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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00:24:39

서태지 이재수 고소사건

1. 개요2. 서태지, 이재수를 고소하다.3. 결론4. 여담

1. 개요

2001년, 이재수의 소속사 우퍼엔터테인먼트[1] 발매한 패러디 음반의 '컴배콤'을 서태지가 저작권 위반으로 고소한 사건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태지가 개인인 이재수를 상대로 소송한 것이 아니라. 우퍼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다.

2. 서태지, 이재수를 고소하다.

서태지 6집 활동 당시 인터넷 상에서 음치가수로 인기를 끌던 가수 이재수의 소속사 우퍼엔터테인먼트 측에서 서태지에게 울트라맨이야와 컴백홈의 패러디 음악을 발매하게끔 해달라는 요청을 하였으나 서태지는 이재수의 요청을 거절했다. 하지만 이재수는 독단으로 컴배콤(컴백홈의 패러디곡)의 뮤직비디오를 촬영,[2] 공식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이에 서태지는 저작인격권 위반으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로 인해 패러디도 않는 쪼잔한 가수라고 많이 비방당했지만 이는 저작권자인 개인으로서 합당한 권리이며, 당시 국내의 패러디의 정의를 국내 유저들에게 고민하게끔 해 준 사건 중 하나였다.

사실 당시 일개 패러디 가수를 쪼잔한 문화대통령이 괴롭힌다언플이 많이 나왔는데, 사실 서태지가 실제로 고소한건 이재수보단 뒤에 있던 사람이라고 보기도 한다. 바로 그 인물은 당시 저작권협회 이사이자 영향력 있는 기획사 우퍼 엔터테인먼트[3] 사장인 김창환으로, 김창환은 서태지와 아이들에 감정이라도 있는지 이후 그들을 따라한 '플러그[4]' 등의 그룹을 만든 전적이 있었다. 이재수를 앞세웠을 뿐 일개 패러디가수 이재수와 문화대통령 서태지의 싸움이 아니라 사실은 정반대로 국내 유력 기획사와 일개 가수 서태지의 대결이었던 것. 서태지 자신도 인터뷰에서 이재수를 기획사의 희생물로 바라보고 씁쓸해했다.

이는 음악 저작권의 사후 승인제와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었다. 사후 승인제란 저작권자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음저협이 승인을 내리면 해당 음악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제도로, 컴백홈의 패러디 음반은 서태지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음저협의 사후 승인을 받아 출시된 앨범이다. 서태지 개인은 내용증명 등으로 패러디를 이미 거부했는데도 음저협 멋대로 허가를 내준 것. 이미 음악 저작권자 사이에는 음저협에 대한 반감이 넓게 퍼진 상태에 컴백홈에 대한 패러디가 이재수에 대한 소송만이 아니라 이러한 저작권 풍토에 반하여 저작권 협회에 대한 소송, 그리고 탈퇴로 이어졌음을 감안해보면 자기 저작권에 대한 합리적인 대응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부 평론가 중에는 저작권을 빙자한 표현의 자유 탄압이었다는 식으로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애초에 서태지는 풍자 자체를 막은 적이 없다. 명견만리 출연 당시 서태지 닷컴에 방청객이 올린 후기에 따르면[5] 서태지는 패러디 자체는 문제 삼지 않았고, 단지 앨범 발매 즉 풍자물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거절했는데 그걸 무시하고 발매해서 고소를 한 것이라 말했다. 2000년도에 있었던 안티 서태지 공연은 서태지 모형 인형의 배를 갈라 순대를 꺼내는 엽기적인 퍼포먼스였지만, 쿨하게 넘어갔다. 또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나온 패러디 동영상에 대해서도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 경우는 서태지의 저작물을 영리 목적으로 이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서태지가 고소를 한건 풍자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음원을 영리적으로 이용한 부분에 대한 고소였지 풍자에 대한 고소가 아니었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와는 아무 상관없는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표현의 자유를 언급하는건 DJ DOC가 조용필에게 리메이크를 거절당한 것이나, 정치인들이 유명 대중 가요 가사를 바꿔서 선거 캠페인에 쓰려다 거절당한 것을 두고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3. 결론


12년만에 소송이 끝났다.

4. 여담



[1]미디어라인엔터테인먼트, 더 이스트라이트의 구 수속사이기도 하다.[2] 감독도 원곡의 뮤직비디오를 찍었던 홍종호 감독이 찍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홍종호 감독과 전담으로 뮤직비디오를 찍었던 서태지는 이 사건을 계기로 홍 감독과 등을 돌렸고 역시 홍 감독과 전담으로 뮤직비디오 작업을 하던 양현석도 당시 홍 감독과 진행하려던 페리의 신곡 뮤직비디오 작업을 갈아엎었다. 양현석이 친히 페리의 앨범에 피쳐링으로 참여하여 이재수 디스곡(Oh, No!)을 넣은 건 덤.[3] 신승훈, 김건모, 박미경, 클론, 노이즈 등을 배출한 90년대 최고의 음반사인 라인음향의 대표 프로듀서였던 김창환이 설립한 회사.[4] 서태지 모창대회 우승자가 메인보컬이었다.[5] 방송에서 이 부분은 편집되어 나오지 않았다.[6] 거지같은 음저협 때문에 아무리 문제가 없다고 해도 원곡가수에게 허락을 받거나 최소한 앨범들고 인사라도 오는 게 보통인데, 얘기도 없이 그냥 리메이크 앨범 내서 이름만 팔아먹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한 원로가수는 이에 빡쳐서 상대가수 사무실에 쳐들어가 뒤집어 엎은 적이 있다고 하며, 김동률도 자신의 미니홈피(?)에 불편한 기색이 담긴 글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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