 온갖 짓을 꾸미면서 그 과정에서 다른 이들을 이용할대로 이용하고 가치가 없어지면 과감하게 버리면서도 그 와중에 자기가 챙길 건 다 챙기고, 결정적으로 자기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간신배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하라구로 노인네.

그가 직접적으로 가담한 범행보다 간접적으로 그가 관여했다고 암시되는 범행이 더 많지만, 어쨌든 자신의 권력유지와 이해관계를 위해 왕실 내부의 온갖 음모에 발을 담근 전적이 꽤 많다. 게다가 자기가 의심받아서 뭔가 피해를 입을법한 상황이 생길 때마다 빠져나가는 것도 고단수. 그야말로 권력의 줄타기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철저하게 보여주는 모범사례같은 인간.[11]

진평군의 어머니인 혜빈이 누명을 쓰고 귀양간 사건과 안영군의 어머니인 경빈의 역모에는 어느정도 영상의 입김이 어떤 방향으로든 작용했다는 암시가 있으며, 작품이 진행될수록 점점 왕과 알게 모르게 대립각을 이루기 시작하더니, 4부에서는 아예 중전 쪽에 붙어서 왕을 몰아내고 정현대군을 새로운 왕으로 즉위시킬 역모를 꾸민다.[12] 그러나 진평군 등의 책략으로 인해 결국 중전과 그가 꾸민 음모는 간파당하고, 정현대군까지 죽어서 그들의 역모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간 후 왕에 의해 유배지로 위리안치당하고, 결국 사사된다.[13]

마지막 대사로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가 있는데, 단순히 형식적인 대사라고도 느껴질 수 있지만, 영의정의 여태까지의 행적과 그가 과거에 현재의 왕이 왕이 되는 것을 도와줬다는 걸 생각해보면 여러모로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발언.
세자(진평군)의 처조부. 우의정으로, 세자가 동진군과의 재결합을 요구하자 동진군을 암살하려다 세자의 기지로 실패한다. 왕과 세자가 자객에게 자복을 받아내 자객을 보낸 자가 최명진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의금부에 하옥된다. 이후 왕이 은밀히 상선을 통해 "내가 그대에게 듣고 싶은 말은 이번 일만이 아니다"라는 언질을 준다. 이 말을 들은 최명진은 허탈한 듯 웃다가 다음날 친국에서 영의정 김숭을 필두로 한 대군파의 역모를 아뢰어 정국을 뒤집는다.

이후 귀양을 가게 되지만 차태훈이 민란군에게 살해당한 후 흑화한 왕의 부름을 받아 영의정에 임명된다. 그러나 왕에게 능력과 쓸모를 증명할 것을 강요당한다. 왕으로부터 예산이 소모되지 않는 구휼책을 찾아오라는 말에 흙과 쌀가루로 빚은 전을 어떻게 부쳐야 먹을만 한가, 나무 껍질은 어느 나무가 제일 맛있는가 따위를 연구하는 한심한 모습을 보인다.
기존의 영의정이 사사된 후 새로 영의정으로 발탁된 인물로, 하라구로 간신배였던 전의 영의정과 달리 진심으로 왕에게 충성하며 백성을 생각하는 애민 정신이 투철한 인물이다. 또한 신료들을 종용하여 먹고살기 힘들어진 백성들에게 사비로 식량을 나눠주게 하는 등 구휼에 힘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곤이 해결되지 않자 결국 참다 못해 백성들이 민란을 일으키려들자 이들을 강경 진압해야한다는 유생들과 다른 신하들을 꾸짖으며 직접 나서서 민란을 일으키려는 백성 대표와 1:1 대면을 하고[14], 그에게 자신의 이름을 걸고 백성들을 굶주리지 않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하려고 하고, 백성 대표도 그 말에 마음이 움직였는지 그것을 받아들일까 말까 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누군가가 그들 주변에 있던 백성들을 선동해서[15] 결국 백성들 중 한 명이 "더 이상은 속지 않아!" 라는 말과 함께 영의정의 등에 칼빵을 먹이고, 원체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건인지라 영의정 측은 어떠한 대응도 해보지 못했으며 결국 영의정은 이 사건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리고 영의정의 죽음에 분노한 왕은 이제 백성들도 신하들도 용서하지 않겠다면서 민란을 일으킨 백성들을 강경진압하고 백성들을 용서해야한다는 신하들의 말도 듣지 않고 "나랑 일하기 싫으면 떠나라" 라는 식으로 무자비하게 내치면서 점점 암군의 길을 걸으려는듯한 묘사를 보여주었다.

종합해보면 세자전의 현 상황에 있어서 꼭 필요한 사람의 덕목[16]을 갖춘 사람이었으나, 너무나도 안타깝고 허망하게 떠남과 동시에 이 사람의 죽음이 왕이 암군의 길을 걷게 하는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일찍 사망해버린 점이 너무나도 아까운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다.

한편 일각에서는 백성들을 대면할 때 영의정이 한 대처가 너무 안일했다고 지적했으며, 또다른 사람은 누군가의 선동에 넘어가 영의정을 죽인 백성들을 보고 훌륭한 지도자도 필요하지만 그런 훌륭한 지도자를 가려내는 안목을 백성들이 가질 필요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3. 음악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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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련 문서


[1] 어떤 왕의 시대인지는 불명. 작가가 밝히기를 해를 품은 달처럼 가상의 왕이 다스리는 시기라고 한다.[2] 후에 천주교 박해 관련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볼 때, 굳이 실제 역사에서 가장 비슷한 시기를 찾자면 조선 순조 재위기간 즈음이 될 수 있겠다.[3] 초반에도 6명이었으나 1부 후반에 원자가 태어나 7명이 되었다. 나중에 안영군이 사망하여 다시 6명으로 돌아왔다.[4] 작가도 2부를 준비하면서 개그를 되찾아오겠다고 말했었으나 2부 후기에서도 실패(...)했다고 평가하며 3부에서는 꼭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전개를 보면 3부에서도 실패한 듯 보인다(...).[5] 그리고 4부에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6] 잘 보면 진평군과 정현대군의 관계는 묘하게 광해군영창대군의 관계와 유사점이 많다. 우선 광해군과 진평군이 후궁 소생이라는 것과 영창대군과 정현대군은 중전 소생의 원자라는 점, 그리고 광해군&진평군은 영창대군&정현대군에게 있어서 이복형이라는 점, 마지막으로 광해군과 진평군은 자기 동생인 영창대군과 정현대군을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죽이고 말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또한 왕은 자기보다 어린 나이의 선왕으로부터 무력으로 왕 자리를 탈취했다는 점에서는 세조와 비슷하며(물론 세조에게 왕 자리를 빼았긴 왕은 그의 조카인 단종이었지만, 세자전의 왕에게 자리를 빼았긴 왕은 그의 동생이었다.), 후궁에게서 원자가 아닌 아들을 먼저 보고 중전에게서 원자를 늦게 봤다는 점에서는 선조와 비슷하다.[7] 작중 언급으로는 세종 때 기록이 있다 한다. 실제로 현대에도 아이티의 아이들이 진흙쿠키를 먹고 있다는 사실이 국제뉴스로 크게 보도된 바 있다.[8] 왕의 어머니 이지만 친모여부와는 관계없이 왕이 승하후에 중전이 생존해있다면 무조건 대비가 된다.후궁이 대비가 되려면 왕 생전에 중전으로 책봉받아야 한다. 조선 왕조의 법도상 '왕대비'가 맞는 표현이며 후궁은 무슨 수를 써도 대비가 될 수 없다. 미망인이 된 후궁은 사가로 돌아가거나 정업원 행.[9] 이 와중에 자기 아이를 죽인 진평군에게 저주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중전 자신이 자기 아이(정현대군)를 위해 자기 남편(왕)을 끌어내리려는 역모를 진행했고, 그 전에 세자였던 진평군을 몰래 죽이려고 들었던 것을 생각해보자면, 결국 중전의 자업자득이라고도 할 수 있다.[10] 그래서 왕이 영의정을 초기에 함부로 제거하지 못했다. 일단 자신이 왕이 되는 데 도와준 정도의 큰 신세를 진 사람을 함부로 제거했다간 잘못하면 욕 먹는 선에서 안 그치고 더 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므로.[11] 그 예로 왕이 그를 추궁하기 위해 궐로 부르자, 꾀병을 부려서 안 오기까지 한다![12] 아무래도 영상이 뒤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벌인 것에 대해 왕이 본격적으로 추궁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꼬리가 밟힐 위기에 처하자 내가 당하기 전에 먼저 나의 적을 치자는 심산으로 중전 측에 붙은 듯 하다.[13] 한 마디로 사약먹고 죽었다는 뜻.[14] 이 과정에서 백성들에게 갈 때 군사를 많이 대려가면 백성들을 설득시킬 수 없다고 생각해서 군사도 많이 대려가지 않았다. 그의 애민 정신이 돋보이는 부분이었지만…[15] 말로 자신들의 불만을 달랜 다음 약속을 지키지 않을 생각이다, 라는 식으로 선동했다.[16] 왕에 대한 진심어린 충성, 애민정신, 무력이 아닌 설득을 통한 온건파적 자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