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몰년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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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말 유우의 수하의 관료이자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로 유주 어양군 사람.[1]2. 생애
유우의 종사를 지내다가 193년에 유우가 공손찬의 공격으로 멸망하자 제주, 선우은 등과 함께 염유를 오환사마로 추대해 수 만명의 군세를 모아 유주의 군대를 이끌고 공손찬에게 보복하려고 했으며, 공손찬의 부하인 어양태수 추단을 공격해 죽였다. 또한 원소가 국의, 유화 등을 보내자 이들과 힘을 합쳐 공손찬을 공격했다.공손찬 멸망 이후 자신의 세력권인 어양군 내에서 태수로 추대되었으며 전예의 권유에 따라 조조에게 귀순해 건충장군에 임명되고 유주의 여섯 개 군을 감독했다. 이후 몸소 조조에게 가서 좌도요장군, 정후로 임명되고 되돌려 보내져 유주를 진무한다.
한편 《위략》에서는 선우보가 관도대전에 종군했으며, 조조가 원소를 격파하자 기뻐하며 "하늘과 당신이 도운 덕이다."라고 선우보를 돌아보며 칭찬했다는 기록이 있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유주는 총 10개 군국으로 이뤄져 있는데, 당시 요동, 현도, 낙랑의 3군은 공손도가 점유하고 있었고, 나머지 7군은 원소의 영향력 아래 있어, 유주자사 원희가 이를 감독하고 있었다. 조조는 원소에게서 이탈한 어양태수 선우보에게 별도로 6군의 감독권을 더하였으니 선우보를 통해 원소가 유주에서 가지는 지분을 부정한 것.
그렇다면 유주의 세력권을 공인받은 선우보는 응당 원소의 후방을 괴롭히고 있어야 했겠지만, 문제는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선우보가 조조와 같이 관도대전에 종군하고 있었던 것이라, 기록은 누락되었지만 사실상 원소의 반격으로 세력을 잃고 조조에게 망명한 상태였다가 조조가 원소 사후 하북을 평정하면서 유주로 돌아간 게 아니냐는 설이 강력히 제기된다. 조조에게 몸소 가서 좌도요장군, 정후의 작위를 받은 것이 원소에게 쫓겨난 것을 돌려 말한 것이라는 주장.
205년에 광평에서 삼군오환의 공격을 받았으나 조조가 반격에 나서면서 위기를 넘겼으며, 조조의 오환 원정에 종군했다. 조비가 제위에 오른 후에는 호아장군에 임명되면서 현후로 작위가 올려지면서 특진의 지위에 임명되었다. 황초 연간(220년 ~ 226년)[2]에 유선에게 투항을 권유하는 조서를 보냈다.
224년에 가비능이 전예와 교전할 때 보국장군을 지내고 있었는데, 이 때 가비능을 설득하는 일을 맡았다.
헌제의 조비에 대한 양위를 촉구한 비석 위공경상존호주에 무려 여섯번째로 이름이 올라 있다.
3. 창작물에서
3.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삼국지 14 |
삼국지 14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능력치는 통솔 74, 무력 69, 지력 65, 정치 70, 매력 72이며 개성은 모집, 친오, 친선, PK에서는 특사 개성이 추가되었고 주의는 패도, 정책은 삼령오신 Lv 4, 진형은 봉시, 장사, 추행, 전법은 돌격, 격려, 저지, 친애무장은 염유, 유우, 전예, 혐오무장은 공손찬이다.
3.2. 삼국전투기
과자 인디안밥에 그려졌었던 아메리카 원주민 계통의 추장 캐릭터로 등장한다. 팽성 전투 편에서 첫 등장. 엉뚱하게 선비족의 족장으로 첫 등장을 했는데 작가도 오류를 깨달았는지 그 다음 출연부터는 선비족이 아니라 선비족의 사정을 잘 알아서 소통창구를 맡고 있는 걸로 바꿨다.[3]팽성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본래 선비족은 원소와 손을 잡고 있었지만, 언제부턴가 참모 비슷하게 합류한 전예의 의견을 듣고 조조쪽으로 줄을 바꿔 잡았다고 묘사된다.
소패2 전투 편에서는 전예의 충고를 받아들여 조조와 동맹을 맺었다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언급된다. 이후 조조가 원상을 인질로 잡으라고 부탁하자 너무 무리한 부탁 아니냐고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 현 베이징시 미윈구[2] 유선이 223년에 즉위했으므로 223년~226년 사이일 수 있다.[3] 하지만 캐릭터를 인디언 족장(삼국전투기에서 선비족은 아메리카 원주민 계통의 캐릭터로 나온다.) 캐릭터로 처음에 정해놔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