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00><colcolor=#fff> 성창순 成昌順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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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34년 1월 10일 |
광주광역시 | |
사망 | 2017년 1월 5일 (향년 83세) |
직업 | 국악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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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국악인이자 판소리 명창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판소리 전승과 교육에 힘썼으며,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국악의 발전에 기여했다.2. 생애
성창순은 1934년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나 금남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인 명창 성원목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소리를 접하게 되었으며, 어릴 때부터 판소리에 대한 소질을 보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이 소리를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고, 이에 반해 어머니는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그녀를 공기남 선생에게 데려갔다.공기남 선생에게 판소리의 기본을 배우기 시작했으나 처음에는 소질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끈질긴 노력 끝에 조선창극단에 입단하게 되었다. 이후 김소희, 김연수, 정응민, 박녹주, 정권진 등 여러 명창에게 사사하며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등을 익혔다.
1968년 전국명창경연대회에서 1등을 수상하며 국악계에 이름을 알렸고, 이후 여성국극단 동인회에서 활동하며 전국을 순회하며 판소리를 전파했다. 특히 안양 삼막사에서 박녹주 선생과 함께 100일 동안 흥보가를 공부하며 성음을 갈고닦았다. 그의 소리는 깊이 있고 섬세한 표현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았다.
1991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인 심청가 보유자로 지정됐으며, 그해 국악인 최초로 카네기홀에 올라 심청가와 춘향가를 불렀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판소리를 알리는 데 힘썼으며, 1992년 일본 도쿄에서 심청가를 공연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도 공연하며 판소리의 세계화에도 기여했다.
2010년 전남 보성에 판소리 전수관을 설립한 이후 후학 양성에 힘썼다. 2016년 11월에는 폐암을 진단받았으나 타계 한 달 전까지도 무대에 오르는 열정을 보였다. 그리고 2017년 1월 5일 지병으로 향년 84세에 별세했다.
3. 수상 경력
1968년 전국명창경연대회 1등남원 춘양제 명창대회 장
1978년 제4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판소리 명창부 장원, 대통령
1982년 KBS 제정 국악대상
199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기능보유자로 지정
4. 같이 보기
5. 외부 링크
성창순 위키백과성창순 네이버 지식백과 네이버캐스트
성창순 네이버 지식백과 시사상식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