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사에서 "교토로 간다"라는 의미의 단어 上洛
'洛'은 낙양(洛陽)의 '낙'으로, 대한민국에서 '장안의 화제'라는 어휘에서도 알 수 있듯 장안을 '수도'의 아이콘으로 삼아왔던 것과 비슷하게 일본에서 '낙양'은 당시 수도였던 교토를 가리키는 별칭이었다.[1] 그래서 상락이라는 말은 "교토로 간다"는 의미가 된다.여기서 의미가 더 확장되어 "천하를 잡겠다"라는 의미의 단어가 되었다. 춘추시대 오패들이 주나라 천자를 섬긴 것이나 삼국지의 조조가 헌제를 옹위한 것처럼 교토로 가서 덴노와 쇼군을 옹위해 자신이 일본을 지배할 명분을 세우겠다는 말. 이를 실천한 건 오다 노부나가 정도지만 이마가와 요시모토나 다케다 신겐 그리고 막부 후반기 사쓰마번주 시마즈 나리아키라가 상락을 노렸다는 말이 있다. 단지 이마가와 요시모토는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살해당하면서 실패했고 다케다는 오다를 넘을 국력이 없었으며, 나리아키라는 준비하다가 병사한다. 일본어로는 じょうらく(죠-라쿠)라고 읽는데, 특히 센고쿠 시대를 다룬 일본 매체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때는 오다 노부나가처럼 교토 등 기나이 지역을 지배하기 위해 상락하거나 도요토미 히데요시 같은 천하인에게 신종하기 위한 이유 등으로 상락하였다.[2]
2. 중국의 지명 商洛
상뤄시 문서 참조.[1] 헤이안 시대에 당나라를 모방해 신수도 교토(당시의 이름은 헤이안쿄)를 건설할 당시 교토 서부인 우쿄(右京)지역을 장안(長安; 조안), 동부인 사쿄(左京)지역을 낙양(洛陽; 라쿠요)라고 불렀는데, 시간이 흘러 서부 지역은 쇠퇴하여 조안의 이름은 유명무실해지고 동부 지역만 남아서 낙양이 교토의 대명사가 됐고 낙양의 '낙(洛)' 자가 교토를 뜻하는 한자가 되었다.[2] 이쪽의 상락을 마지막까지 미룬 인물이 바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이에야스는 히데요시에게 항복하긴 했지만 전투에서 패한 것이 아니라 오다 가문의 못난 자식인 오다 노부카츠가 멋대로 항복하는 바람에 명분을 잃은 것에 불과했고 이전에는 오다 노부나가와 동맹관계였기 때문에 노부나가의 부하 1에 불과했던 히데요시에게 고개를 숙일 생각이 없었기 때문. 하지만 결국 상락의 거부할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에 가기는 했다.