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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9 05:52:55

선공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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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출전

1. 개요

고사성어
먼저 공평할 사사로울

공적인 것을 먼저 하고 사적인 것을 뒤에 한다는 뜻의 고사성어. 정치권에서는 이 고사성어를 응용한 선당후사(先黨後私)[1]라는 말을 사용한다.

2. 출전

사기》에 기록된 전국시대 조나라의 재상 인상여와 명장 염파의 일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상여가 진나라와의 회맹에서 진소양왕을 망신시킨 공으로 조혜문왕의 신임을 얻어 염파보다 높은 직위에 오르자, 염파는 이를 질투하여 "다음에 인상여를 만나면 반드시 망신을 주리라"고 위협했다. 그 소식을 들은 인상여는 염파가 조회에 나오면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고, 길거리에서 염파와 마주치면 수레를 끌고 도망가는 등 시종일관 염파를 피해다녔다.

이에 인상여의 부하들이 너무 비겁한 것 아니냐며 항의하자, 인상여는 "나는 진왕도 두려워하지 않았거늘 어찌 염 장군을 두려워하겠느냐.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지 못하는 것은 오직 나와 염 장군이 있기 때문이니, 두 마리의 호랑이가 싸운다면 둘 다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나라의 위급함을 우선하고 사사로운 원한을 뒤로하기 때문이다(以先國家之急 而後私讎也)."라고 답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웃통을 벗고 곤장을 짊어진 채 인상여를 찾아가 사죄했으며, 두 사람은 이후 서로를 위해 목이라도 내어줄 정도의 우정(문경지교)을 맺게 됐다고 한다.

선공후사라는 표현은 일찍이 《삼국지》에 실린 두서의 상소문과 손권의 조서에서부터 등장한 바 있다. 한국에서도 조선시대부터 쓰인 사실이 확인된다. #

유교 경전 《맹자》에는 맹자등문공에게 정전제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시경》에 실린 〈대전편(大田篇)〉의 가사 중 "우리 공전(公田)에 비를 내리고 마침내 나의 사전(私田)에도 미치게 하소서"[2]라는 구절을 인용하는 대목이 있는데, 주자의 《맹자집주》에서 이 부분을 "공전을 우선하고 사전을 뒤로한 것이다(先公而後私也)"라고 요약[3]한 사례도 있다. 여기서는 마을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사유 토지(사전)보다 공공 토지(공전)를 먼저 경작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유사한 표현으로 우공망사(憂公忘私), 멸사봉공(滅私奉公)[4], 배사향공(背私嚮公)이 있다.
[1] 개인의 안위보다 당을 위해 희생한다.[2] 雨我公田(우아공전) 遂及我私(수급아사)[3] 《맹자집주》에서는 이후 맹자가 등문공의 신하 필전(畢戰)에게 직접 "공전의 일을 끝마친 연후에야 사전의 일을 처리한다"고 설명하는 대목에도 '선공후사'라는 주석을 달았다.[4] 당나라의 시인 원진(元稹, 779~831)이 쓴 〈최릉수상서호부시랑제〉라는 글에서 처음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