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전 프로게이머이자 범죄자에 대한 내용은 성준모(범죄자) 문서 참고하십시오.
성준모의 수상 내역 / 역대 등번호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 ||
2014(코치) | 2015(코치) | 2019(코치) |
전주 KCC 이지스 등번호 10번 | ||||
조성원 (1997~2000) | → | 성준모 (2001~2003) | → | 전일우 (2003) |
울산 모비스 피버스 등번호 31번 | ||||
제이슨 웰스 (2004~2005) | → | 성준모 (2005~2006) | → | 압둘라히 쿠소 (2009) |
대구 오리온스 등번호 7번 | ||||
네이트 존슨 (2004~2005) | → | 성준모 (2006~2008) | → | 정훈 (2009~2011) |
<colbgcolor=#00043c><colcolor=#fff> 한국농구연맹 경기본부 차장 | ||
KOREAN BASKETBALL LEAGUE | ||
성준모 成俊模 | ||
출생 | 1978년 11월 3일 ([age(1978-11-03)]세) | |
전라북도 전주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본관 | 창녕 성씨 | |
신체 | 키 190cm|체중 89kg | |
직업 | 농구선수(스몰 포워드 / 은퇴) 행정가 | |
종교 | 개신교 | |
학력 | 팔복초등학교 (졸업) 전주서중학교 (졸업) 우석고등학교 (전학) 전주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학사) 텍사스 대학교/팬 아메리칸 캠퍼스[1] (석사) | |
프로 입단 | 2001년 드래프트 (2라운드 1순위, 대전 현대[2]) | |
현역시절 등번호 | 10[3], 31[4], 7[5] | |
병역 | 상무 농구단 (2003~2005) | |
소속 | <colbgcolor=#00043c><colcolor=#fff> 선수 | 전주 KCC 이지스 (2001~2003) 울산 모비스 피버스 (2005~2006) 대구 오리온스 (2006~2008) |
코치 | 고양 오리온스 (2011~2013)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2013~2021) | |
프런트 | 울산 모비스 피버스 (2010~2011 / 매니저)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 (2021~2023 / 전력분석팀장) | |
행정 | 한국농구연맹 (2024~ / 경기본부 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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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직 농구 선수이자 전직 지도자. 현재 한국농구연맹 경기본부 차장이다.2. 데뷔 및 현역 시절
우석고등학교에서 농구 동아리로 활동하던 중 농구가 하고 싶어 전주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기 직전에 시작했다고 한다.[6]한양대를 졸업하고 나서 2001년 KBL 신인드래프트에서 대전 현대 걸리버스로 지명되어 입단하지만 모기업이 KCC에 매각되어 전주 KCC 이지스의 유니폼으로 갈아입게 되었다. 그러나 추승균, 정재근, 양희승 등 같은 포지션을 지닌 베테랑들이 자리를 차지한 바람에 출전기회를 얻지 못하고 2002-2003 시즌 후 상무 입단을 결정하게 된다.
그러자 제대 해인 2005-06 시즌을 앞두고 김진호와 맞트레이드로 울산 모비스로 옮겨 몸을 아끼지 않는 철두철미한 수비 정신력으로 생애 첫 정규리그 우승을 달성하였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서울 삼성 썬더스에게 전경기 완패를 당하면서 우승 반지 획득에는 실패한다.
2006-07 시즌에는
3. 은퇴 후
선수 생활을 마감한 뒤, 농구와 관련된 지도자 연수를 받으러 미국으로 유학[7]을 갔다가 2010년에 귀국해 울산 모비스 피버스에서 매니저를 맡았고, 2011년에는 잠시 모비스를 떠나 새로 부임한 추일승 감독, 서동철 코치를 따라 현역 시절에 뛰었던 고양 오리온스[8]에서 2년 동안 코치를 역임했다. 그 후 오리온스와 계약이 만료되면서 다시 한 번 모비스로 돌아와 코치에 취임했다.
이후 8년간 코치로 재임하다 2021-22 시즌을 앞두고 지도자 연수를 마친 양동근이 코치로 부임함에 따라 새로 신설된 전력분석팀의 팀장으로 보직을 옮겨 2022-23 시즌까지 맡고 팀을 떠났다.
잠시 농구계를 떠나 직장인으로 근무하고 있었다가 모비스 재직 당시 은사였던 유재학 경기본부장의 제안을 받고 한국농구연맹의 경기본부 차장에 부임했다.
4. 관련 문서
[1] 대내외적으로 잘 알려진 텍사스 대학교/오스틴 캠퍼스와는 별개의 다른 학교다.[2] 드래프트 당시만 해도 대전 현대였지만 얼마 안 가 KCC로 모기업이 바뀌면서 전주 KCC 이지스에서 뛰었다.[3] 전주 KCC 시절[4] 울산 모비스 시절[5] 대구 오리온스 시절[6] 여담이지만 당시 아버지로부터 심한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성적표를 찢기까지 했다고 한다.[7] 당시 텍사스 대학교/팬 아메리칸 캠퍼스에서 교수로 재직중이자 우석고 시절 농구 동아리에서 활동했던 선배의 도움으로 전직 국내 농구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입학하게 되었는데, 석사 과정을 수료한 첫 농구인이 되었다.[8] 2011년부터 연고지를 대구에서 고양으로 이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